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화장한다고 하지만 2000년대에는 대게 중2병의 발병과 함께 화장을 시작했다. 훼어니스라는 청소년용 미백 제품을 기본으로, 황정음 틴트가 유행하면서 여자애들 사이에선 화장품 이야기가 대화 소재 중 하나가 되곤 했다. 나는 친구들에 비해 화장을 늦게 시작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화장의 맛을 알게 됐고, 친구들의 메이크업 팁을 하나씩 배우며 얼굴에 색칠 공부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화장이 재밌는 가장 큰 이유는 민낯보다 화려해지는 얼굴을 보는 즐거움이겠지만, 색조 제품의 조합 방식에 따른 다양한 분위기를 표현일 것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요리도 비슷하다. 익숙한 재료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어떤 방식으로 조리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음식으로 탄생시킬 수 있다.
삼겹살과 두부를 이용한 오늘의 요리는 평범하지만 엄마가 해 준 적이 없었고, 처음 시도해봤지만 익숙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친숙한 맛을 내는 새로운 조합의 이 요리는 꽤 괜찮았다.
살아가는 과정도 그렇다. 우리가 삶 속에서 겪는 변화는 기존의 것들을 전복시키는 새로움보다는 '나'라는 익숙한 재료를 이용한 몇 가지 변주를 통해 만들어진다.
당신과 나의 열네 번째 이별 식탁
두부 두루치기 재료 : 두부 (1~2모), 삼겹살 혹은 목살 (300~600g), 신김치(1/4포기), 양파(1/2), 대파
다시마 육수(1컵), 통깨
양념 : 고추장(2), 고춧가루(2), 맛술(2), 간장(1), 굴소스(1/2), 설탕(1), 다진 마늘(1), 생강가루, 후춧가루 약간
두부 두루치기 만들기
미리 만들어둔 양념장에 고기를 재웁니다. 코~ 재웁니다.
김치를 볶아요.
김치가 익으면 재워둔 고기를 깨워서 김치와 함께 볶아요.
육수를 넣어주세요. 육수가 없다면 연두 해요~
두부를 살짝 구워서 넣어주세요. 저는 촉촉한 두부가 좋아서 굽지 않고 넣었어요.
졸여가면서 다듬은 대파를 마지막에 두부 위에 뿌려주세요.
통깨까지 뿌려서 은은하게 졸이면 완성!
인터넷에서 본 레시피에선 국물이 더 진했지만 성식 씨는 진한 매운맛보다는 순한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취향을 존중하기로 했다. 약간 삼삼하게 만든 두부 두루치기는 얼큰함이 부족한 대신에 순한 맛 덕분에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한 술, 두 술이 소주를 불렀지만 참기로 했다. 요즘같이 화가 많은 때에 먹었다가는 그만 폭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늘은 요 며칠 중 가장 기분이 괜찮았다. 보통 아빠는 휴일에 늦게까지 자는 나를 11시~12시까지 내버려 두다가 정오가 조금 지나서야 깨운다. 밥은 먹고 자야 하지 않겠느냐고 자신의 허기를 에둘러 말하면서.
그때까지 주린 배를 참고 기다렸겠지만, 휴일 오전은 아빠 혼자 해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많다. 그런데 이번 연휴는 달랐다. 알람도 없이 잠들어서 오후 2~3시나 돼야 산적의 몰골로 눈을 뜬 게 어제부로 삼일 째다. 아빠가 깨우지 않은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컵라면 용기가 싱크대 위에 있는 것을 보고 아빠도 혼자만의 브런치를 즐긴다고 생각했으니까.
오늘은 마지막 생일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9시쯤 눈을 떠서 외출할 준비를 마치고 요리를 시작하자 아빠의 작은 성에서 유튜브 방송 소리가 들려왔다. 방 문을 열어보니 노쇠한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하얀 머리가 성성한 성식 씨. 누가 봐도 배고픈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빠, 지금 밥 하고 있는데, 먹을 거야?"
"응..., "
말꼬리가 흐린, 힘없는 목소리. 아빠는 연휴 기간 동안 배가 고팠어도 내가 일어날 때까지 참았던 모양이다. 서울까지 출퇴근하는 딸내미를 연휴 동안이라도 맘껏 자게 두고 싶었던 것인지, 요즘 화가 많아진 이 애를 일부러 깨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소망은 전자에 있다.
남한강 강변에서 즐긴 마지막 생일 파티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늘은 깜깜해지고, 길가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 때, 아빠와 간식을 사러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요즘 회사는 다닐만하냐는 아빠의 질문에 그동안 참아왔던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내자 아빠는 웬일로 맞장구를 쳐주며 내 이야기를 다 받아주었다.
"무슨 그런 회사가 다 있냐. 그만둬라 차라리."
내가 돈도 없이 회사를 나올 일은 없겠지만 이야기를 받아주고 대화가 된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이것은 관계가 올바르게 가고 있다는 기본 신호다.
집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 누군가의 이민과 친구들의 결혼 이야기를 하며, "그렇구나, 안됐다. 잘됐네." 적절하고 평이한 대답을 하던 아빠는 대화가 빈 틈 사이로, 아주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너도 이제 서른이 넘었으니까. 결혼을 해야..., 좋을 텐데...., "
들릴 듯 말 듯 읊조린 아빠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나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바쁘게 내렸다. 결혼 이야기로 몇 년에 걸친 전쟁이 있었다. 치열했던 싸움 끝에 백기를 든 줄 알았던 아빠는 조용히 틈새를 노리다가 이번에 짧은 잽을 날린 것이다. 잽에도 어퍼컷으로 되갚던 나는 오늘 그가 보인 작은 변주에, 이번만큼은 넘어가기로 했다. 육십이 넘은, 이제는 할아버지에 가까운 아빠가 보이는 변화에, 짜증을 보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모두 작고 꾸준한 변주 속에서 살아간다.
음악으로 표현하자면, 내 곡은 지난 10년 간 단조 변화를 겪고 있다. 장조의 경쾌함에서 단조의 무거움으로 변주되었지만 더욱 근사해졌다.
아빠는 3악장의 끝, 4악장의 시작에 서 있다. 나보다 먼저 완성될 그의 삶이라는 곡의 변화가 부디 아름답길. 기도한 적은 없어 글로 적어보는 작은 소망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