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엄마가 가고, 아빠의 저녁 식사를 매일 차리기 시작하면서 간헐적인 것과 매일매일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됐다. 더군다나 밑반찬은 없어도 되지만, 국은 꼭 있어야 하는 아빠 때문에 1일 1국 준비를 해야 했는데 그게 너무너무 어려웠다. 그 많던 국의 종류가, 막상 차려내려 하니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고, 저녁에 약속이라도 생길라치면 아빠의 식사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워킹맘의 수고로움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일하며 살림하는 사람의 비애가 이런 것인가 코딱지만큼은 느꼈다.
힘들게 하루하루의 저녁 식사 미션을 겨우겨우 해나가던 어느 날, 난생처음 순댓국이란 것을 먹게 됐고, 그것은 마치 빛이었다. 맛도 좋고 든든한 이 순댓국이란 녀석이 성식 씨의 저녁 식사 메뉴로 딱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것이다. 심지어 식당에서 포장만 하면 되니 나도 좋고 성식 씨도 좋은 일 아닌가. 순댓국과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신과 나의 스물한 번째 이별 식탁
순댓국을 처음 알게 된 후, 주 1-2회는 순댓국을 먹었다. 분식집에서만 먹던 순대가 국에 빠져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촉촉한 머리 고기 양도 많아서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술 먹은 다음 날, 해장 메뉴 선택지에 하나가 더 추가된 것도 좋았다. 그렇게 몇 달을 먹다 보니 한동안은 질려서 쳐다보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다.
양수리로 이사 온 지금, 이곳엔 양수리 돼지마을이 있다. 올케가 가족이 아닌, 동생의 여자 친구였던 시절, 아빠와 나, 올케 셋이서 그곳에서 순댓국을 먹은 적이 있었다.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서 나온 순댓국이 참 맛있었는데, 그 순댓국을 포장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될 줄이야. 다음 이사 갈 집 근처에도 왠지 순댓국 맛집이 따라올 것만 같다. 마치 운명 같달까. 역세권 대신 순세권, 그것이 내 운명일 지도.
이 집 순댓국은 국물 양이 엄청난데, 성식 씨는 단 한 번도 남긴 적이 없다. 설거지가 필요 없다면 과장이겠지만, 한 방울의 국물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말로 이 집 순댓국이 얼마나 맛있으며, 성식 씨가 얼마나 입에 맞아하는지 대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순댓국과 우리의 관계를 엄마가 알게 되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깡 말랐던 엄마는 자신과 어울리는 식단을 좋아했다. 엄마의 주메뉴는 고사리, 호박, 버섯, 무생채 따위의 나물반찬이었다.
그런 엄마도 국을 포장하거나 크게 한 솥 배달시켜 몇 날 며칠의 끼니를 해결했던 적이 많았다. 엄마와 식성이 다른 아빠 때문이었다. 식성 다른 성식. 엄마의 배달 메뉴는 감자탕이 단골 손님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성식씨는 젊었던 모양이다. 감자탕의 돼지 뼈를 오도독 오도독 촵촵 발라 먹던 40대 성식 씨. 환갑을 넘긴 지금 바라보니, 그때는 청춘이었다. 청년 성식, 15년 뒤 틀니를 하게 될 줄 알았을까. 아니면 나중엔 없을 기회인 것을 알았을까, 누구보다 열심히 뼈를 발라 먹던 그였다.
아빠 치아에도 무리가 가지 않고, 맛도 좋고 또 어느 곳에 가든 포장이 가능한 순댓국이 참 고맙다.
외숙모에겐 낙지 덮밥이라는 포장메뉴가 있다고 했다. 올케와 동생은 조카를 위한 감자튀김을 종종 포장한다. 친구는 배양리 김치찌개 포장에 2년째 빠져있다. 식사를 챙겨야 할 누군가가 있는 사람들에겐 기프티콘처럼 쓸 수 있는 포장메뉴가 하나씩 있다. 살림하는 사람들은 선물 같은 존재 하나씩은 품고 살아야 한다.
엄마가 감자탕 한 솥을 주문할 때마다 이런 기분이었을지. 오늘만큼은 저녁 차리기를 쉬어도 되겠다는 해방감에 입꼬리가 절로 가볍다. 저녁 식사를 직접 차리고 나서야 이 일에 쏟아야 하는 수고가 얼마나 큰 지 안다. 해방감보다 더 큰 책임감을 가진 엄마에 비해, 나는 그녀가 차리는 식탁에 대한 감사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무엇도 당연한 것이 없는데, 내가 뭐라고 그 귀한 식탁을 당연하게 받았을까. 나는 아빠가 내게 조금은 고마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무척 피곤할 땐 더더욱 말이지. 난 엄마를 따라갈 수가 없다. 앞으로도 더욱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 땅의 모든 가정의 식탁을 책임지는 엄마와, 몇 안 되는 아빠에게 존경을 표하며, 그들이 아주 자주 해방감을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