당신과 나의 이별 식탁 : 카레에 빠진 치킨

독립을 앞둔 달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by 신보라
오늘의 저녁 식사


카레는 식사 담당에게 사골국 다음으로 꽤 괜찮은 메뉴다.

한 솥 끓여 놓은 후, 물과 카레 가루만 끓일 때마다 부어주면 카레 무한 식사가 가능할 수도 있다.

이 무한 증식 카레에 매료되어 2주에 한 번은 카레를 하던 때가 있었다.


양평 집에서 구로에 있는 직장으로 통근하던 시절, 새벽 출근-늦은 밤 퇴근으로 아빠의 식사는 내 신경 밖이었다. 그땐 아빠의 끼니보다 내가 과로로 쓰러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한참 앞섰다.

혼자서 잘 챙겨 먹기를 바라며 '오늘 무얼 먹었는지'와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물어보는 순간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아빠의 저녁 식사를, 불편한 진실을 차츰 외면해갔다.

어느 날 아빠가 말했다. 카레를 좀 해줄 수 있겠느냐고. 한 번 해두면 3일 정도는 자신이 끓여 먹으면 된다고.

조심스러운 요청이었다. 슬쩍 내민 제안이었지만 간곡히 잡은 부탁이었다.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부탁하는 부모의 모습을 마주하며 드는 마음은, ‘거절하기 어려운..’으로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그 단순한 지점 너머 불분명한 어딘가에서 안쓰러움과 미안함으로 젖어버린다. 그 물기가 언제 마를지는 모를 일이다. 사람에 따라 금세 보송해지기도, 오래도록 눅눅져 있기도 하겠지. 내가 말라버린 시점은 분명하진 않지만, 어쨌든 다음 날, 식탁에 카레가 올라왔다. 아빠의 끼니 걱정보다 한참 앞서가던 내 걱정은 잠시 멈춰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2주에 한 번 감자와 당근, 양파, 고기를 볶고 마법의 무한 증식 카레 가루를 넣는 마법 의식을 치렀다.



(왼쪽부터) 항공 샷, 숨어있는 쌀알 찾기가 재밌는 카레, 일품 김치


당신과 나의 열 번째 이별 식탁


카레에 빠진 치킨


카레에 빠진 치킨 재료 : 감자, 당근, 양파 등 기호에 맞는 채소, 간 돼지고기(성식 씨의 취향), 즉석식품 치킨, 카레가루


감자, 당근, 양파를 한 입 사이즈로 손질해서 볶는다

끓는 물에 손질한 채소를 넣어 채소육수를 우려낸다

간 돼지고기를 볶아 채소가 다 익은 육수에 넣는다

카레가루를 위 육수가 걸쭉해질 때까지 양 조절하며 붓는다

약불에서 타지 않게 잘 저어주며 치킨을 각자의 조리도구에 맞게 조리한다 나는 에어프라이어 썼다!

하얀 밥 위에 완성된 카레를 붓고 그 위에 치킨을 예쁘게 놓는다



2주에 한 번은 마법 의식을 치른 지 몇 달이 지났을까. 어느 날부턴가 카레가 남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은 카레를 확인한 성식 씨가 라면을 끓이는 장면이 목격되고 만다.

약간은 분개했다. 좋아했으면서..!

인간답게 살 권리 중에 카레를 너무 오래 먹지 않는 것쯤은 포함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피곤함을 이기고 요리했다는 생색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정확히는 어느새 젖은 마음이 다 말라버린 거겠지.

그 이후 한 동안 우리 집 식탁에서 카레는 볼 수 없었다. 분개와 배신감은 차라리 그 존재를 지우는 것을 선택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조리 가능 메뉴가 한정적인 이 처자에게 드디어 한계가 온다. 카레를 할 수밖에 없는 날이 도래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내 카레가 외면당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카레를 한 끼만 하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래, 오늘은 턱 별 한 카레를 해보자. 거부할 수 없는 치킨을 카레에 빠뜨리기로 했다. 그것은 치트키. 스타크래프트의 show me the money와 같은 차원.

촵촵촵촵. 카레에 빠진 치킨은 아빠의 작은 성에서 크게 흥행했다. 이번에도 마의 삼일을 넘지 못하고 사흘째 되던 날 외면받았지만. 두 번 겪는 외면은 상처를 줄 수 없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남은 카레를 직장에 데려갔다. 내가 점심때 맛있게 먹어줘야지. 점심시간, 전자레인지에 돌린 카레를 한 술 떴다.

그리고 그 한 술은 마지막 술이 되었다. 삼일 된 카레가 이토록 맛이 없다는 것을 왜 이제 알았을까.

나는 그동안 아빠에게 카레를 무한 증식시켜주며 정작 나는 삼일 내리 카레를 먹은 적이 없었다. 나쁜 계집애.

울렁거리는 속이 시큰했다. 카레가 상한 것은 아닌데.

작년 여름, 카레를 좀 해줄 수 있겠냐고 묻는 아빠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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