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엄마가 해주던 음식들을 내 손으로 비슷한 맛으로 구현해낸다는 것이 꽤 신기했다.
그 신기함은 돼지갈비찜, 제육볶음의 모든 양념을 손수 만드는 열정으로 이어졌다. 돼지갈비찜을 만든다고 배를 직접 갈기도 했다. 종갓집 며느리의 혼이 씌었던 걸까.
제육볶음도 그랬다. 양념을 만들다 보니, 우리나라의 매콤한 양념의 베이스는 그 재료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당신과 나의 열두 번째 이별 식탁
제육볶음 재료 : 돼지고기 목살, 양파, 대파, 버섯
양념 : 다진 마늘(2), 고추장(3), 고춧가루(3), 간장(2), 올리고당(2), 맛술(3), 들기름(2), 후추와 소금 약간
제육볶음 만들기
양파와 버섯을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양념과 버무려줍니다.
고기를 양념장에 재워둡니다. 잘 자렴.
고기가 익을 정도로 매큼하게 맛있게 익히면 완성!
양념 만들기가 어렵지 않지만 이마저도 귀찮은 날에는 시판 양념도 꽤 효자 노릇을 한다. 백설, CJ 두 집 모두 양념 제품이 참 괜찮다.
난 제육볶음을 먹어도 쌈에 싸 먹는 편인데, 사실 제육볶음뿐만 아니라, 고등어나 참치도 쌈에 싸 먹는 것을 좋아한다. 참치를 양배추 쌈에 올리고 밥, 쌈장과 함께 싸 먹는 토요일 오후의 식사가 좋다.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그 시간만큼은 내가 바로 김태리, 우리 집 주방이 리틀 포레스트다.
반면 성식 씨는 쌈 따위는 쳐다도 보지 않는 고기 외길 인생이다. 나의 쌈 마이웨이에 그는 함께 할 수 없다. 그를 위한 1인 식탁을 차리고 보니, 쌈이 없는 것이 내 눈에는 텅 비어버린 식탁 같았다. 그래서 급하게 만들어진 계란찜. 내가 좋아하지만 잘 못하는 요리 중 하나가 계란찜인데 촉촉하고 터질 것 같은 식당 계란찜 만들기에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백종원 레시피도 소용없긴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이번에도 실패할 거, 정성은 아껴두기로 했다. 간단하게 고춧가루를 뿌리고 전자레인지에 3분 간 돌려서 만들어진 '망한 계란찜'. 친구는 고춧가루를 뿌린 계란찜이 문화 충격 급이라고 했지만 바쁜 엄마가 다른 재료 대신 계란의 비린 맛을 잡기 위해 고춧가루를 샥샥 뿌려 만든 계란찜이 나는 괜찮았다. 그렇지만 엄마의 계란찜과 달리 내 계란찜은 사우론이 만든 느낌이 든다. 지옥에서 온 계란찜이 있다면 이런 모양새일 런지.
아빠는 나의 사우론 계란찜도 맛있게 먹어주는 고마운 사람인지라, 엄마의 계란찜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했다.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식탁에 계란찜이 올라오면, 아빠는 계란찜을 너무 맛있어한 나머지 허겁지겁 먹곤 했는데, 그런 아빠를 나는 인중이 길어진 얼굴로 보았다. 한참을 보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안 뺏어 먹을게. 천천히 먹어."
라고 말했지만, 아빠는 대꾸 한마디 하지 않았다. 어딘가에 집중하면 귀를 닫아버리는 그였다. 아마도 계란찜에 집중한 모양이었다.
계란찜을 할 때마다 그 기억의 파편들이 여기저기서 모여 와 엉키곤 하는데, 친구들과 주꾸미 집이나 술 집에서 계란찜을 시켜 먹을 때면 엉켰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 기억이 완성되곤 한다.
촉촉하고 폭신한 계란찜을 허버허버 먹고 있으면, 착한 친구들은 아예 계란찜을 내 앞으로 옮겨준다.
"트리 계란찜 많이 먹고 싶었구나."
조금은 민망한 찰나, 그 옛날 식탁의 기억나지 않았던 부분이 에필로그처럼 떠오른다. 마치 아빠만 계란찜을 독식한 것 같았던 잘린 기억에서,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선명해지면, 계란찜 그릇 위를 오가는 수저는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것이 보인다. 둥그렇고 큰 아빠의 수저와 꽃무늬가 그려진 나의 수저. 좁고 기다린 엄마의 수저는 국그릇 위만 오간다. 두 부녀의 계란찜을 향한 우열을 가리기 힘든 탐욕에 엄마는 밀려나 있다.
가끔 올케가 조카에게 밥을 먹여주다가, 밥그릇에서 한 술 떠서 먹으면 조카가
"엄마 왜 내 거 먹어~"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계란찜에 대한 잊혔던 기억이 떠올라서 괜히 "엄마가 먹을 수도 있지" 라며 조카에게 말한다. 어쩌면 그 말은 스스로에게 하는 혼잣말이었을지도.
엄마가 계란찜을 정말 좋아하지 않았는지, 사실은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식탁을 차리며 아빠의 취향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가는 요즘, 나의 이 무지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