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나가는 글이 되지 않기 위해
책을 좋아하고, 적게 읽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책들이 그저 나를 통과해 지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이상한 독서 증상? 같은 것이 생긴다.
책을 많이 읽고, 어렵고 두꺼운 책을 읽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특히, 유명한.) 읽으면,
뭔가 내적인 자존감이나 자만심이 커진다.
사실 내적인 것만도 아니다. 그것이 누군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리고,
저 사람과 나를 선 긋는 중요한 선이 되어버린다.
아주 짧은 나의 독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방향이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다.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이것은 책을 읽고 그것이 내 삶을 그저 지나쳐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록하고, 공유하고, 비난(?)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작으로 일단, 블로그에 글을 쓰자. 누구나 볼 수 있게.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 글은 책 리뷰보다는, 책을 읽고 난 뒤 혼자서 주절거리는 독백에 가깝다.
2. '어쩌면' 이상한 몸
첫 번째 게시물이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별로 이유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최근에 읽은 책으로 시작한다.
이 책은 2018년 장애여성공감이라는 인권운동 단체에 의해 쓰였다.
1998년에 창립되었으니, 20주년 기념 도서인 것이다(실제 20주년 기념 도서이다).
에세이. 그러니까 수필 형식의 글이며 저자는 10명으로, 정리한 글까지 포함하면 총 14명의 사람이 쓴 글이다.
그리고 출판사는 노동자, 장애, 여성, 퀴어 등 소수자의 이야기를 주로 출간하는 오월의 봄이다.
개인적으로 이곳에서 출판된 책을 매우 좋아한다.
책은 장애인 당사자이자 여성이며, 30~60대 정도의 나이로 구성된 10명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10명의 저자는 장애가 있는 여성으로서 '장애'와 '여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삶의 맥락, 정체성에 대해서 깊은 통찰을 준다.
책의 핵심 내용은 책 제목에서 너무나 잘 표현되어 있다.
'어쩌면 이상한 몸'
'어쩌면'이라는 단어는 '확실하지 않지만 짐작하건대', '도대체 어떻게 해서' 등의 뜻이 있다.
즉, 어쩌면 이상한 몸이라는 것은 정말 이상한 몸이 아닌,
확실하지 않지만 짐작건대 이상한 몸.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상한 몸이라는 뜻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책의 저자들은 이상한 몸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이며, 여기서 이상한 몸은 장애이다.
또한, 어쩌면이라는 단어는 이상한 몸이 아닐 수도 있는데, 왜 이상한 몸이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것에 더해 장애와 여성이 교차할 때, 겪게 되고 구조적으로 만들어지는 문제와 어려움도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책에서는 단순히 이상한 몸이 아닐 수 있는데, 사회구조와 편견 때문에 이상하게 됐다는 말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상함. 퀴어(Queer), 장애가 있는 몸 자체가 가지는 힘과 저항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3. 와닿다
와닿은 문장들이 많다.
어떤 문장은 한 문장으로 표현했을 때 그것이 의미하는 맥락에서의 의미를 간과해 버리는 것도 있었다.
어떤 문장은 한 문장의 표현이 전체 글을 너무나 잘 요약, 표현해 주는 것도 있었다.
모든 문장을 여기 적을 수 없다(책을 읽어보시길).
그리고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거나 이것이 완전히 핵심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은 내 맘대로 글을 적는 순간 제일 적을 만한? 와닿음을 기록한다.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단지 야한 얘기가 아니라 장애여성의 삶의 조건과 시민적 지위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통로라고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할 때, 장애 여성의 삶도, 섹스에 대한 생각과 경험도 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p.79
장애인과 섹스. 장애여성과 섹스를 얼마나 말할까.
말은 많이 할 것이다. 아마 대개는 통제. 관리. 조언. 등의 방식으로 일 것이다.
그것 자체가 장애여성의 삶의 조건과 시민적 지위이다.
어찌 보면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인 부분을 가장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건드리고 통제해도 괜찮은.. 지위라고나 할까.
사실 장애인, 장애여성뿐만이 아니다.
어른이 아이를 대할 때, 직급자가 평직원을 대할 때, 선배가 후배를 대할 때 등등등
무수히 많은 관계 안에서 우리는 '위계'화 되어있고 '서열'화 되어있다.
"의사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귀한 사람이고 활동 지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사람인가? 그것은 누구의 엉덩이이고, 누구의 배설물인가의 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환자는 누구나 될 수 있는 보편적인 대상으로 여기고 장애인은 타자화된 대상이자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몸'으로 보기에 그들을 보조하는 일은 낮은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p.135
활동 지원사만 이럴까.
사회복지직 전체가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럴듯한 이유는. 성적, 능력으로 일컬어지는 전문성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의문 한 스푼을 얹어 본다.
성적은 누가 만들고, 누가 측정하고, 왜 꼭 그런 방식으로 측정되어야 하는가.
어떤 것이 능력이 되고 안되고는 누가 결정하는가. 그것으로 누가 이득을 보는가.
시대와 역사적으로 항상 특정한 능력과 성적은 반드시 가치 있고 존중받는 것이었는가.
전문성은 정말 스페셜 한 능력이 있는 누군가가 가지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특정 사회구조가 부여하는 것인가.
한 스푼 치고는 많다.
"나의 일상이 활동보조 서비스가 전부인 것 같고 제도 안에 삶이 갇힌 것 같다. 어떤 활동도 어떤 관계도 그 사이에 활동보조 서비스가 끼어 있어야 한다. 마치 활동 지원사가 내 삶의 중심이 된 것 같다. 나의 장애를 보조해 주는 역할을 넘어서 그들이 내 삶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p.141
체계적이고 잘 갖춰진 제도가 오히려 점진적으로 사람을 배제하고 차별할 수도 있다.
사실상 체계적이고 잘 갖춰진 제도라는 것 자체가 그런 배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필요함만을 단순히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필요함이 왜, 어떤 맥락과 상황에서 발생했는지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유지가 아니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사업이나 공연을 한다면 겉으로 보기에 장애가 덜 심한 사람들만 계속 찾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와 우리 배우들은 갈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소위 '전문가'라 불리지 않아도, 누워서 대사를 하고 꼬인 몸으로 '장애를 하나의 장치로' 만드는 것이 '춤추는 허리'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 같다".
p.162-163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우선적인 목적이 되면 결국 누군가는 배제된다.
이상적인 얘기다. 누군가 배제되지 않는 사회라는 게 있는가.
인정, 보상, 차이 같은 것들 없이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가.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생각도 든다.
이상이 높다는 것이 우리가 무언인가를 포기해야 할 이유는 되는가.
현실이 그렇다는 이유로 그렇게만 사는 것이 좋은 것이 맞는가.
"일이란 무엇인가? 임금노동으로만 그 의미를 한정하면 조화영은 사회에 없는 사람이었다. 반면, 일의 범위를 "강아지 밥 주는"일이라고 확장하면 자기만의 역동으로 고유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조화영이 선명히 보였다.
비장애인의 삶이 일자리로만 이뤄지지 않듯 발달장애여성도 단지 일자리가 아니라 삶을 구성하고 지속하는 일상의 자리가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조화영은 자신의 이야기로 확인시켜 주었다".
p.169
여성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봐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임금노동으로 분류되지 못한 무수히 많은 노동, 일들은 무엇인가.
임금노동을 지속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본 시장에서 임금 노동으로 포함되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또 일이란 무엇인가.
일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로 작동해야 하는가.
혹은 작동할 수 있는가.
일하지 않는 수많은 또는 기술의 발전으로 일에 얽매이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인간과, 정체성과, 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20, 30대엔 힘이 세고, 활동보조를 잘하는 것으로 꽤 인기를 모았지만 40대가 되니 체력도 순발력도 조금씩 처지는 걸 실감한다. 몸이 변하는 걸 느낄 때마다 장애여성운동 안에 있다는 것은 안도감을 준다.
이 자장이 더욱 넓어져 많은 사람들이 변해가는 몸에 대한 불안 속에서도 안도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p.231
나는 자립, 독립 같은 말을 싫어한다.
누가 스스로, 홀로 잘 설 수 있다는 말인가.
대신 언젠가 김도현의 장애학의 도전이라는 책에서 읽은
'연립'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절하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
불안함 속에서 안도감과 나아가야 할 힘은
결국 혼자가 아닌 함께 일 때 가능하다.
물론, 가끔, 특정 시기, 특정 상황에서 혼자도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꽤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