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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보라 Aug 19. 2020

당신과 나의 이별식탁 : 김치찌개와 육회비빔밥

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1년간의 저녁 식탁 차리기

오늘의 저녁 식사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 갔다.

요즘 준비하는 책에 필요한 인터뷰를 위해 식당 사장님인 친구가 인터뷰이가 되어 주기로 했다.

13년 만에 마주 앉은 친구는 웃는 얼굴도 착한 마음도 하나 변한 게 없었다.

내 첫 책을 읽고 감동했다는 친구는 그날 나와, 동행한 친구 둘이 먹은 식사 값을 받지 않았다.

밥 한 번 사주고 싶었다는 친구.

내 글이 뭐라고 이렇게 대접을 해주나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멋쩍기도 한 여러 갈래의 마음이 들었다.

저녁 준비할 시간이 없어 아빠 식사 거리를 포장 주문했는데 친구는 이마저도 받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빠의 칠순잔치는 친구네 식당에서 해야 하나 싶다.



(왼쪽부터) 얼큰하고 든든한 돼지고기 김치찌개, 춘천 착한식당에서 포장해 온 맛도 가격도 착한 육회비빔밥!
당신과 나의 두 번째 저녁 식탁


돼지고기 김치찌개, 육회비빔밥



사진을 놓고 보니 오늘의 식탁은 일관된 컬러가 눈에 띈다.

하나가 빨갛다면 다른 하나는 맑은 색이 좋았으련만.

 그렇지만 두 가지 다 놓칠 수 없는 맛대장들이다.

한국인의 밥상, 최고의 단골손님이자 마스코트! 얼큰하고 든든한 돼지고기 김치찌개.

고소한 풍미와 사르르 녹는 식감을 자랑하는 신선 그 자체 육회비빔밥!

둘 다 빨갛다고 반찬 투정을 하는 이가 있다면 그대로 가지고 와서 내가 독식하고 싶은 메뉴들이다.


그러나 아빠는 어리석지 않았다.

메뉴를 보는 순간 '오, 이게 뭐야' 라며 감탄사를 뱉는 현명한 남자다.

아쉽다 조금만 어리석었다면 내가 독식했을 텐데.


엄마가 제일 잘하는 음식 중 하나가 김치찌개였다.

엄마의 막내 남동생인 외삼촌과 그의 친구가 우연히 엄마의 김치찌개를 먹고

평생 먹어 본 김치찌개 중 가장 맛있다 라고 말했던 일화는 엄마의 자랑이었다.

그래서 어떤 새로운 메뉴 만들기에도 겁이 없는 나도, 김치찌개 만들 때만큼은 신경이 쓰인다.

귀찮을 때면 미역국 끓이면서 미역 볶는 일조차 생략하지만 김치찌개는 어림없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김치와 고기를 정성스레 볶고 푹 끓이다가 예쁘게 썬 두부를 넣고 마지막으로 끓여 여러 차례 맛을 본다.

맛있는 국물이 우러날 때까지.

하지만 이런 정성에도 김치찌개만큼은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다.

웬만한 음식에도 투정이 없는 아빠지만, 김치찌개만큼은 냉정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네가 만든 음식은 웬만한 것들은 다 괜찮은데 김치찌개만큼은 엄마를 못 따라가. 깊은 맛이 없어."


나도 엄마의 김치찌개가 그리운 사람이기에

저런 반응이 대수롭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으로 끝나야 하는 법이거늘 하물며 지속적인 냉정한 평가에 마음이 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김치찌개는 한동안 저녁 메뉴에서 볼 수 없었다.


오늘은 특별히 친구가 끓여준 김치찌개가 식탁에 올랐다. 맛대장 육회비빔밥과 함께.

육회 덕분이었는지 오늘만큼은 아빠도 냉정한 평가를 거두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잘 사 왔다 싶으면서도 불편한 어떤 것들이 마음에 끼어들었다.

부럽기도, 얄밉기도 한 요상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부럽다. 누군가 차려주는 밥이 있다는 거.


내 정성에만 냉정한 잣대가 놓이는 것이었군.


아직도 평온한 마음으로 가는 길은 멀다.

사랑만 주기엔 나는 아직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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