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엄마가 해 준 음식 중에 시래기나 배추가 들어간 국이 가끔 생각난다.
김치찌개, 된장찌개는 자취하던 대학생 때부터 가끔 해 먹었던 터라 지금도 익숙한 게 쉽다는 생각으로 하게 되지만, 시래기나 배추는 그렇지 않다. 이상하게 대학생 트리에겐 난이도가 있어 보이는 재료였고, 엄마가 해줘야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잠시 생각났다가 금세 잊혀서 해먹을 일은 없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그 그리움이 콕콕 박혔다가, 주위를 맴돌고 때를 쓰니 도리가 없었다. 결국 소고기 배추 된장국 재료가 상에 올랐다.
당신과 나의 열일곱 번째 이별 식탁
재료 : 국거리용 소고기 100g, 배추 7장, 대파, 고추, 된장(2), 다진 마늘(0.5), 멸치육수
고기 밑 간 : 간장(0.5), 참기름(0.5), 후추 약간
소고기 배추 된장국 만들기
고기 밑 간 재료와 함께 소고기를 조물조물합니다. 참기름은 고기 잡내를 잡는데 좋다고 해요!
쌀뜨물이 있으면 좋지만, 전 없어서 맹물에 멸치육수 티백을 넣고 우려냈어요. 중불에 10분!
대파와 고추를 썰어요. 배추도 썰어요. 먹기 좋게
밑 간 된 소고기를 볶습니다. 뻑뻑해서 잘 안 볶이면 쌀뜨물을 넣어주라는데 전 옆에서 끓고 있는 멸치육수를 조큼 넣었어요!
멸치 육수 우린 물에 된장, 다진 마늘 넣고 볶은 소고기와 함께 끓여요.
끓기 시작하면 배추를 넣고 푹~~ 끓이다가 마무리로 고추와 대파를 넣고 한 소끔 끓이면 완성!
간이 덜 됐다 싶으면 국간장과 소금으로 맞춰 주세용
맛이 참 좋다. 생각보다 가볍고 시원해서 속이 불편할 때 먹어도 좋겠다. 국의 결이 따뜻하고 보드라운데 묵직하거나 끝 맛이 길게 가지 않아서 좋다.
출근길에 시간이 조금만 난다면 밥 말아서 호로록호로록 먹고 나가면 좋겠지만, 전쟁통의 직장인에게는 밥보다는 커피가 비상식량이다.
추석 선물 대란으로 배송이 바쁜 아빠는 퇴근이 늦었다. 늦은 밤, 시원한 배춧국, 든든한 소고기와 함께 호록 호록 촵촵 빠르게 한 술 두 술 뜨는 늙은 아빠를 본다. 보통의 사람이 평범한 식사를 일반적이지 않은 시간에 한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 먹고사는 것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설 명절, 추석 연휴가 다가오면 아빠의 에너지 배터리는 고속 충전이 돼야 한다. 쪽잠으로 그 센 노동강도를 버텨 낼 힘을 다 충전할 수 없어서, 냉장고엔 명절 특수 한약이 구비된다.
나는 커피, 아빠는 한약. 우리의 전쟁통 비상식량은 왜 밥 대신 쓴 물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일과 삶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드는 요즘, 잘 살기 위해 하는 일들이 못 살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가끔은 살려고 노력하느라 진짜 살 시간이 없는 것 같아'라는 말의 의미가 더욱 간절한 때다.
본질을 놓치며 사는 인생은 괴롭다. 평생을 일만 하며 산 아빠를 보며, 아빠에게 정답은 이것이었을까. 본질이 이런 것이었을까. 생각하니, 나의 힘듦은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커피보다 쓴 것을 다시 속으로 삼킨다. 아빠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10년이 안 된 나의 일은 30년이 넘은 그의 일 앞에서 커다란 물음표만 들어 올려본다.
국이 참 맛있었는데, 다음 날 갑작스러운 회식으로, 그다음 날은 일주일 동안 못 쉰 나의 피곤함 때문에 다시 끓여지지 못한 채 국은 결국 상해버렸다. 어떤 국을 끓여야 하나, 생각의 흐름은 매우 느렸고 느리고 느리고 늘어지던 생각은 결국 끊겨 잠들어버렸다. 그리고 부스럭, 부엌에서 나는 소리에 깨어, 나가보니 아빠가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밥 못 먹었어? 라면 먹으려고?"
"시간에 몇 신데 여태 밥을 안 먹었겠냐"
나 하나에 대한 책임감도 버거워서 그만 벗어던지고 싶은 때가 유난히 많아진 나는, 어렴풋이 느껴졌던 물음표에 대한 대답도, 그의 토라진 말도 외면하고 방으로 다시 가, 누웠다. 침대에 모로 누워, 안쓰러움과 미움을 끌어안은 채, 눈을 감고 귀를 닫아 잠을 청했다. 오늘의 현실은 이만 안녕. 오늘의 한계치에 전원을 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