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나도작가다공모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하여

by 신보라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마음 끌리는 곳에 가고야 마는 것.

삼십이년간 내 인생이란 열차를 이끈 동력을 문장으로 만들어 보았다. 동력이란 이름을 가진 이 집념은 내 인생을 망하게 하기도, 구원하기도 했다. 히데코의 숙희 같은 존재가 내게는 이 질긴 집념이랄까.



요즘 나는 친구들에게 프로 이직러로 불린다.

정말 웃기게도 그놈의 집념 때문인데. 스물다섯, 글쓰기로 마음먹고 7년이 지나서야 글 쓰는 직종으로 전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했던 이력이 채워지자 여러 군데에서 전화가 왔다. 코로나가 극심했던 봄, 얼어붙은 구직 시장을 맨주먹으로 깬 게 바로 나란 여자다. 그러나 맨주먹으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기상은 용맹하나 노련함은 많이 부족했던 게지. 설렘을 안고 간 첫 면접에서 스타트업 특유의 압박면접을 보게 된 나란 사람은 그 날 땅굴을 지하 끝까지 파게 된다.


“이력서에 당신의 꿈이 보이지 않아요. 신보라 씨는 당신이 꿈이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꿈이 없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책 내셨던데 몇 권이나 팔렸어요? 자기 책인데 관심이 없네요. 회사 일에는 관심 있으시죠?”


이력서에 홍보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드러나 있지 않다는 이유로, 얼마 전 출간한 책의 판매 부수를 정확히 모른다는 이유로 참 많이도 물어 뜯겼다.

친구가 사주는 고기도 먹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선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면접관은 내가 지원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것일까. 나는 그만큼 비난당해야 하는 사람인 것일까.

이틀 동안 열심히 땅굴을 파다 힘이 빠진 나는 결국 삽질을 멈췄다. 내가 왜 그 곤충같이 생긴 면접관 때문에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는가. 삽질로 지쳐버린 나머지 화가 났던 모양이다.

명예 회복을 위해 더 좋은 곳에 붙어야 했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 것처럼, 일자리는 일자리로 잊는 법이지.


면접 실패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업실패와 보이스피싱으로 빚더미에 앉았을 때도, 좋아하던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현장에 갔을 때도, 현실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나를 그런 식으로 지켜왔다.


“친구들아 오늘은 조금 덜 비싼 것을 먹자. 나 빚쟁이새끼인 거 알지? 성공하면 산해진미를 맛보여줄게.”


“신부가 걔 이상형이더라. 참하고 예뻐. 내가 안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겠더라구. 내가 너무 아까워. 난 걔랑 만나기엔 바깥에서 큰일을 할 여자야. 난 나한테 걸맞는 10살 어린 남자를 만나야겠어.”


나의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늘 유머가 있었고 풍자와 해학으로 재탄생하는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도약할 힘을 얻었다. 물론, 다시 구직시장에 뛰어들고 그저 행복이었던 것은 아니다. 집념으로 이뤄낸 줄 알았던 한 광고회사에서는 난데없는 일로 2주 만에 부당해고를 당해야 했고, 그 일로 노동위원회까지 출두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혼자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웠다. 속상함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날에는 서른두 살로 있기가 힘들어 열여덟의 내가 되어 울었다. 딸의 울음소리에 더 마음이 아팠을 아빠는 문 앞에 서성이다 결국 들어와 살포시 앉았다.


“네가 더 잘하고 좋아하는 일 찾으면 돼. 억울해서 우는 거야? 너무 얌전히 나와서? 그럼 떼굴떼굴 구르고 뒤집어 엎어버렸어야지. 바닥에 누워서 배 까뒤집고 굴렀어야 되는데. 그렇게 못해서 억울한 거잖아. 해고당한 건 억울할 일도 아냐. 오히려 잘됐지. 더 좋은 데 갈 건데.”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지만, 내가 왜 아빠 딸인지는 이해가 되었다 완벽하게.

이 날만큼은 덜 진지했던 아빠 덕에 나는 다시 나를 지킬 수 있었다. 실패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맨주먹이 아닌 매의 눈과 경험치로 한 달간 구직시장 퀘스트를 한 곳 한 곳 깨보았다. 그 결과 내 집념과 가장 맞닿은 일, 내가 사랑하는 글과 종이가 함께 있는 곳에 내가 있다. 나는 드디어 이야기를 만들고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보라 너무 다사다난한 거 아니야? 너무 그런 일 많이 겪는 것 같은데. 힘들겠다.”

“그러니까 내가 대단한 거지. 다이내믹하게 살면서 좋은 글도 쓰고.”


새 직장으로 옮긴 지 2주가 지났다. 2주 동안 잘리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지난 좌절은 오늘의 근육이 되었음을 느낀다. 그 어떤 웨이트동작보다도 가장 건강한 나를 만들어 주는 방법,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로 오늘도 집념을 현실시키기 위해 애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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