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이별 식탁 : 오리 주물럭

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by 신보라
오늘의 저녁 식사




5년 전, 도서관에서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도서관 근처에는 오리 주물럭 맛집이 있었는데, 친구 미미가 그곳을 참 좋아했다. 머리카락이 가끔 나올 때가 있어서 싫지만, 사장 할머니의 맛의 비법이겠거니 생각한다던 그녀. 차로 30분이나 걸리는 이 먼 동네를 찾아오기도 했던 그녀와 오리 주물럭 한 마리를 너끈히 해치우던 아주 강했던 시절이었다. 마지막 코스, 볶음밥까지 맛있었던 그 오리 주물럭 식당은 이제 없다. 가질 수 없는 것에 갖게 되는 간절함처럼, 가끔 그 오리 주물럭이 미치도록 그리울 때가 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우거지 된장국, 제육볶음처럼 보이는 오리 주물럭, 매운 음식에 찰떡인 쌀밥



당신과 나의 스물두 번째 이별 식탁


오리 주물럭


오리 주물럭 재료: 오리고기 300g, 고구마 1개, 양파 1/2개, 대파 1 뿌리, 표고버섯 2개, 떡볶이 떡 약간, 고추장 2큰술, 올리고당 1큰술, 설탕 1큰술, 고춧가루 1큰술, 맛술 1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참깨 적당량


오리 주물럭 만들기

고구마는 껍질을 벗기고 스틱 모양으로 썰어요.

양파, 표고버섯은 두껍게 슬라이스하고 대파는 반으로 갈라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썰어요.

떡볶이 떡은 물에 넣어 불려주세요.

오리 정육, 고구마, 양파, 표고버섯, 떡볶이를 그릇에 담고 고추장, 올리고당, 설탕, 고춧가루, 맛술, 다진 마늘, 참깨를 넣고 잘 버무린 후 30분 정도 양념에 재워놓아요. 쿨쿨 잘 자렴.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르지 말고 양념된 고기를 물기 없이 볶아내면 완성!


불포화지방산 단백질이 많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좋은 오리고기. 다른 육류에 비해 식감이 좀 특이하다. 고기의 결이 없달까. 그래서인지 오리 훈제요리보다는 매큼한 양념이 잘 베인 오리 주물럭을 더 좋아한다. 오늘의 오리 주물럭은 양념이 특히 잘 되어서, 떡에서 익스트림 프리미엄 특급 떡볶이 맛이 났다. 어머, 이것은 내가 먹어야 하는 떡볶이다. 그릇을 하나 더 꺼내서, 떡볶이를 덜고 아빠에겐 단백질로만 이루어진 고기 그릇을 멋지게 양보했다. 오리 주물럭 양념이 벤 떡에서 오리고기의 기름 때문 인지 단순한 떡볶이가 아닌, 기름 떡볶이의 맛이 났다. 96년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최고 좋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했다. '울트라 캡숑 나이스 짱'. 맛도, 기분도 말하자면 울트라 캡숑 나이스 짱이었다.


오늘이 살아있는 마지막 날이라면 무얼 먹을까?

친구 중 하나는, 생애 마지막 날이면 떡볶이를 먹겠다고 했다. 오늘 먹은 울트라 캡숑 나이스 짱 떡볶이는 죽기 전에 생각날 수도 있겠지만, 슬프게도 나는 마지막 날에 대한 답을 적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최후의 날에 대한 대답은 낭만이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거예요.' , '인생 영화를 보다 죽을 거예요.',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진심을 전할 거예요.' 이상과 멋,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들의 답이 그저 부럽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겪지 않은 마지막에만 허락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겪은 마지막은 낭만으로 표현할 수 없다.


엄마와 병원에서 생활할 때, 그 날들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지면서 하루라도 집에서 자고 싶다는 마음이 깊어졌다. 바쁜 업무 탓에 시간을 내기가 좀처럼 힘든 아빠가 겨우 하루의 시간을 내주었다. 아빠와 교대하고 집으로 온 하루, 마음 놓고 씻고, 편히 누워 잃었던 일상을 누렸다. 찰나였지만 행복했다. 오래 느껴서는 안 되는 미안한 행복이었다. 다음날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 오리 주물럭을 포장했다. 엄마만 두고 혼자만 도망쳐 나온 것이 미안해서, 도통 먹지 못하는 엄마의 입맛을 살리고 싶었다.


"괜히 고기 먹고 안 좋아지는 건 아닐까"


암환자들 사이에선 어떤 음식이 좋고, 나쁘다는 이야기들이 분분한데, 엄마는 고기를 지양하는 쪽이었다. 건강할 때도 풀만 먹던 사람이 고기를 더 지양할 게 있나 싶었지만, 어쨌든 그녀의 선택이었다.


"고기 먹어도 나을 사람은 낫고, 아플 사람은 아파. 그냥 먹어. 맛있는 거라도 먹어야지."


"그래, 네 말이 맞다. 고기가 무슨 상관이야."


한동안 의식이 없던 엄마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며칠 중, 가장 식사다운 식사를 한 날이었다.

이틀 뒤 엄마는 아빠를 남겨두고, 많은 이들을 울리고, 나를 떠났다. 오리고기는 엄마의 마지막 식사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기라도 실컷 먹일 것 그랬어."


"괜찮아요. 마지막에 고기 먹었어요. 양평에서 포장해와서, 그거 조금 먹었어."


남겨진 사람들은 후회를 끌어안아야 한다. 딸 같은 동생을 보낸 이모도 그랬다. 마지막에 고기를 먹었다는 내 말에 이모는 '그래', '그랬구나', '잘했네'라는 말만 반복하다 결국 문장을 끝맺지 못했다.


오늘 아빠는 오리고기를 많이 남겼다. 오늘 요리한 된장국과, 어제 만들고 남은 콩비지를 마저 비우며 참 맛있다고 할 뿐, 오리고기 그릇은 몇 점 먹지 않은 채로 싱크대에 올렸다. 혹시 엄마의 마지막 음식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이냐고 물을 뻔했지만, 의심으로 묻었다. 육식주의자가 고기를 남긴 것이 이상스러웠지만, 내일도, 모레도 더 맛있는 비장의 메뉴들이 남아 있으니까. 이런 집착. 가끔은 나만 밥을 차려야 하는 이 상황을 미워하기도 하면서 얼마나 많이, 맛있게 먹었는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자신을 피곤하게 한다.

스스로에게 답해보자면,

나는 마음이 평온할 수 없는 후회라는 그어진 금을 끌어안고 살면서 계속해서 이것들을 지우기 위해 부단히도 식탁을 차려내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이모와 같은 후회를 하면서, 안온한 상태를 벗어난 마음을 바라보고 쓰다듬는 나만의 정성스러운 의식을 매일매일 치러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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