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3년 전, 엄마와의 반평생 살던 집을 떠나 첫 독립을 하고,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가끔 다 같이 모여서 밥 한 끼 함께 하기를 원했던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은 채선당이었다. 맑은 국과 칼국수, 얇은 소고기, 그리고 무엇보다 샐러드 바의 메뉴들이 성식 씨의 취향이었다.
이후, 다 같이 모여 살게 될 때쯤, 채선당은 사라졌고 그 자리엔 무한리필 갈빗집이 들어왔다. 갈빗집의 기와집 모양의 낯선 로고를 보며 통탄스러워했던 성식 씨. 집에서는 보통 국과 고기반찬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식사를 하기 때문에, 집 안에서 샤브샤브를 먹을 일 마저 없었다. 샤부샤부를 그리워할 그의 마음을 헤아려, 오늘만큼은 번잡스럽게 가정식 샤브샤브를 준비해 보았다. 가정식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그저 집이라는 공간에서, 국자를 잡은 내 스타일로 할 뿐.
당신과 나의 스물네 번째 이별 식탁
재료를 예쁘게 다듬어요. 단호박은 얇게 대파는 작게 송송 썰어 주세요.
고추냉이는 간장에 담고, 스위트 칠리소스와 함께 소스 그릇에 담아 주세요.
물 1000ml에 소고기 진육수를 기호에 맞게 넣어 주세요. (소고기 진육수 대신 감자면 수프 혹은 쯔유를 넣어도 맛이 비슷하답니다)
육수를 넣은 물을 끓이고, 다듬은 채소와 소고기 순서로 넣어서 먹어용!
이후, 칼국수 - > 쌀과 달걀을 넣은 죽을 순서대로 만들어 먹으면 을매나 맛있게요
분명 식당에서는 샤브샤브를 강태공의 마음으로 느긋하게 먹었던 것 같은데, 가정식 샤브샤브 식사 시간은 싸이 버거 먹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집이 언제부터 맘스터치였던가. 챱챱챱 빨리 감기 속도의 샤브샤브 낚시질은 건더기 하나 없이 차박차박 한 국물을 보고서야 끝이 났다.
어머, 내가 언제 청경채 너를 이렇게 다 부셔버렸지? 어머나 세상에, 소고기는 그릇에 기름기만 남기고 자취를 감추어버렸구나?
쉽지 않은 전투였지만 이것은 일차 전일뿐이다. 샤브샤브의 백미 칼국수와 죽이 남아 있었다.
식당에선 셋이 가서 한 공기만 주문해서 죽으로 만들었고, 남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2.5 공기나 넣었다. 밥솥의 마지막 한 알까지 담은 죽이었다. 속이 든든해지는 식사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오래간만에 엉덩이를 흔들며 발을 굴렀다. 온갖 오두방정을 떨어가며 설거지통 앞에 섰다. 분명 식사 준비할 때만 해도 비워있던 설거지 통에는 나도 모르는 새에 갖다 둔 아빠의 그릇들이 벌써 목욕재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벌써 다 먹었어?"
"어~ 오래간만에 무니까 맛있네."
만족스러움이 느껴지는 그의 말. 덩달아 나도 흡족해져서 수세미에 세제를 퐁퐁 뿌려 거품을 만들고 있는데, 방으로 들어가다 다시 나온 아빠가 말을 이었다.
"옷을 좀 사야 되겠는데. 케이투 같은 걸로. 인터넷 쇼핑몰 아나?"
쌀쌀해진 날씨에 맞춰 나도 옷차림이 싹 바뀌었다. 전에 입던 옷을 꺼내면, 고작 한 계절 지났을 뿐인데도 유행처럼 빠르게 지나간 세월이 느껴져서 괜히 입을 옷이 없어지고 새 옷을 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이 든 아저씨에게도 비슷한 마음이 있을 것이다. 나이를 먹었지 청춘을 잃은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평소에는 좀처럼 꺼내지 않는 겉치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자꾸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아무리 숨겨봤자 제 기운 못 숨기는 봄바람의 냄새랄까. 과년한 처자인 내 인중에 묻은 냄새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봄비 없이 메말라버린 나라는 땅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일은 없다. 적어도 지금은.
채선당이 아직 있던 그때, 아빠는 할 말이 있으니 다들 주말에 채선당으로 모이라는 전갈을 아주 자주 내렸다. 이번엔 또 어떤 말로 나를 화나게 할까 너울거리는 마음을 숨기느라 더없이 개방정을 피워댔지만 아빠가 말한 '할 말'이란 것이 비밀 코드쯤은 되는 것인지 그것의 정체를 모른 채 식사를 마친 것이 대부분이었다.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았던 비밀 코드는 채선당 회동이 네 번째쯤 되던 때, 선언처럼 밝혀졌다.
"나는 이제 노후대비를 해야 돼. 여기서 더 늙어서 너희들이랑 같이 살 수 없어. 그렇다고 혼자 살기에도 힘드니까, 결혼 생각을 하고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에는 결혼해서 너희들한테 서로 짐 되지 않게 살아야지."
너무 차분하게 말해서 내용의 놀라움의 정도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무미건조한 아빠의 어투 때문에 마치 오늘은 일요일이고 곧 월요일이 될 거니까 침착하렴. 정도의 말로 느껴졌다. 잠시 입으로만 숨을 쉬다가 오늘 샤부샤부에 넣은 버섯이 독버섯이었나 의심이 들었다.
"혼자는 살기 힘들어. 결혼해서 둘이 같이 살아야 살림살이도 낫고, 살 만하지. 그러니까 신보라 너도, 더 늦어지기 전에 결혼을 해. 지금 네 나이가 서른이 넘었어. 시간 금방 가. 곧 마흔이야. 그때 되면 너 좋다는 남자들도 없어. 젊음이 평생 갈 것 같나."
인생의 종착점이 결혼이라고 생각하는 아빠는 나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결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발하러 미용실 문 앞까지 가서도, 여자 손님이 많으면 발걸음을 돌리는 아저씨의 결혼 계획이 믿기지 않기도 했지만, 엄마에 대한 애틋함과 상관없이, 아빠의 결혼은 바라던 바였다. 혼자된 아빠를 두고 룰루 랄라 나만의 솔로 라이프를 즐기는 것은 생각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에 콕콕 곡괭이 질을 하는 일이었다. 아빠 옆에 짝꿍이 생긴다면 내 마음이 조금 놓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백하자면, 한 점 놓치는 것 없이 내 생각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기심은 외로울 그의 행복을 비는 마음보다 훨씬 앞에 있었다. 그래서 아빠가 말한 '서로 짐 되지 않게'라는 표현이 영 가시처럼 목에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연애는 삼십 대인 나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육십 대인 아빠에게도 쉽지는 않은 것인지, 그 선언 이후 재밌게도 아빠는 짝꿍 대신 자식들과 며느리, 손녀와 살을 비비며 살고 있다. 아직 연애의 고충을 덜 느낀 것인지, 다른 남자들의 생각처럼, 자기가 시도를 안 했을 뿐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요즘도 결혼 이야기를 종종 꺼내곤 한다. 내가 독립 계획을 밝힌 뒤 어느 날엔가는 생활비도 아낄 겸, 아빠랑 둘이 사는 것은 어떠냐는 은밀한 제안을 건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여러 갈래의 생각들이 들면서, 혼자 살기 힘들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 아빠는 사실 혼자인 것은 싫은 거야, 라는 문장으로 당도했다.
더러운 사회에서 지독한 불운의 끝에 서서, 결국 월급을 받지 못한 채로 생일을 맞이한 내게 아빠는 오래간만에 용돈을 쥐어주었다. 돈이 없다는 푸념으로 강탈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아빠는 순순히 생일선물로 용돈을 내주었다. 2주가 지나고, 아빠와 이 달 생활비 이야기를 하는데, 월급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아빠가 이달 생활비는 조금 덜 주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아니 사무실이랑 집만 오가는데 왜 벌써 돈이 없어?"
임금체불로 인한 스트레스로 지긋지긋한 가난에 예민해져 쏘아붙이듯 물어보자, 아빠는 자기 도움 없이 결혼한 아들 내외를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당장 통장에 2,851원밖에 남지 않은 나는, 내 어려움은 건너뛰고 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힘들게 돈을 벌고 있는 아빠에게 화가 나고 또, 서운했다.
"아빠보다 더 잘 사는데 왜 그렇게까지 해.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냐고."
"너도 부모 돼봐라."
"난 부모 안 될 거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
어떻게서든 심보를 표현하고 싶은 치기 어린 말이었다.
그러나 진심으로 부모가 이런 것이라면 되고 싶지 않다. 내 생각만 하는 나와, 자식 생각만 하는 부모라면 싫다. 나는 이미, 힘들게 살았던 엄마를 염치없이 그리워하는 내게 넌덜머리가 난다.
나는 결국엔 혼자가 되고 싶고, 아빠는 짐이 되지 않겠다면서도 함께하기를 원한다.
나는 끝끝내 내 어려움을 더 알아주지 않아 서운했고, 아빠는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서 자식에게 돌려주고 있다.
아빠를 오랜 시간 동안 미워했지만, 이런 식으로 미움을 지속할 수 없게 되는 것도 싫다.
차라리 자식이 아닌 여생을 함께 할 짝꿍을 만나 이제 그만 성식 씨가 자유했으면 좋겠다.
아빠에 대한 말로 설명하기 힘든 마음들을 식탁 위에 차려내며 언젠가는 이 마음이 말로 표현될 정도로 정돈되기를 바랐다. 쓰레기장 같았던 곳을 단정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정갈해지는 것은 미래에 맡겼다. 요즘은 하루에 한 번, 저녁 식탁을 차려내며 꿰제제하게 뒤섞인 마음들을 하나씩 들춰 본다.
얘는 많이 묵은 아이로구나, 또 얘는 한 없이 가벼운 아이로구나, 비교적 좋은 아이로구나, 이런 것 때문에 화가 난 아이로구나, 세상에 알고 보니 지독하게 이기적인 아이로구나. 끝없이 나오는 감정의 정체들을 알아가고 이름을 붙여주며 내 마음과 친해지는 중이다. 결국 완전히 그를 이해할 순 없겠지만, 타인의 세계에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그에게서 나온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알아가면서 더 실망스러워졌지만,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나 새끼가 과연 아빠를 미워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때론 밉고, 안쓰럽고, 사랑하며, 답답하고, 또 서운하고 미안한 이 사람에게 나는 염치가 없다.
그래서 마흔 한 번의 식탁은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며, 언제고 이 식탁이 끝나게 될 때까지 우리의 이 날들에 어리석은 미련이 남지 않도록 겨자씨만 한 내 따뜻함을 상 위에 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