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케르

(조르조 아감벤, 1995)

by 쥬스

1. 음. 철학.

번역은 2008년인데, 원저는 1995년이다. 원저를 읽은 것은 아닌데,
음, 역, 누구누구, 2008 이렇게 하니까 보기 싫고,
일단 이건 쓰면서 어떻게 적을지 생각해 봐야겠다.

일단, 이 책은 철학 책이다.
그리고 좀 어려운 책이기도 하다.
되도록이면 이런 책은 리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항받기(?) 때문이다.
이쪽 분야를 공부한 사람에게,
또는 이해가 깊은 사람에게 저항받을 가능성이 무진장 높다.
그리고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아주 높다.
그리고,, 뭘 적어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도 많다.
아무튼, 두려움이 있음에도 쓰려는 이유는, 기록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어설프든, 틀리든, 이상하든, 뭐든 간에
지금의 나를 기록하고,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미래의 나에게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라고나 할까.
거창한듯하지만, 그렇진 않다.
사실 뭐, 그냥 쓰는 거다.


2.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일단, 아감벤은 이탈리아 사람이고,
현재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대학 교수이다.
저자에 대해 처음 찾아보았을 때는 건축대학 교수인데 뜬금없이 왜 철학 책을 쓴 거지 싶었다.
뭐, 저자의 생애를 찾아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정확하게는 모른다.
하지만, 박사학위 논문도 시몬 베이유의 정치사상으로 썼고,
법학을 전공하기도 해서 그러려니 했다.
또, 아감벤에 대해 읽고, 공부해 보면 알겠지만
미학, 건축, 철학, 종교, 법학에 매우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한 번 더 그러려니 했다.

일단 아감벤의 책 '호모 사케르'는 이해하기 쉽지는 않다.
아감벤의 이론에 기본 바탕이 되는 학자들을 조금 이해해야 한다.
슈미트, 하이데거, 발터 벤야민, 푸코, 한나 아렌트 등등..
특히 이 중에 푸코를 이해하면 책을 읽는데 매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중에 고고학과 계보학, 생명정치, 통치 등을 이해하고 보면 진짜 도움이 될 것이다)
뭐, 그냥 읽어도 읽히긴 한다. 한,,, 2~3번 정도 읽으면, 아? 음.. 어!? 이런 느낌이었다ㅎㅎ

​이 책의 제목은 호모 사케르이다.
일단 호모 사케르는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쓰던 용어인데,
'신성한 자'라는 뜻과 '저주받은 자'라는 뜻이다.
이상한 말이다. 신성하면 신성하고 저주받으면 저주받았지,
두 개의 뜻을 동시에 지니는 건 참 이상하다.
근데 이게 핵심이다. 신성한 자인데, 저주받은 자.
이를 책에서는 계속해서 '죽여도 되지만 희생양은 될 수 없는',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책의 첫 부분에 슈미트라는 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법과 주권 권력에 대해 설명한다.
음,, 어려워지고 있다.

아무튼, 철학이라는 것은 압축하고 건너뛰려고 하면 왜곡되는 경우가 많으니(사실 모든 삶이 그렇지만,,)
딱 그냥 나의 느낌만 말해야겠다.
핵심은, 호모 사케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주권 권력의 생명 통치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호모 사케르란 포함되어 있지만 배제되어 있는 존재로서 벌거벗은 생명이자,
죽여도 되지만 희생양은 될 수 없는 생명이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난민, 이주민(대개 미등록) 등이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들만이 호모 사케르가 아니다.
잘 생각해 보라.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한다.
하지만 바로 밑에 헌법 2조 1항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주권과 권력은 다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근데, 그 국민은 법률이 정한단다.
그럼 국민은 주권과 권력을 나오게 하는 혹은 가진 존재가 아니지 않을까?
국민이 주권자, 권력자가 아니라, '법률'이, 정확하게는 법률을 정하는 어떤 권력이 주권이고 주인이다.
이러한 국민의 삶도 사실상 크게 보면 호모 사케르의 삶이다.
포함되어 있는 것 같지만 배제되어 있는..
(이 생각이 내 생각은 아니고, 어디서 들은 건데,, 출처를 모르겠다.. 혹시 출처 알면 누군가 말해주길..!)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왜. 이렇게 포함되어 있지만 배제되어 있는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혹은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서 아감벤은 규칙은 예외를 통해서만 규칙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호모 사케르와 같은 존재를 만들어 내야만 우리의 법질서와 사회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그렇게 해야만 불평등하고 착취하고 계급 짓는 사회시스템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건 약간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랑도 약간은 비슷할 수도 있다.
물론 부르디외는 구별 지어져 있는, 구별 지어지는 현상 자체를 밝혀낸 것이고
그것이 왜 구별되는지, 구별하고자 하는 이유 혹은 주권 권력이 누구인지는 설명하지는 않지만.


3. 아감벤 이후.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이해한 것 같지는 않은데, 정확하게 이해한 것 같지도 않다.

다른 책들과 나의 생각의 성숙이 쌓여가면 어느 순간 더 이해가 가겠지.


자. 이제. 그렇다면

이걸 알면 뭐 할까.

1. 일단 모든 지식은 잘 배운다면, 자신과 이웃을 위한 해방(자유)의 첫걸음이다.

2. 아감벤의 논의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단순하게 볼 수 없음을 이해하기에 적합하다.

즉, 포함이나 배제냐 / 규칙이냐 예외냐 / 인권이냐 차별이냐 와 같은 식이 아닌,

이중성의 개념을 더 면밀히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결국 나와 사회, 세상을 이해하는 시각을 넓힌다.

(1번이랑 똑같은 말 같은데..)

3. 규칙과 예외 너머의 생명 그 자체, 조에(모든 생명체)로서의 삶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생명을 의미하는 조에와 비오스에 대해 설명하지도 않았고,

조에를 비오스로 만드는? 노모스(자연 질서의 힘을 인간의 맥락화를 통해 법, 제도로서 새롭게 규정, 배치하는 것)를 언급하지도 않았지만,, 아무튼 그렇다.^^


4. 문장, 다음 책

와닿은 문장 몇 개를 적어놔야겠다.
그리고
다음 철학 책도 읽고 있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이라는,,
다른 책들도 읽고 있는데,
철학 책 읽으니까 다른 책 정리를 못하겠다.
그래도 틈틈이 정리해 봐야지.



자본주의의 발전과 승리는 일련의 적절한 기술들을 통해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이른바 '순종하는 신체(corps dociles')를 산출해 낸 새로운 생명권력(bio-pouvoir)의 규율적 통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p.37

오히려 왜 서양의 정치는 무엇보다 먼저 벌거벗은 생명의 배제(배제는 동시에 포함이기도 하다)에 기반해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명이 배제를 통해서 포섭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도대체 정치와 생명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단 말이가?
p.43

생명체는 자기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없애버리는 동시에 보존함으로써 로고스를 갖게 되었듯이, 마찬가지로 자신의 벌거벗은 생명을 폴리스 내부에서(예외로서) 배제되도록 함으로써 폴리스에 거주할 수 있었다.
p.45

전혀 구조를 모르는 적에 맞선 투쟁은 결국 조만간 적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고 말며, 국가 이론(특히 예외 상태 이론, 즉 국가 없는 사회로의 이행 단계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은 바로 금세기의 혁명들을 좌초시킨 암초이기도 하다.
p.51

법질서가 유의미하려면 먼저 질서가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즉 정상적인 상황을 창출해 내야만 한다. 이러한 정상적인 상황이 진정으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이다.
p.57

이 연구가 제시하고 있는 테제 가운데 하나는 오늘날 예외 상태 자체가 바로 근본적인 정치 구조로서 점점 더 전면에 떠오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규칙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p.63

호모 사케르의 지위를 규정하는 것은 본래 그에게 속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신성함의 본래적인 양가성이 아니고, 그가 사로잡혀 있는 이중적 배제 그리고 그가 노출되어 있는 폭력의 특수한 성격이다.
p.175


적다 보니, 수용소에 관해 언급한 부분은 거의 빼먹었다. 그건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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