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이별 식탁 : 스팸 깻잎 전

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by 신보라
오늘의 배경 음악. 아래 링크를 눌러서 감상!

https://www.youtube.com/watch?v=FYI5izz03DY




오늘의 저녁 식사



엄마가 병원에 있을 때, 아빠의 식사를 어설프게나마 차리기 시작하던 그때. 스팸을 잘라서 굽는 것도 내겐 요리였다. 인천-서울-양평을 오가며 생전 처음 식사를 차리는 딸에게 아빠는 차마 불평을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스팸에도, 달걀 프라이에도 덜 익은 버섯전에도 말 한마디 없었다.


병원에 있어도, 서울 이모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어도, 오늘은 이 녀석이 어떤 요리를 했는지 궁금한 엄마는 저녁이면 늘 전화를 해서 메뉴를 확인하곤 했다. 스팸을 했다고 한 날에는 "응~ 스팸 구웠구나." 라며 한 마디 했을 뿐인데, 무언가 개운하지 않은 반응에 씻지 않은 채로 침대에 누운 기분이 들었다.


당시 나는 중요한 역할이라는 책임감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것도 잘 해내지 않으면 모두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양평 집에서도, 엄마 옆에서도, 인천의 자취방과 학교에서도, 다 잘 해내고 싶었다. 그중 하나만 해내는 것도 감당하기에 쉽지 않았는데 말이다. 스팸 하나만 구운 게 잘못됐나 싶어서 조금 더 건강하고, 조금 더 정성이 들어가고, 스팸의 느끼함과 짠맛을 잡아 줄 무언가에 대해 고심했다. 그리고 우연히 냉장고에서 발견한 깻잎. 그래, 이것이다. 깻잎으로 스팸을 싸서 전으로 부쳐야겠다는 생각이 번뜩였다.




(왼쪽부터) 김치 콩나물국, 스팸 깻잎 전, 항정살 김치볶음



당신과 나의 열세 번째 이별 식탁


스팸 깻잎 전


스팸 깻잎 전 재료 : 깻잎 약 10장, 스팸 큰 통 하나, 튀김가루(밀가루도 OK), 계란 3알


스팸 깻잎 전 만들기


스팸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깻잎을 스팸 하나 싸기에 적당한 정도로 자른다.

깻잎으로 스팸을 싼다.

스팸을 싼 깻잎에 튀김가루를 가볍게 묻힌다.

계란 3알을 풀어서, 계란 옷을 입히고 튀긴다.

약불에 적당히 뒤집어 가며 튀기면 완성~!

스팸을 으깨서 다진 채소와 섞어서 소를 만들어 깻잎에 싸면 더 맛있다는 사실은 참고하시길.


그렇게 탄생한 스팸 깻잎 전은 아빠에게도 큰 만족감을 주었고, 엄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면서 호호호호 웃음을 가득 머금었다. 내 나이 스물다섯, 엄마는 내가 반찬 하나 만드는 것에도 그저 신통해했다. 그녀는 이십사 년 전, 내가 걸음마를 떼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엄마, 아빠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걸음마를 떼는 아기들의 기분도 나와 같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요리를 아장아장 시작한 나도 칭찬에 힘입어 걷는 데 자신감을 얻었다. 걸음마를 떼더니, 두 발로 온전히 걷기 시작해서 경보와 달리기까지, 에어워크에 올라탄 듯 빠르게 발전해 나갔다. 그러나 식사를 차리는 것, 즉 매일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해 먹는 것은, 스프린트가 아닌 마라톤이었다.


스팸 깻잎 전을 처음 한 뒤로, 생각날 때마다 만들어 먹었지만 그 주기가 점점 길어지더니 나중엔 흐린 기억 저 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실 튀김가루를 묻혀서 계란옷을 입히기는 과정이 자주 하기에는 귀찮은 감이 있다. 직장에 다니면서는 그런 과정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 바로 굽거나 끓여서 먹기 좋은 음식만 해 먹게 되었다. 나는 스프린터로서는 괜찮았지만, 마라토너의 자질은 없었다.


오래간만에 이 요리를 하게 된 것도 오늘이 그저 그런 평범한 날이 아닌, 행복한 연차 일이기에 가능했다. 반복적으로 경로를 이탈하거나 워터 스탑에 멈춰서 움직일 생각이 없던 날라리 마라토너가 오늘은 열심히 뛰어보기로 했다. 튀김가루와 계란물을 골고루 잘 입히려다 보니 젓가락 대신 손가락이 도구가 되었고, 엄지와 검지에는 덩어리 진 튀김가루가 꾸덕하게 씌워졌다. 진동하는 기름 냄새가 싫었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깻잎에 스팸을 하나하나 싸는 과정이, 없는 손재주로 공예를 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지금 이 순간, 부엌은 공방 작업실이다. 깻잎과 스팸은 작품이 될 재료, 손가락은 연장이다. 화려한 부엌 조명이 몸을 감싸고,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연장질은 마지막 스팸 깻잎 전을 부치며 끝이 났다.


예쁘게 플레이팅까지 끝내고, 아빠의 작은 성으로 가서 대련님 성식 씨를 뵙자, 난감한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아빠가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 쌕쌕.


"아빠! 아빠 일어나! 밥 먹고 자! 8시밖에 안됐어! 벌써 자지 마!"


격렬하게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뜬 아빠는 나중에 먹을 테니 식탁 위에 그냥 두라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이렇게 되려고 열심히 요리를 한 것이 아닌데’ 하는 허무함과 ‘왜 장인에 도취되었을까’ 하는 짜증이 치밀었다.

손녀의 코끼리 인형을 베고 자는 성식 씨의 짧은 구레나룻을 잡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얌전히 방을 나왔다. 나는 인내라는 것이 있는 어른이니까. 그리고, 기시감이 드는 이 기분의 정체를 더듬어 보았다. 아, 이것은 열심히 식탁을 차리고 나서야 아빠가 저녁을 먹고 왔다는 비보를 전했을 때의 그 기분이었다.


이렇게 작은 일들이 오히려 사람의 평정심과 인성을 시험대에 올린다. 부부싸움이 나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동거인인 아빠를 통해, 나는 이렇게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미리 배워 나가고 있다. 배움의 과정은 어렵다. 특히 나처럼 모난 점이 많은 사람에겐 더욱.


오늘도 ‘어른'을 아로새기며 인내하며, 또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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