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우리 집은 저녁에 다들 바삐 움직인다. 밥 먹는 애기 보랴, 저녁 식사 준비하랴, 빨래하랴, 청소하랴.
바쁜 건 성인들 뿐일까. 애기도 밥 먹으랴 유튜브 보랴 눈도 손도 바쁘다.
나는 보통,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마친 뒤 조카 옆에 앉는다. 유튜브에 정신이 팔린 애기의 관심을 사기 위해 아양을 떨다 보면 금세 피곤해진다. 내 활동 에너지가 다한 것이다. 그렇게 방전된 채로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 온라인 강의를 듣다 보면,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아빠가 퇴근해 집으로 들어온다.
우당탕탕 각자의 저녁 과업을 해내느라 모두가 수고하는 이 시간. 비즤한 이 집에서 콩비지찌개를 끓여 보았다.
당신과 나의 스물한 번째 이별 식탁
돼지고기에 양념을 넣어 조물조물해주세요.
예열된 냄비에 다진 마늘(1)과 양념한 돼지고기를 넣어서 볶아주세요.
김치도 넣어 주세요. 잘 익은 김치나 묵은지가 맛있어요. 너무 많이 넣으면 좋지 않아요! 살짝 모자라다 싶을 정도로 넣고 고기와 김치가 익을 때까지 볶아주세요.
요리 금손들은 백태를 갈아 콩비지를 만들지만 저는 마트계의 금손이라 콩비지를 샀어요. 포장을 뜯어서 콩비지를 넣어주세요.
콩비지는 500g 정도 넣었어야 했는데 300g짜리 한 봉지만 사는 실수를 범했어요. 그래도 적당량의 국물은 있어야 해서 물을 큰 컵(1/2)을 넣어서 끓였어요.
비지가 별로 없이 자작한 콩비지찌개 완성!
우삼겹을 후추를 후추 후추 뿌려서 굽고, 예쁜 그릇에 담아요.
어린잎 채소를 얹고 오리엔탈 소스를 뿌리면 완성!
내가 아는 콩비지찌개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콩비지가 눈 덮인 낮은 산처럼 소복하게 올라와 있고, 재료가 퐁당 빠질 정도로 국물도 넉넉한 것이 우리 모두가 아는 콩비지찌개다.
처음 만들다 보니, 콩비지를 너무 적게 사 왔고, 육식자의자답게 고기는 너무 많이 넣었다. 덕분에 이렇게 찌개가 아닌 짜글이의 비주얼을 갖게 되었다. 보고 있자니 슬펐다. 더 보았다간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아서 얼른 한 수저 떠서 맛을 보았다. 맛마저 배신할까 봐 혀가 음미하기도 전에 비겁하게 꿀꺽 삼켜버렸다.
그런데 어맛,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전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맛있잖아?? 보기엔 콩비지 가뭄 사태였지만, 씹히는 콩비지의 양은 나쁘지 않았다. 어머, 어머. 기특하다 기특해. 이 장하고 기특한 맛을 비주얼이 다 담지 못한 것이 이내 아쉽지만, 맛의 승부사답게 오늘도 신통하게 차려낸 내가 참 귀여웠다.
모두가 식사를 마치고 하루 과업을 마무리하고 있는, 이 밤의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던 때, 느긋한 도어록 소리가 아빠가 퇴근해서 들어왔다는 소식을 알렸다.
방에서 자식 같은 고양이들을 온몸 바쳐 놀아주다가 느지막이 거실로 나갔다. 소리에 많이 늦은 반응이었다.
텅 빈 거실을 가로질러 자신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이 내 눈에 순식간에 들어왔다 사라졌다. 그렇지만 보았다. 아빠의 고개는 손녀가 까르르 웃으며 잠옷 입기 전쟁을 치르고 있는 안방을 향해 있었던 것을.
그리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간 아빠의 모습은 찰나였다. 쓸쓸하고 조용했던 찰나는 내 눈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일과의 끝을 향한 막판 스퍼트를 낸다고 옆은 보지 않았구나. 정말 바로 옆이었는데.
함께 살아도 나이가 들수록 아빠는 혼자가 되고 있었다.
생각하면 화가 나고 마주하면 밉기도 했던 그가 오늘따라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래서 성식 씨만을 위한 콩비지찌개를 끓이며 이것으로 그의 몸과 마음이 든든해지길 바랬다. 축 쳐진 기분이 오리엔탈 소스의 상큼함으로 위로 돋아나길 원했다. 다행히 그는 유일한 즐거움인, 바둑 게임과 함께 평안한 식사를 가졌다. 온전하게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520만 원의 임금이 밀려, 지난 부당해고 이후 다시 한번 노동청에 가야 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했다. 원통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누구의 응원도 없이 돌아와 하루 중 2시간가량 평온한 아빠가 너무 가엽고, 삼십 줄에 들어서기도 전에 새치가 난 올케가 안쓰러웠다. 좋은 경치 보면서 그저 멍하니 있고 싶다는 그녀. 아빠는 무얼 하고 싶을까. 나는 임금을 체불한 대표의 뺨을 치고 싶은데.
어쩌면 우릴 꿈꾸게 하는 것은 외로움일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을 먹고 자란 꿈은 하고 싶다는 기대와 이루지 못한 초라함 사이에서 뒤엉켜 우릴 살아가게 하겠지. 다 그렇게 살아간다. 별 거 없이.
이 별 거 아닌 사람들이 덜 외롭고, 덜 꿈꿨으면 좋겠다.
잘해줘야지, 오늘도 잘해주고, 내일은 오늘보다 아주 조금 더 잘해줘야지.
가지런한 마음으로, 식탁을 치우고 그릇을 닦고 거름망을 비우며 하루의 마지막 과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