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이별 식탁 : 됴국밥과 소고기 등심 구이

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by 신보라
KakaoTalk_20201012_001523919_03.jpg 오늘의 저녁 식사



힘이 하나도 없던 일요일. 계획했던 일을 모두 취소하고 침대 위에 누웠다.

이제 할 일이 없는 데도 더욱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그리 넓지도 않은 침대를 큰 몸으로 천천히 휘젓던 때에, 도어록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띵띵-띵띵. 느린 박자, 긴 중간 텀. 이 박자는 아빠가 확실했다.

식사를 거르고 싶었지만 택배 물량 대란으로 주말까지 일하다 들어온 아빠까지 외면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안쓰러움 한 스푼, 인간 된 도리 한 스푼, 아직 남아있는 휴머니즘 한 스푼 털어 넣은 마음으로 오늘의 요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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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원하고 깔끔한 됴국밥, 행복 에너지 충전해 준 소고기 등심, 건더기 찍어 먹고 국에도 섞어 먹은 고추냉이



당신과 나의 열여섯 번째 이별 식탁


됴국밥과 소고기 등심 구이


됴국밥 재료

육수 재료 : 건새우, 건멸치, 다시마, 고추

고명 재료 : 대파, 표고버섯, 소고기 등심, 조미김

양념 재료: 굴소스, 고추냉이, 소금, 후추


도귝밥 만들기

물을 끓이고 건새우, 건멸치, 다시마, 고추를 넣고 육수를 냅니다. 저는 육수 티백을 썼어요.

육수가 끓는 동안, 표고버섯을 썰고 파는 반 갈라 송송 썰어서 육수에 넣어주세요.

고기에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하고 간이 잘 배도록 섞어요.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육수를 끼얹어가며 볶다가 굴소스로 간을 해요.

육수도 굴소스로 간을 해요.

그릇에 밥을 동그랗게 담고, 고기, 파, 버섯을 얹어주세요.

한구석에 고추냉이도 넣어주세요.

육수를 붓고 잘게 부순 김도 얹어 주면 끝! 저는 이 마지막 단계를 잊어버리고 말았어요.


이름이 특이한 오늘의 요리 됴국밥. 엑소 디오(D.O)의 레시피 중 하나인데 디오를 빠르게 발음한 것을 귀엽게 표현하면 됴~가 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 됴국밥.

시원하고 담백해서 물리는 것 없이 맛있는 식사였다. 조미김을 얹지 못한 실수가 있었지만 굴소스, 고추냉이로만 간을 한 국물은 부담 없이 따뜻하게 속을 채웠다. 고기는 또 어떻고. 소고기와 표고버섯 고명은 씹을 때마다 탱글탱글, 육즙이 입 안에서 팡팡 터지며 내 기분도 팡파르를 울렸다.

소고기 등심을 반으로 잘라 반은 고명으로, 반은 구워서 식탁에 올렸다. 오래간만에 먹는 소고기 등심 구이.

돼지고기와 닭고기에 비해 고소한 풍미가 좋은 소고기 맛에 젓가락은 쉼 없이 움직였다. 정신없는 식사 시간이 흐르고 그릇이 비워지면서 무동력 상태에서 억지로 살아있던 내 연료 등 불이 밝게 켜졌다.


식사 시간에는 좀처럼 말이 없는 아빠가 친절하게 소금을 찾았다. 고기를 찍어 먹어야겠다며.

소금은 어딨냐고 퉁명스럽게 요구하던 아빠는 어디 갔지요?

아빠는 소고기와 국밥에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살기 싫을 땐 소고기다. 생기를 잃었을 때, 우울에 빠졌을 때, 삶의 의미가 없을 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느껴질 때, 소고기 국밥이든 소고기 구이든 세상의 모든 소고기 중 하나라도 드셔 보시라. 세상이 조금은 달라진다. 기운이 나고,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만 세상에서 오늘 하루 정도는 무사히 보낼 수 있는 세상으로 변한다. 이래서 사람은 슬픔의 깊이만큼 잘 먹어야 한다. 나는 오늘 내 슬픔의 깊이만큼 잘 대접해주었다. 부지깽이로 마른 연료를 막 들추어내니까 그래도 불이 붙었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약하고 작은 불이지만 소중한 불이.


엄마가 아팠을 때. 내가 아픈 엄마를 간병했을 때. 그때는 엄마가 많이 아파서 한 번 입원하면 3주는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퇴원 후 소중한 일주일을 보내면 또다시 입원이었다. 3주 만에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아빠는 간병하느라 수고한 나를 데리고 한우 식당에 갔다. 비싼 가격 때문에 망설이는 나 대신, 아빠는 모둠과 특수 부위를 골라와서 식사 내내 고기를 구워주었다.

항암 치료 중이라서 소고기를 먹지 않는 엄마는 집에서 친구와 시간을 보내며 우리를 기다렸다. 우리 없이 친구와 좋은 시간을 보내라는 나름의 배려였지만 뜻밖에도 엄마는 둘만의 외출을 서운해했다.


"둘만 가니까 좋냐. 너희 아빠는 아픈 나보다 간병하는 딸내미가 더 안됐나 봐."


너희 아빠라고 표현하는 그녀의 말에는 꽤 굵은 뼈가 있었다.

고3 때, 논술고사를 치른 날도 소고기를 먹었다. 그날, 홀로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내게 전화를 건 아빠는 긴장하지 말라고 다독였지만, 정작 더 얼어붙은 쪽은 아빠였다. 뚝뚝 끊기는 문장 사이에서 느껴지는 공기는 딱딱히 굳어 있었다.


"그래, 잘 치르고 오고, 우리 딸 사랑한다."


19년 동안 키운 딸이 대학 시험을 치르게 되어 가슴에 차오르는 감정이 컸던 것인지. 아직 자식을 낳아서 키워보지 않아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그날 갑자기 고백을 한 아빠의 마음을 어렵게 네 자로 표현하자면 감개무량이 아니었을까.

나중에 이 일화를 듣게 된 엄마는 기가 막힌 지 웃음을 터트렸다.


"둘이 아주 웃겨~"


웃기다 말하던 엄마가 지금의 우릴 보면 뭐라고 할까. 아마 나한테 잘해주라며 아빠에게 따지지 않을까 하는 오만이 내게 있다. 양평 본가에서 인천에 있는 학교까지 데려다주기를 좋아하고, 먼 지역으로 갈 일이 있는 딸을 위해 택시를 부르던 지독한 딸 바보인 엄마는 분명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아빠한테 덜 못됐게 굴지 그랬냐며 핀잔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소고기를 먹고 녹슨 마음에 기름칠을 한 나는 오늘 고기도 씹고, 이렇게 추억도 씹어 본다. 오래간만에 씹어 본 추억은 질겅거린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 잠시 운치는 있었다. 오래된 장면의 분위기 앞에 잠시 멈춰 섰다가 씹던 것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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