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이별 식탁:추석 디저트-여의주 빵과 한과

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by 신보라
오늘의 디저트 겸 저녁 식사




하릴없는 연휴. 우리의 하루는 천천히 흐른다.

알람 없이 일어나는 오후. 베개 위에 맑스, 가랑이 사이 베버, 두 고양이들과 함께 늘어져 있다 보니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잊히곤 한다. 깜빡깜빡 꺼졌던 의식에 불이 들어오고 몸을 일으켜 세우자 '저 집사가 드디어 뭔가를 하려나 보다.' 하고 고개를 들고 쳐다보는 고양이들.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네 개의 눈동자를 뒤로 하고 거실로 나가자 배가 곯아가는 60대 남자가 있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어제와 같은 잔칫상 메뉴를 데워서 늦은 오후 끼니를 챙긴다. 잔칫상은 받을 땐 참 좋다가도 금방 물리고 만다. 수많은 평범한 나날 중 하루여야 잔칫날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잔칫상도 평범한 식사들 중 한 끼여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나 보다.

아빠는 어제 먹지 않은 돼지갈비찜을 깨끗이 비웠지만 전을 많이 남겼고, 나는 밥을 몇 술 남겼다.


각자의 침대에 누워 조금도 소비되지 않은 에너지를 충전하며 반나절을 보냈다. 양수대교 위에 짙은 푸른 어스름이 내리자, 무언가를 먹기는 해야겠고 밥은 싫은 '어중이떠중이 허기'가 느껴졌다.

이 어중이떠중이 허기에는 디저트가 제격이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준비해둔 한과와 용문에서 공수해 온 여의주 빵. 오늘의 저녁 식사는 디저트가 대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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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커스터드 여의주 빵, 우유 여의주 빵, 샐러드 여의주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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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유과, 약과, 정과 그리고 오렌지 주스!



당신과 나의 스물여섯 번째 이별 식탁


여의주 빵과 한과



밥은 더부룩할 것 같아서 디저트로 대신한 것인데 이렇게 많이 먹을 것이었으면 차라리 식사를 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성식 씨는 한과가 맛은 좋지만 많이 달다며 양보 아닌 양보를 해왔다. 그렇게 엉겁결에 한과는 내 차지가 되었고, 빵은 성식 씨의 차지가 되었다. 원체 좋아하던 샐러드 빵은 말할 것도 없이, 팥과 섞인 커스터드 그리고 우유가 입에 맞았던 성식 씨. 잠시 들린 베이커리 카페에서 이 여의주 빵을 보는 순간 이렇게 되리라 강한 확신이 들었다. 아빠가 좋아하는 조합으로 구성된 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나의 효심 덕에 빵과, 손흥민의 EPL 경기가 함께하는 성식 씨의 저녁은 행복했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돈을 쥐어주며 파리바게뜨에서 빵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킨 적이 있었다. 메뉴는 정해져 있지 않아 오롯이 내 선택에 달려 있었다. 내가 먹고 싶은 크림빵, 소시지 빵을 고르고 나머지는 나름, 어른들이 좋아할 것 같은 빵으로 바구니를 채웠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른 첨가물 없이 견과류가 잔뜩 들어간 빵이 몇 개 있었다. 초등학생인 나의 머리에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음식 = 내가 싫어하는 음식'의 등식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 손에 들려온 봉투를 열어 본 엄마와 아빠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하필 제일 싫어하는 것들만 골라서 사 왔다면서 "빵 보는 눈이 없다"라고 했다. 십 몇년 살면서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기껏 고심해서 사 왔더니 이런 이상한 말이나 들어야 하다니. 기가 막혔다. 빵 보는 눈이 없다는 말은 서른두 살인 지금까지도 들어본 적 없는 표현이다.


'맛없는 빵을 좋아하는구나', '빵 고르는 센스가 없구나', ' 빵에 대한 취향이 남들과 다르구나.' 이런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는데 하필 "빵 보는 눈이 없다"라니.

나는 그저 세상에 나 밖에 없는 어린아이여서 엄마, 아빠의 취향은 잘 알지 못했다.

아빠가 고기를 좋아하고, 엄마가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것은 워낙 자주 눈에 보여서,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마치 아빠는 까만 피부를 가졌고 엄마는 흰 피부를 가졌다는 사실처럼.

그러나 자주 먹지 않는 빵이나 음료에 대한 부모님의 사소한 취향까지 알기에는, 내 취향을 알아가는 데 급급한 때였다. 세상의 많은 먹을 것과 즐거움에 대해서 알아가고 받아들이느라 참 바빴다. 친구들과 같은 취향을 공유하면서 유대감을 느끼기도 하고,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면서 나만의 취향에 특별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나를 세워가던 때에 부모님의 취향은 관심 밖, 저 먼발치에 있었다.


아직까지도 빵 보는 눈이 없다는 말은 기가 막히긴 해도 엄마, 아빠의 취향에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엄마가 만두를 좋아한다는 반전에 가까운 사실을 알게 됐고, 아빠는 아메리카노보다는 캐러멜 마끼아또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참 지독하게 나만 아는 애새끼였다.

어느새 엄마, 아빠가 나를 만나서 키워가던 나이에 가까워졌다. 이제야 그들의 취향에 대해 공감하고, 나와의 차이를 확인한다.

서른이 넘은 지금, 나는 이렇게 다시 한번 나를 세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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