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봐야 할 것
영화 ‘조커’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청소부들이 거리를 청소하지 않아서, 쥐가 들끓고,
그 쥐가 커지고 강해져서 슈퍼 쥐가 되었다”
그리고 또 이런 말이 나온다.
“정부는 슈퍼 쥐를 잡기 위해 슈퍼 고양이를 만들어
내놓았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영화 시작에 뉴스에서 나온
이 말이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주인공이 우리가 아는 ‘조커’로 변해감에 따라) 계속 꼬리를 물고 보도되고 또 보도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쉽게 생각한다.
슈퍼 쥐의 대안은 슈퍼 고양이고,
조커의 대안은 배트맨이라고.
하지만, 핵심이 그것일까?
한 번만 더 들여다보면,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슈퍼 쥐의 대안은 청소부들의 파업을 이해하고, 그들과 얘기하고 그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조커의 대안 역시 배트맨, 슈퍼맨, 어벤저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커라는 개인이 처한 삶과 환경,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안다.
슈퍼 쥐에 대항하는 슈퍼 고양이는 또 다른 슈퍼ㅇㅇ을 낳고,
조커에 대항하는 배트맨은 또 다른 조커 또 다른 배트맨을 낳는다는 것을.
그것은 결국 아픔의 순환이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답 없는 원망만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의 적은 따로 있다.
우리가 바꿔야 하는 본질은 따로 있다.
너머의 것을 보길 바란다.
사람이든, 사회든, 표면의 이면을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