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바람이 귀엽게 부는 도시는? 바람이 '분당'.
쉰내 나는 개그에 피식거리는 것을 보니 내 인생이 싱거워졌나 잠시 착각할 뻔했다.
싱거워지기는커녕 지독한 매운맛으로 속에서부터 불이 치미는데도 말이다.
요즘 날씨는 이 뜨거운 속을 식히기라도 하듯 찬 바람이 분당.
환절기와 찬 공기로 휴지를 달고 사는 비염인은 괜히 몸 전체가 허해진 듯하다. 이럴 땐, 에너지 불끈! 보양식이 필요하다. 여름 복날에도 찾지 않던 보양식을 먹어보자.
당신과 나의 열일곱 번째 이별 식탁
삼계탕용 닭에 불린 찹쌀 3~4 큰술, 통마늘 2개를 넣으세요. 인삼·대추·깐 밤 각 1개를 넣으면 더욱 맛있겠죠
물 2.5L에 한방 티 백을 넣고 40분간 끓입니다. 성격이 급하시다면 조금 덜 끓여도 괜찮아요. 대신 물도 적게 넣어야겠지요!
한약재 육수에 닭을 넣고 센 불에 10분, 중 불에 30분, 약 불에 10분 끓인 뒤 10분간 뜸을 들여요.
뚝배기에 닭과 국물을 옮겨 담고 한소끔 끓으면 송송 썬 파를 올려 완성합니다. 아이쿠 저는 파를 깜빡했네요.
잠이 들 깰 수도 있는 위험한 음식, 들깨 닭죽은 대기업표 레토르트 제품이다. 늘 뒷심이 부족해서 음식의 화룡점정을 찍지 못하는 나를 위한 레토르트 제품! 닭죽으로 오늘의 화룡점정을 구수하게 찍었다. 시력 1.5 (좌), 1.0 (우)의 우수한 눈을 가진 내게는 선명하게 보이는 예쁜 핑크 쏠트에 닭고기를 찍어 먹으면 맛마저 그리 예쁘다.
추석과 한글날 연휴로 택배 대란을 끝낸 성식 씨는 호로록 촵촵 삼계탕 한 뚝배기를 뚝딱 해치웠다.
오래간만에 성식 씨의 작은 성이 온기로 가득 찼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먼 지방에서 일을 하던 아빠는 얼굴 보기가 귀했다. 한 달에 한 번, 아빠가 집에 오는 시간은 이른 저녁 즈음이었고, 엄마는 삼촌의 피자가게에서 바쁘게 일할 때였다.
엄마 없는 저녁, 성식 씨는 과연 우릴 위해 무엇을 차려냈을까?
영양가 많은 고기 요리면서, 아빠와 어린 우리가 모두 잘 먹을 수 있고, 조리까지 쉬운 요리는 삼계탕이나 백숙이었다. 닭을 품은 압력밥솥이 칙칙 칙칙 내던 소리. 그 시간의 기억은 내게 소리로 남았다. 압력밥솥의 습기를 품은 칙칙 칙칙.
아빠가 해 준 닭요리를 다시 먹은 것은 20여 년이 흐른 뒤였다.
사업이 망하고 혼자 살던 방까지 빼야 했을 때, 길거리로 내몰린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아빠 집 밖에 없었다.
온 가족이 살던 집을 정리하면서 이제부터 영원히 혼자 잘 살리라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돌아온 탕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를 일이었다. 참으로 멋쩍고 민망하기도 해서, 오히려 뻔뻔하게 들어갔다. 아빠의 동의는 구하지 않은 상태였다.
갑자기 쳐들어오는 망해버린 딸과, 그의 친구들이 옮기는 이삿짐에 아빠는 말을 잃었다. 그러다가 이삿짐을 옮겨주던 친구와 내 뒷담을 하기도 했다. 웃음으로 덧입혀진 상황이었지만 그렇게나마 답답한 속을 풀어야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2년이 흐른 지금에야 도착했다. 이런 생각은 늘 그때 그 순간에는 닿지 못한다.
야반도주하듯 깜깜한 밤에 치른 이사 후, 대강 짐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씻고 나와 자리에 앉았다.
아까부터 참아 온 아빠는 홀가분히 자려는 나를 막았다. 사업 정리 후 뒷수습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말하다 보니 지금껏 하지 못한 잔소리와 화가 폭발했는지 결국 이야기는 이 지경이 된 내 처지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그날 밤 많이 울었다. 소리 내어 울다가 자존심에 숨죽이기도 하다가, 끝없는 반복에 결국 지쳐 나가떨어질 때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아빠 말대로 나는 이미 망한 인생이니 이대로 죽는 편이 낫겠다 싶었지만, 그때 깨달은 것은 자연사가 제일 어렵다는 것이다.
새벽, 익숙한 소리가 귀를 깨웠다. 역시, 자연사는 어렵다. 또 살아 있었다 나는. 이렇게 깨버리다니.
칙칙 칙칙. 날 깨운 것은 습기를 품은 소리였다. 그때 그 소리, 압력밥솥 소리였다. 눈동자가 행여 눈에 띌까, 가장 좁은 시야만 확보할 수 있도록 가장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열린 문 밖을 보았다.
새벽 출근을 하는 아빠가 백숙을 하고 있었다. 백숙에 이상한 재료라도 넣나 싶어서 더 살피고 싶었지만 밤새 눈물즙을 짜낸 덕에 눈꺼풀은 내 인생의 짐만큼이나 무거웠다.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나서 부엌의 백숙을 보았지만 손 끝도 대지 않았다. 그것은 자존심이었다.
종일 돈도 없이 뭘 어떻게 먹고 돌아다녔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하여튼 하루는 잘 먹고 잘 보냈다. 다시 나가서 살 집을 알아보다 보니 밤은 금세 찾아왔다. 퇴근해서 돌아온 아빠 앞에 그대로 남은 백숙 그릇이 있었다.
"내일은 이거 먹어라. 네 거니까."
대답은 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것도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뼈만 남기고 다 먹은 것은 자존심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백숙을 뚝딱 해치운 나는 새롭게 출발할 집을 구했다. 아빠는 이삿짐을 옮겨 주고, 몇 번 그 집에 들렀다. 파스타를 사주러 온 적도 있었다. 별 일 없었다는 듯 그렇게 지냈지만 나는 그때 아빠가 날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으로 아빠를 조용히 미워했다.
내 미움은 고요하고 잔잔했다.
가끔 부인도 없이 늙어가는 아빠가 가여울 땐 잘해줘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이면서도 이따금씩 튀어나오는 미움의 잔재들이 있다. 손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미세한 먼지처럼 남아있는 마음들.
기억 속의 아빠는 계속해서 손을 내밀었는데 왜 나는 꼭 미움의 자물쇠로 그 일을 끝내 잠가버려야 했을까.
어쩌면 그때 나는 그 편이 쉬웠는지도 모르겠다.
일부러 꺼내는 화해가 멋쩍어질 정도로 시간이 흐르고, 사실은 마음 속 원망이 터트린 한 마디가 찰나의 미운 말 밖에 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사과도 용서도 요구하지 않는 식탁 위로 마음을 차려낸다.
내 미움이 준 상처들에 너무 아파하지 말고, 곱씹지도 말고 따뜻한 삼계탕 국물과 함께 넘기고, 또 기운 내시길. 이 긴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