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이별 식탁 : 짜장면과 멘보샤

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by 신보라
오늘의 저녁 식사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지만, 성식 씨는 짜장면을 좋아한다.

나는 얼큰한 짬뽕을 좋아해서, 어쩌다 짜장면을 먹게 되면 한 그릇을 다 못 먹고 남기곤하는데, 내 기억에 아빠는 한창 때 늘 짜장면을 곱빼기로 먹던 남자였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곱빼기에서 보통 사이즈로 다운그레이드 되었지만, 탕수육과 군만두를 남김 없이 먹는 것을 보면 그의 여전한 중식 사랑을 알 수 있다.

중식당은 점심 장사가 피크여서 저녁에는 다른 식당에 비해 빨리 문을 닫는 편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의 중식 사랑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늦은 밤, 집에서 짜장면과 멘보샤를 해보았다.




오이도, 애호박도 넣지 않아서 너무 슬픈 짜장면, 심하게 맛있는 멘보샤



당신과 나의 서른아홉 번째 이별 식탁


짜장면과 멘보샤


짜장면 재료 : '120도 고온으로 볶아 진한 불맛과 큼직한 건더기 간짜장', 계란 1알


짜장면 만들기

'120도 고온으로 볶아 진한 불맛과 큼직한 건더기 간짜장'을 구매하세요.

포장지를 뜯고 끓는 물에 면과 건더기를 넣고 2분간 끓입니다. 2인분이라면 3~4분간 끓이세요.

면이 80% 정도 익으면 프라이 팬에 면과 건더기, 소스를 붓고 30초간 볶아요.

그릇에 옮겨 담아요.

계란 1알을 삶고 반으로 갈라서 올려 주세요. 오이도 있으면 좋아요!


멘보샤 재료 : '시그니쳐 멘보샤', 칠리소스


멘보샤 만들기

'시그니쳐 멘보샤'를 구매하세요.

포장지를 뜯고 에어프라이어에 넣으세요.

180도에서 12~14분간 익히세요.

칠리소스와 함께 플레이팅 하면 완성!




오늘의 짜장면은 굉장히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오이나 애호박을 채 썰어서 올렸어야 했는데 아무 생각이 없었다. 초저녁 시간을 활용할 줄 몰라 잠들어 버린 탓이었다. 얼마 전, 임금을 체불한 사회 악인 회사에서 나와 퇴근이 빠른 곳으로 이직했다. 덕분에 늘 지하철에 머물러 있었던 초저녁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되었는데, 자유를 줘도 만끽하지 못하는 바보처럼 '이제 뭐 할까' 설레는 고민만 하다가 골아 떨어진 것이다. 깜빡 잠들었다고 하기엔 2시간이 넘는 깊은 수면에 빠졌고, 퇴근한 아빠가 요란하게 씻고 나오는 소리에 겨우 의식을 찾았다. 눈은 떴지만, 머리에 안개가 끼었는지 뇌가 내린 명령은 길을 잃고 신체에 좀처럼 도달하지 못했다. 삐그덕 삐그덕, 몸이 기억하고 있는 과정만 뚝딱대며 겨우 식탁을 차려냈다. 그러다보니, 고명으로 올라 갈 재료들이 빠진 것이다. 계란도 덜 삶아져서 흘러내리는 노른자가 나 대신 울었다. 그럼에도 중식 사랑 성식 씨의 2인분이나 되는 짜장면은 게눈 감추듯 없어졌다. 역시, 뇌와 신체의 부조화 족에서도 내 몸은 이 짜장면 양으로는 2인분을 해야 그를 만족시킬 것을 알고 있었다. 귯 바디.


내가 본 남자들은 모두 돈까스, 제육볶음, 짜장면이면 한 끼 뚝딱 해치우던 공통의 취향을 갖고 있었는데, 그 모든 남자들 중에서도 아빠가 가장 짜장면을 좋아했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가족에게 처음으로 손수 해준 요리도 짜장면이었다. 고기와 양파를 볶고, 짜장 소스를 만들어서, 삶은 라면 사리에 부어주던 아빠의 짜장면. 99번 못해도 1번 잘하면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것 처럼, 부엌 살림은 일절 하지 않는 아빠가 처음으로 차린 짜장면 요리에는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후한 점수를 주었다.

아빠는 이때를 기억 할까. 동생과 나에게 너희들은 스스로 컸다며, 아빠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자신의 평가가 관대하지 않은 성식 씨에게도 가족들을 위해 식탁을 차리던 풋풋한 때가 있었다는 것을.


팍팍한 삶은 처음의 포부를 꺾고 시들게 하고, 소중한 것들을 성가시게 만든다.

가장이 된 성식 씨의 시작도 설렘과 다정함, 일렁이던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여유 없이 힘든 시간들이 그것들을 갈아 없애는 동안 우린 어느새 나이가 들어버렸다. 이젠 기억으로만 남았지만, 영원히 그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들에 이 기억은 빛을 발해서, 결국 인간적으로 그를 조금이나마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 모두에겐 풋풋했던 처음이 있었다. 그 색이 바래고, 낡아 떨어져 변해버린 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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