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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듯 떠났지만, 그곳에서 비로소 나를 만났다

폴 고갱 <아리 마티모에>

by Summer
"지긋지긋해. 벗어나고 싶어."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핸드폰 알람에 쫓기고, 이메일을 열면 답장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쌓여 있었다. 커피를 마셔도 피로는 사라지지 않았고, 출근길 차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매일 똑같은 루틴. '좋은 사람', '성공한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는 기준 속에 나를 꾸역꾸역 밀어 넣는 하루. 누가 정한지도 모를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느라 점점 지쳐갔다.


"밥, 똥, 밥, 똥"

그날따라 친구가 던진 농담이 유난히 가슴에 남았다. 인생이 정말 그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하고, 규칙적이고, 너무나 뻔한 하루.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그냥 확, 떠나버리면 어떨까.'


아무 계획 없이, 세상에서 조금 멀어져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보는 것.

그건 도망일까, 아니면 다시 살기 위한 선택일까. 그 답을 아이러니하게도 게티센터에서 조금은 찾은 듯했다.


전시실 한쪽 벽면에서 강렬한 붉은색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배경, 벌거벗은 여인, 전통 문양, 그리고 화면 한가운데 놓인 잘린 머리. 누가봐도 전통적인 어떤 섬으로 떠난 폴고갱 그림.


그림의 제목은 <아리 마티모에>.

타히티어로 "왕은 죽었다."라는 뜻이었다.

처음 봤을 땐 솔직히 불쾌했다. 잔혹하고, 낯설고, 어딘가 이상했다. 그런데 눈을 뗄 수 없었다. 죽음을 그렸는데도 생생했고, 색은 강렬한데 여인의 시선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고갱에게 '왕의 죽음'은 곧 '문명의 죽음'이었다.

유럽의 질서와 이성이 끝나고, 인간이 다시 본능과 신화의 세계로 돌아가는 순간. 잘린 머리는 권력의 몰락을, 여인의 시선은 그 뒤에도 계속되는 생명을 상징했다. 즉, 죽음 이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이야기였다.


붉은색은 피이자 생명, 동시에 문명의 잔재였다. 그 위의 검은 선과 원시적 문양은 그가 동경한 '원초적 질서'의 흔적이다. 그의 붓질은 자유로웠지만, 그 자유는 투쟁이었다. 그는 세상에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정의한 '삶의 틀'을 거부한 사람이었다.


어떤 평론가는 말했다.


고갱은 문명에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문명을 해부하기 위해 가장 멀리 간 예술가였다.

고갱은 어쨌든 문명을 떠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파리에서 그는 잘나가던 주식중개인이었고, 다섯 아이의 아버지였다. 안정된 직장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가족 — 세상이 말하는 ‘좋은 삶’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러다 금융위기가 닥쳤다. 그는 삶을 지탱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술가가 되었다. 마흔셋의 나이에, 세속의 중심이던 파리를 떠나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향했다. 누군가에게는 도피였고, 누군가에게는 광기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쩌면, ‘다시 살아보기 위한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타히티의 강렬한 햇빛 아래서 유럽의 빛과 질서를 버리고 원시의 색과 혼돈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신과 인간, 그리고 자기 자신을 그렸다. 문명에서 벗어난 야만 속에서 오히려 '삶의 본질'을 붙잡으려 했다.


그 그림 앞에서 생각했다.


"지긋지긋한 틀에서 벗어나도 괜찮지 않을까."

세상이 만든 기준은 결국 '문명'의 다른 이름이었다. 우리에게 안전함을 주지만, 동시에 우리를 길들이는 힘.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다 보면, 어느새 자유를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


이후 고갱을 모델로 쓴 소설도 접해보았다.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 '6펜스'라는 세속의 세계 대신 달을 좇는 남자. 바로 주인공의 모델은 고갱으로 세속에서 벗어나 순수 예술, 이상을 찾아 떠났다.


서머싯 몸은 이렇게 썼다.

“추는 항상 좌우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같은 원을 늘 새롭게 돈다.”

결국 어떤 이는, 그 원을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문명을 떠나기로.


세상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벗어나는 건, 언제나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것은 회피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돌아가는 여행일지 모른다. 버티는 데에도, 떠나는 데에도 각자의 용기가 있다. 결국 우리는 같은 길을 돌며, 조금씩 다른 빛으로 변해간다.


언젠가 나도, 고갱처럼 나만의 타히티를 향해 조용히 떠날 날이 오지 않을까.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어쩌면 ‘끝’이 아니라 ‘다시 살아보라는 신호’일지도. 그 길의 끝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날, 그 그림 앞에서만큼은 고갱이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 잠시나마 나를 이해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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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만에 연재 성공! 피드백 주시면 반영해서 더 좋은 글 쓰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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