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아이리스>, 새로운 시작
"다시 시작하는 거야."
이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실패 끝에서 다시 해보겠다는 다짐일 수도 있고, 다른 길을 택하겠다는 결심일 수도 있다. 어쨌든 무너진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뱉는 말이니, 무게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시작이 새 출발이 될지 또 다른 고생의 시작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물었다.
"다시 시작해도 괜찮을까?"
글을 쓰다 멈춘 적이 많았다. 단어는 꼬이고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DELETE' 키를 누르곤 했다. 가벼운 일기도 마찬가지였다. 실패는 익숙해지지 않았고, 늘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펜을 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럴 때마다 나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건지, 아니면 잠시 지친 건지. 이유가 흐려졌다면, 다시 시작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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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 속이 답답해지자 몸이라도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무작정 바람이라도 쐬고 싶어 게티 센터를 찾았다. 예전 같으면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지 못했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반고흐 아이리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해설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반 고흐는 30대에 전업화가로 전향하여 파리로 갑니다. 프랑스에서 단 2년 4개월 동안 470점을 그렸죠. 하지만 파리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생활고까지 겹쳐 아를이라는 지방으로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예술의 동반자라고 믿은 고갱을 만나지만 잦은 다툼 끝에 귀를 자르고 결국 절필까지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냥 흘려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이야기는 달랐다.
"이후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난 어느 봄날, 반고흐는 산책하던 중에 아이리스 꽃밭을 마주합니다. 그 순간 생각했겠지요. '이런 척박한 곳에서도 꽃이 피는데, 내 삶에도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바로 아이리스. 홀로 선 하얀 꽃은 반고흐 자신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림이 달라 보였다.
아이리스는 단순한 꽃 그림이 아니라, 절망 끝에서 피어난 가능성. "다시 시작"의 선언이었다.
캔버스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물감이 두텁게 쌓여 있었다. '반죽하다'라는 뜻의 임파스토 기법이라 했다. 거칠고도 두꺼운 물감은 존재를 새기듯 남긴 흔적 같았다.
또 굵은 선과 평면적 구도는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의 영향이라 했다. 유럽에서 보편적이던 원근법 대신 단순화와 생략으로 만든 아름다움. 반 고흐는 그것을 자기만의 언어로 바꿔냈다. 기술적 실험조차 그의 또 다른 "다시 시작"이었다.
생각해보면 아이리스는 예술사적으로도 전환점이다. 고통과 단절 끝에 나온 작품이면서, 절망을 넘어서는 예술의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후에 탄생한 <별이 빛나는 밤>은 "다시 시작"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잘 보여준다.
여행을 좋아하던 나는, 그날 이후 여행보다 예술에 더 빠져들었다. 여행이 공간을 통해 지금을 확장한다면, 예술은 시간과 감정을 압축해 우리 앞에 놓아준다.
예술은 답을 주진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결국 그 답은 내 몫이 된다.
그날 아이리스 앞에서 내리게 된 답은 하나였다.
다시 시작해보자!
**지난 3월부터 게티센터를 참 자주 오가더니, 드디어 첫 글을 완성했습니다. 앞으로는 게티센터와 빌라의 작품들을 조금씩 기록해보려 합니다. 꾸준함을 목표로,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