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이별 식탁 : 팥빙수

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by 신보라
오늘의 저녁 식사




말도 없이 저녁을 먹고 들어온 성식 씨.

평소 같았으면 전화라도 해주지 그랬냐며 짜증을 냈겠지만 오늘은 인생 대한 고민으로 저녁 시간을 그냥 보내버린 탓에 내 목소리는 사근 했다.


"저녁 먹고 왔어? 그랬구나."


초점도 없이 멍 때리다가 아빠의 도어록 소리에 정신이 들었던 나는 멋쩍게 다행스러운 상황에, 시원한 게 먹고 싶다는 성식 씨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아주 아주 기꺼이.


이제는 어깨를 움츠릴 정도로 공기가 차가워졌지만 아직 차가운 디저트를 원하는 성식씨는 참 뜨거운 남자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라는 얼죽아 협회가 있다. 성식씨는 동명의 다른 협회 회원이다. 바로, 얼어. 죽어도. 아이스크림 협회. 강물이 얼고, 수도관이 동파되어도 아이스크림 쇼핑을 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열혈남아가 바로 성식 씨다. 아직도 뜨거운 청춘인 성식 씨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중 하나가 빙그레 팥빙수 아이스크림이다.


유일하게 포장 가능한 팥빙수를 파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카페에서 뜨거운 그를 위한 팥빙수를 공수해왔다.




(왼쪽부터) 오마나 쫀득한 인절미쟈냐?, 달디 단 팥 위에 콩가루, 부드러운 우유 얼음



당신과 나의 열여덟 번째 이별 식탁


팥빙수



여름이 되면 길거리 많은 빵집과 카페에서 빙수를 출시한다. 프랜차이즈 빙수 전문점까지 생기면서 빙수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졌다. 정통파 팥빙수를 비롯해서 딸기빙수, 망고빙수, 멜론빙수 같은 상큼한 과일빙수, 오레오 빙수, 커피빙수 등 다채로운 빙수의 시대에서 우리는 눈과 입 모두가 즐겁다.


나는 지금의 LG가 Gold Star, 금성이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그때는 가정에서 빙삭기로 팥빙수를 직접 해 먹는 것이 유행이었다. 기계라고 칭하기는 다소 귀여운 빙삭기지만, 그보다 더 귀여웠던 나와 친구들은 빙삭기를 팥빙수 기계라고 불렀다. 아주 거창하게. 친구들이 하나둘씩 "나 어제 집에서 팥빙수 기계로 팥빙수 만들어 먹었다?"며 마치 금은보화 재산 뽐내듯 자랑하기 시작했을 때, 난 별 기대가 없었다. 우리도 팥빙수 기계 사자고 말하면 늘 그렇듯, "돈 없어."라는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부러움도 기대도 없이 무던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슥슥슥슥 무언가 갈리는 소리에 부엌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옛날 자동차의 창문 손잡이 같은 것을 돌리고 있었다. 슥슥슥슥 손잡이를 돌리자 얼음이 내려오는 그 기계는 빙삭기였다. 우리 집에 처음 생긴 빨간 빙삭기.


"우와! 팥빙수 기계다!"


빨간 빙삭기 옆으로 연유와 각종 식당용 통조림이 줄 지어 있는 모습이 마치 열 맞춰 선 졸병들 같았다. 젤리 통조림, 후루츠 통조림, 팥 통조림과 빨간 빙삭기가 올라온 부엌의 식탁은 어린 내게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에, 이런 세계가 있다니. 갑자기 엄마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서 이 많은 것들을 다 산 것일까 생각했다. 어린아이도 편견은 있다. 딱딱하게 굳은 어른들보다 말랑말랑하고 무궁한 상상의 세계를 가진 것이 아이의 내면이지만 그런 어린이들도 치우친 판단을 한다. 나는 엄마가 빙삭기를 집에 들이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앞집 엄지네 엄마는 계란이 볶음밥을 예쁘게 품은 오므라이스를 만들어주었지만 엄마는 달걀을 볶음밥 위에 얹기만 했을 때, 난 엄마가 옛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지네 엄마는 우리 엄마를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고, 도시에서도 오래 산, 신식 아줌마였다. 신식 아줌마의 오므라이스와 많이 달랐던 효숙 씨 표 오므라이스에 실망한 뒤로 내게 박힌 엄마의 설정 값 중 하나는 '옛날 사람'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돈가스를 만들어서 경양식 집의 플레이팅과 똑같이 해주었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빙삭기를 들여왔을 때는 큰 감동을 받았다.

아니 엄마가? 옛날 사람인데?

작은 것에 크게 반응하는 날 보는 엄마의 얼굴에 민망함이 스쳤다. 영악하게도 그게 조금 재밌었다.


"으아니?!! 으아니 이런 게 우리 집에 있다니!!!"


계속되는 충격 표현에 엄마가 결국 눈을 흘기며 그만 하라는 말을 하고서야 까불랑대던 것을 멈췄다.

어린아이의 시각이 아직 엄마의 마음에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지만, 생각래보면 그때의 편협한 설정 값과 달리 엄마는 트렌디한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양육방식이 트렌디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데뷔한 HOT, 그중에서도 토니를 좋아하자 HOT 음반과 토니 사진이 들어간 다이어리를 사주기도 했고, 유행하는 가장 예쁘고 세련된 옷가지를 사주는 것은 엄마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내가 또래 아이들 사이의 유행에서 뒤처지지 않는 것에 안도하는 것, 하굣길 아이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나를 보며 흐뭇해하는 것은 즐거움의 결과였다. 사실 나는 옷이 아니어도 우량한 체격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아이였는데도 말이다.


엄마와 달리 아빠의 트렌디함은 조금 독특하다. 58년 개띠의 다른 아저씨들보다 열려 있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으로, 사윗감에 대해 어떤 인종의 사람이어도 상관없다고 말하면서도 이왕이면 잘생긴게 좋으니 흑인이라면 윌 스미스 닮은 사람이길 기대한다. 언젠가 한 번은, 동생의 결혼식 때 받은 정장이 옷장에만 있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일부러 차려입고 나와 친구를 데리고 카페에 간 적도 있다.

노후에는 자식들 없이 혼자 살겠다고 말하는 그의 이런 모습은 시대를 앞서가는 독립적인 어른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는 여전히 삼시 세 끼를 바로 앞에 차려주길 바라는 전근대적 영감님이다. 마치 반대의 극을 양쪽에 끼고 있는 자석이랄까. 신자석 씨는 밤 10시에 딸이 나가서 사 온 팥빙수를 먹으며 영화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트렌디하게 마무리했다. 그 영화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 한국식 알탕 영화를 좋아하는 다른 아저씨들과는 확실히 다른 그의 취향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조용히 그의 작은 성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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