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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보라 Aug 23. 2020

당신과 나의 이별식탁 : 설렁탕

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1년간의 저녁 식탁 차리기

오늘의 저녁 식사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를 마치고 신나게 집으로 들어온 나를 맞이한 엄마의 얼굴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엄마의 기분을 살펴야 했던 상황이 처음인 9살은 '무슨 일이냐'는 말이 낯설어 꺼내지 못했다. 입 안에서 우물 우물대던 말은 동생의 어린이집 차가 도착하자 목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우리 오늘 양평 가야 돼. 아빠가 다쳤대."


엄마는 미리 준비해 둔 짐가방을 들고 우리 남매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주었다.

어서 신으라는 엄마의 손짓에 나는 가만 멈추어 물었다. 아픈 아빠를 본 적이 없어서 어디가 어떻게 다쳤냐는 상식적인 질문이 아닌 당황스러운 내 기분과 닮은 한 글자였다.


"왜?"


"일하다가 지붕에서 떨어졌대. 팔이 부러졌나 봐. 얼른 나가자."


그때는 지붕에서 떨어지면 죽는 줄 알았을 나이였다. 나는 양평으로 가는 내내 아빠가 죽으면 어쩌지 싶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엄마가 분명 팔이 부러졌다고 말을 해줬음에도 말이다.

아빠가 있는 양평은 엄마의 고향이었고, 외삼촌 형제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의 현장이었다. 다행히 아빠가 떨어진 곳이 아파트 건설 현장은 아니었다. 낮은 높이의 1층 주택 지붕이었는데 넘어지면서 땅을 짚으려다 두 팔이 부러진 것이었다.

초록색 깁스를 한 두 팔을 보자, 아빠가 죽었을까 봐 걱정하던 것은 없었던 과거처럼 사라졌다. 동굴 벽화를 새기던 조상의 DNA가 깨어났다. 새로운 스케치북을 발견한 9살의 나, 신명 나게 예술 세계를 펼쳤다. 깁스에 낙서 없는 단 한 틈도 용납하지 않을 기세였다.

철없이 신난 나와 달리, 엄마는 사골국이 뼈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달 내내 큰 솥에 꼬리뼈를 고아내는 고생을 해야 했다. 덕분에 사골국이 물릴 때까지 먹을 수 있었다. 전에 없을 고급 식탁을 한 달간 누렸고, 먹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질려 버린 이후, 사골국이나 설렁탕은 한동안 입에도 대지 않았다. 사골국과 설렁탕이 다르다는 것을 다 크고 나서 알게 됐지만, 그래도 하얗고 뽀얀 국물을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이 음식과 맺게 된 인연이 그래서일까, 아빠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설렁탕이 국물 메뉴가 되곤 한다.

 


(왼쪽부터) 잘게 찢어준 장조림, 부산남자가 좋아하는 어묵볶음, 누구나 좋아하는 불고기, 남수포차 열무김치로 구성된 4첩 반찬과 대파를 그럴듯하지 않게 썰어서 퐁당퐁당 넣은 설렁탕


당신과 나의 세 번째 이별식탁


장조림, 어묵볶음, 소불고기, 열무김치, 설렁탕


여전히 칼질이 서툴다. 송송 썰기만 하면 되는 대파 칼질도 어색해서 파 모양새가 영 별로다.

그래도 손끝 대신 마음 끝이 야무져서 치아가 약한 중년 남자를 위해 큰 장조림 덩어리를 얇게 찢는 배려를 발휘했다. 오늘은 특별히 두 가문의 고기가 함께 하기로 했다. 장조림과 더불어 소불고기를 올려 고기 뷔페 느낌을 내보았다. 어묵은 아빠가 참 좋아하는 반찬 중 하나인데, 밑반찬을 거의 먹지 않는 아빠가 어묵은 남기는 법이 없다.


 내가 차린 설렁탕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소금이 없다는 것. 덜어 먹을 작은 종지조차 없다.

심심한 맛을 선호하는 성식 씨가 (아빠의 이름) 설렁탕에 소금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인데, 짜고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내 입맛이 딱 아빠를 닮았다.


입맛만큼이나 성격도 심심을 넘어 무심하기까지 한 아빠는 다정한 말을 잘하지 못한다.  

가끔 나를 이름 대신 '야'라고 부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올케는 아빠의 무심함을 콕 집어주며 다정하게 이름으로 불러주면 안 되냐고 대신 요청하곤 한다.

내게도 무심한 DNA가 흐르고 있어서인지 아빠의 부족한 다정함을 원망한 적은 없다. 그래도 무언가 내게 그쪽으로 결핍이 있다는 생각은 든다. 특별히 나에게 다정히 이름을 불러주는 것에 약한 모습을 보이곤 하니까.


좋아하던 남자가 보라야 라고 불러주던 기억이 가끔 귓전을 맴돌 때가 있고, 친구가 별명 대신 보라야 라고 부를 때, 그들의 이야기가 어떤 종류이건 늘 관대했다.


심지어 애틋한 기억으로만 남은 엄마에게 갖는 몇 안 되는 서운한 점 또한 나를 친구 부르듯 '야', '너'로 불렀다는 것에 있다. 동생은 자주 다정하게 이름으로 불러줬는데 그게 참 질투가 났었다.


설렁탕에 소금이, 우리 관계에 다정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괜히 '이렇게 설렁탕에 아무 조미료도 없이 먹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아빠 허락도 없이 아주 조금 소금을 쳐서 식탁에 올렸다. 짠맛에는 질색을 하는 사람이라 혹시 짜증을 내지는 않을까 한 술 한 술 뜨는 모습을 한참을 보았다.  한 술이 두 술이 되고 두 술이 세 술이 되는 동안 아빠의 수저는 아무런 짜증도, 의심도 없는 무심한 상태였다.


"소금 쳤는데 괜찮아?"


유튜브에 빠져 대답을 놓친 아빠에게 다시 물었다.


"설렁탕 맛 괜찮냐구!"


유튜브 화면에 시선을 응시한 채 아빠는 무심히 대답했다.


"괜찮은데? 맛만 좋구만."


소금 없이 주는 설렁탕에 아무 반응이 없었던 것을 소금 없는 설렁탕을 좋아한다고 여긴 내 착각이었다.

이 상황과 아빠에게 배신감마저 들었지만 내 착각이었다는 것에는 할 말이 없다.


우리는 가끔 말하지 않는 것을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아무것도 듣지 않고, 괜찮은 것이라고 안도하고 싶은 내 마음일 수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괜찮은 것으로 만들고 싶은 당신의 마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관계에 다정함과 솔직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외면하며.


아빠가 깁스를 했을 때, 처음엔 아빠가 집에 있는 게 반갑고 신이 났다. 그리고 한 달쯤 되자 익숙함을 넘어 아빠의 심부름이 귀찮기까지 했다. 어느 날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에게 달려가서 오늘 하루에 대해 조잘조잘 떠드는데 아빠가 끼어들어 말했다.


"너는 아빠가 깁스 푼 것도 안 보이나? 가스나"


당신을 닮아 조금 무심한 9살 딸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의 솔직함에 깨 발랄한 9살은 "우와~~!!! 깁스가 진짜 없네!!!" 달려가 팔을 이리저리 만져주었다. 그의 얼굴에서 빠르게 서운함이 녹고 눈가에는 웃음으로 주름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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