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2003

by 쥬스

에밀 아자르의 책이다.
원저는 1976년에 출판되었다.
근데 또 이 책은 로맹 가리의 책이다.
그러니까, 로맹 가리가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시기에 낸 책이다.
그래서 로맹 가리는 1956년 프랑스의 공쿠르 상을 수상하고, 다시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이라는 작품을 써서 또 공쿠르 상을 수상하며, 최초로 두 번 상을 받은 사람이 된다.
로맹 가리는 소설을 출판한 후 4년 뒤인 1980년에 권총으로 자살을 한다.
자살 후에 그의 유서(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 책의 뒷부분에 첨부되어 있다)를 통해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임이 밝혀진다.
그리고 유서에는 로맹 가리가 왜 에밀 아자르라는 다른 이름으로 책을 썼는가에 대한 설명도 있다.
(좀 슬프다. 존재론적으로? 고민해 볼 지점도 있고)



일단, 책의 제목에 대해서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무슨 말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자기 앞의 생'이라.
1. '앞'이라는 것이, 저 먼 미래를 의미하는 것일까. 혹은 앞으로 살아갈 날의 희망과 소망에 대해 얘기하는 것일까
2. 아니면, 지금 당장 내가 사는 삶. 내 앞에 처해있는 현실을 살아내는 것.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뭐,, 잘 모르겠다.
둘 다인 것도 같고, 그러다가 1번에 더 가까운 것도 같고..
주인공이 아무리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매번 말끝마다 미래에는, 다음에는, 나중에는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희망, 소망적인 미래를 담고 있는 것 같다가도, 그런 불투명한 미래가 아닌, 당장 지금 처해있는 현실의 삶에서 흔히 말하는 소소한 행복과 함께함, 즐거운 것들을 찾으면서 살아가는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책의 내용은 두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더 정확하게는 모하메드(모모)라는 한 아이에 의해 흘러간다.
그리고 모모를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에 의해 흘러간다.
일단, 로자 아줌마는 성매매 여성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성매매 여성으로서의 가치가 낮아지자 그 일을 접었다.
그러고는 성매매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을 돈을 받고 돌봐주는 보모?를 하고 있다.
모모는 그런 로자 아줌마에게 맡겨진 한 명의 아이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물론, 모모의 시각과 경험이 중점이다.
뭐랄까. 소설이 참 기묘했다.
기묘한 이중성이 곳곳에 있었다.
예를 들어, 모모는 아랍인이다. 그리고 로자 아줌마는 유태인이다.
(사실 모모는 원래는 유태인이긴 했다... 평생 아랍인으로 키워지지만!)
유태인과 아랍인은 친하지 않다. 종교적인 이유가 제일 크지만, 아무튼 그렇다.
소설 후반부에서도 아랍인과 유태인이 싸우는 데는 끼는 게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아 소설의 배경도 실제 현실과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둘에게는 아랍인과 유태인의 장벽 같은 건 없다. 편견도 없고.
물론, 이 모든 것이 어쨌거나 자신을 키워준 사람(로자 아줌마)과 키워진 사람(모모)이라는 위계에 가까운 관계가 이미 형성되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소설을 읽어보면 그런 것 때문은 아니다. 그냥 서로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또, 이건 지금도 너무 똑같겠지만, 성매매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매우 불결하게 생각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또 필요로 한다.
불결하고, 이상하면 치우고 없애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치운다는 표현이 과격해도 이해해 주시길. 소설에서의 표현을 그대로 살리려는 의도임!)
정확하게는 숨기고 가려서 안 보이게 하고 그들을 더더욱 키우고 확장시켜 나간다.
불결하지만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 확실히 이상하다. 소설뿐만 아니라.. 인류라는 존재는..ㅎ
이 외에도 기묘한 이중성들이 표현되어 있다.
근데 그게 엄청 담담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훨씬 와닿았던 것 같다.
음. 위에 말한 내용을 글로 적고 보니 별로 기묘하진 않지만,
내가 소설을 읽을 때는 그 특유의 기묘함이 있으니, 한 번 읽어보시길..!



이 소설에 나오는 무던하면서 팩폭 하는 말투가 꽤 재밌다. (이것도 좀 기묘하게, 웃긴데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럼 느낌이다..ㅎㅎ)
몇 개 적어본다. 99페이지 이전에도 이런 문장들이 있는데, 99페이지부터 표시를 해놔서 앞부분 내용은 없다.
그리고 마지막 263페이지는 웃긴 문장보다는 앞서 말한 기묘함에 가까운 문장이었다.



그녀에게 덜먹으려면 살을 빼는 수밖에 없다고 아주 솔직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세상에 혼자뿐인 노친네에게 그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주변에 사랑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p.99

아주 못생긴 사람과 살다 보면 그가 못생겼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정말로 못생긴 사람들은 무언가 결핍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
p.232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볼 수 있도록. 나는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우리를 갈라놓는 그 푸짐한 살 위에서도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p.237

샤르메트 씨가 조화를 보내왔다. 죽은 사람이 부아파 씨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 역시 로자 아줌마를 위해서 그녀가 빨리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었으므로, 죽은 사람이 당연히 로자 아줌마일 거라고 여긴 것 같았다. 로자 아줌마는 그 꽃을 받고 몹시 기뻐했다.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누군가로부터 꽃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었다.
p.263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선물을 준 사람이 표지를 꼭 찍어서 포스팅할 때 올려달라고 해서 한 컷 올려본다.
독립출판 서점에 갔다가 표지가 이뻐서 샀단다. 물론 책 내용도 알고 있었겠지..?
나도 표지를 이쁘고 귀엽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특히, 뒷부분은 딱. 소설의 주인공 로자 아줌마와 모모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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