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교 3학년 때, 안보다 세상이 참 좋았던 그 때,
우리 엄마는 아팠다.
단순히 아프다는 말로 그녀의 고통을 표현하기엔 너무 많이 아팠고, 고통스러웠다.
우리는 모두 20년을 넘게 엄마를 갈아 살아놓고, 셋이 가녀리고 작은 엄마 하나를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갔다.
엄마의 원래 집으로 갔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의 원래 집은 우리집이었는데, 어쨌든 엄마는 엄마의 집으로 갔다.
차로 15분 거리. 낮이면 텅 빈 엄마의 집으로, 엄마는 나를 자주 불렀다.
엄마의 원래 집에서도 편하지 않았던 엄마는 내가 오면 빨래며 설거지며 쟁여 두었던 일거리를 함께 했고
저녁까지 먹고 가라며 붙잡아 두었다.
여느 날처럼 엄마가 다시 불렀던 날.
엄마는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알던 원래 엄마의 집. 우리집으로.
군대에서 훈련을 마치고 나온 아들을 위해, 아들이 좋아하는 김치부침개를 해줘야겠다며
엄마는 내게 기대어 택시를 탔다.
엄마 손길 하나 없이 훈련을 마치고 온 아들이 안쓰럽다던 엄마는,
자신의 앙상함은 모르는듯 하였다.
챙겨주지 못했다는 속상함이 자신의 몸을 파먹고 있던 고통보다 더 아픈듯 하였다.
부침개를 10장이나 부치고서야 기름 냄새에 역함을 느낀 엄마는 주저 앉았다.
그리곤 얼마 있지 않아, 집 밖으로 나온 것을 들키면 엄마와 오빠에게 혼날 수도 있다며
다시 엄마의 원래 집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돌아간 집인데. 자신의 아픔과 맞바꾸고나서야 돌아갈 수 있었던 원래 엄마의 집이었는데.
그곳에서도 엄마는 이 집을 잊지 못했다.
자주 볼 수 없는 김치부침개가 맛있게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너무 염치가 없으므로.
구미를 느껴서는 안되었다.
이제는 그 기억도 염치도 잊고 비오는 날이면 내 손으로 김치 부침개를 부쳐먹는다.
맛은 또 왜그리 좋은지.
어떤 날은 부침개 맛에 기분이 좋아져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염치 없게도.
이렇게 잘해먹을 수 있었으면, 좀 해줄걸 그랬다.
그랬더라면 우리집이 그냥 엄마의 집이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원래 집으로 돌아갈 일은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대학도 늦고 취업도 늦고, 뭐든 느린 나는 오늘도 이런 느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