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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이별 식탁 : 우삼겹 솥밥

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by 신보라 Oct 21. 2020
오늘의 저녁 식사




그대 냄비밥을 아는가?

나는 냄비밥을 시도해 본 역사가 없다. 딱 맞게 물을 맞추고 적당한 시간에 열어 휘저어준 후 뜸 들이기까지 해야 하는 이 정성과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작업에 나 같은 망아지 나부랭이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면서 냄비밥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90년대생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왜냐면 우린 코펠이란 것을 싸들고 야영을 했던, 옛날식 야영 세대이기 때문이다. 옛날이라고는 표현하고 싶지 않지만, 이 싫은 마음부터가 싱그러움이 퇴색되었다는 증거다. 내 젊음에 자신 있다면 그런 마음 따위 없을 테니까.


코펠이 없어서 야영을 할 때면 김치나 버너를 들고 가는 역할을 했던 나는, 코펠 주인들이 냄비밥을 하는 모습을 옆에서 멀뚱히 지켜보기만 했다. 옆에서 본 그들의 모습은 마치 부르주아가 베어그릴스로 환생한 모습 같았다. 코펠도, 집 바깥에서의 생존능력도 없는 어린 내가 느낀 상대적 박탈감은 그런 것이었다.


그 어린아이는 지긋한 서른둘의 여인이 되어 코펠보다 좋은 뚝배기라는 것을 갖고 있다. 밥도 먹음직스럽게 할 차려 내는 능력치까지 키웠다. 오늘은, 옆에 선 야영 동료들은 없지만 그때 다 하지 못한 냄비밥 대신, 더 맛있는 솥밥을 차리기로 했다.



 

밑반찬이 된 돼지갈비찜, 오징어 젓갈, 우삼겹 솥밥의 항공샷, 들춰보면 고기가 이렇게나 많아요~~!




당신과 나의 스무 번째 이별 식탁


우삼겹 솥밥


우삼겹 솥밥 재료 : 쌀(200g), 우삼겹 먹고 싶은 만큼, 쪽파, 당근(1/2), 표고버섯(2), 기호에 따른 나물 (혹은 우엉), 버터 약간, 소금, 후추 달걀 4알, 참깨


우삼겹 솥밥 만들기

쌀을 씻어서 30분간 불려요.

쪽파는 송송송, 당근은 탕근! 탕근! 채 썰고, 표고버섯은 버스엇 버스엇 썰어 줍니다.

인터넷 레시피 상에는 우엉을 감자칼로 벗겨냈지만, 우엉이 없어서 비빔밥 재료로 쓰고 남은 나물을 손질!

우삼겹을 구워요. 이때부터 냄새가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구워진 우삼겹을 프라이 팬에서 덜어내고, 기름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버터를 약간 투하하고 손질한 나물, 표고버섯, 당근을 볶아요.

채소의 숨이 죽으면 물 4큰술과 함께 불린 쌀을 넣어서 뒤섞어 줍니다.

뚜껑을 덮고 중불에서 10분!!

10분 후, 구워둔 고기를 넣고 다시 뚜껑을 덮어서 약불로 5분!!

5분이 지나면, 불 끄고 다시 5분간 뜸을 들입니다. 뚜껑은 절대 열지 마셈.

뜸 들이기가 끝나면 뚜껑을 열어서 송송 쪽파를 뿌려주고 달걀노른자를 살포시 얹어 줍니다. 그 위에 참깨르르르르 뿌려주면 완성!


이것이 어른의 솥밥이다. 코펠로 요리한 설 익은 밥과 덜 여문 손끝으로 만든 어설픈 음식과는 차원이 다른 맛과 재료로 탄생한 성인용 솥밥. 캠핑 가서 우삼겹 솥밥을 만들어 먹을 일은 없겠지만, 이제는 캠핑 용품을 부러워하지도, 냄비밥에 두려움을 갖지도 않는 내게서 어른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 냄새는 시더우드 향을 닮았고, 그 묵직함은 지금껏 나 스스로를 키우기 힘들었던 노고가 담겨있다. 엄마가 떠나고 아빠에게서 독립했던 지난날은 자유롭고 또 어렵고 가난했다. 자유는 돈으로 사는 것이었다는 것을 오롯이 혼자가 되어서야 알았다. 더는 자유를 살 돈이 없어서 아빠와, 동생 부부, 조카까지 온 가족이 모여 살게 되었고, 자유는 돈으로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마음에서 줄곧 떠나질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 독립을 준비한다. 첫 독립 후, 왕년에 프린세스 메이커 하던 버릇으로 날 키웠지만, 미성숙한 유저는 결국 거지 꼴을 면치 못했다. 그 많은 프린세스 메이커의 엔딩에서 거지는 못 본 것 같은데, 하여튼 나는 대단한 것을 이뤄냈다. 사업실패로, 독립 후 2년 반 동안 셀프 빚쟁이 메이커가 되었고, 말랑한 20대가 아닌 강퍅하고 억센 30대의 나를 다시 한번 키우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대체 엄마, 아빠는 날 어떻게 키웠을까. 난 나 스스로를 감당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2년 전과 비교해서 얼마나 어른이 되었는 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2년 전의 나는 코펠이 없던 초등학생에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냄비밥이든, 솥밥이든 힘을 다해 성실히 만들어 낼 기운 하나 없었다. 뚝배기 깨버리겠다는 말만 할 줄 아는 괴팍한 놈일 뿐이었다.

기운도 없이 성질만 내던 사람이 이제는 정성스레 솥밥도 차려내고, 달걀노른자 분리도 할 줄 안다. 새삼 기특해서 괜히 코 밑을 문질러 보았다. 그래, 내 성장은 조금 더디다.

 

오랜 식사 시간 후, 아빠가 설거지통에 두고 간 뚝배기를 보았다. 바닥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어른 냄새에 도취되어 몰랐다. 밥을 조금 태운 모양이다.

그러나 성식 씨는 탄 밥 마저 자작한 물에 숭늉 삼아 다 드셨다. 육십삼 세의 성숙함이란 이런 것인가.

나는 아직 멀었다. 이제 막 나부랭이에서 애송이가 된 나는 아주, 아주 더디게 어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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