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 끝없는 욕망의 끝에서 마주한 것
괴테의 《파우스트》를 악마와 영혼을 거래하는 낡은 판타지 비극으로만 기억한다면, 사실 절반만 읽은 셈입니다. 어른의 눈으로 다시 펼친 이 작품은 쉴 새 없이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야만 안도하는 현대인의 ‘성공 중독’과 번아웃에 관한 가장 치밀하고 섬뜩한 보고서에 가깝습니다.
파우스트 박사는 요즘 말로 치면 완벽한 ‘갓생’의 표본입니다. 철학, 법학, 의학, 신학까지 당대의 모든 학문을 섭렵했고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최정상의 자리에 올라 있죠.
그런데 소설의 첫 장면에서 그는 캄캄한 서재에 홀로 앉아 절망합니다.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지식과 타이틀이 결국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음에도, 정작 자신의 영혼은 지독하게 메말라 있었던 겁니다. 모든 것을 이루었지만, 단 하루도 살아 있는 것처럼 기쁘지 않았던 사람이었던 거죠.
그 텅 빈 공허 속으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들어옵니다. 악마는 파우스트에게 젊음과 세상의 모든 쾌락을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대신 기묘한 계약 조건을 하나 내겁니다. 파우스트가 세상의 쾌락을 누리다가 어느 순간 완벽한 만족을 느끼며 이렇게 외친다면, 그의 영혼은 악마의 것이 됩니다.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저는 이 계약 조건 앞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그리고 곧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악마는 인간이 현재에 완벽하게 만족하는 순간 영혼을 앗아가겠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 말에는 더 잔인한 조롱이 숨어 있습니다. 파우스트라는 인간은 어떤 쾌락과 성취를 손에 넣어도 절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는 악마의 냉소이기도 하니까요.
이 조롱 앞에서 우리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파우스트처럼 지독한 결핍과 욕망에 쫓기며 살아갑니다. 이 고비만 넘기면, 저 목표만 달성하면, 통장에 이만큼의 숫자만 찍히면 마침내 평온해질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요.
하지만 솔직해져 봅시다.
간절히 원하던 그 목표를 이루고 난 다음 날, 우리는 정말로 행복했나요.
얼마 전, 아무도 모르게 필명으로 연재하던 웹소설의 숏폼 영상 판권 계약을 맺었습니다. 모니터에 띄워진 전자 계약서에 떨리는 마음으로 최종 서명을 마친 순간,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 현실이 된 참이었죠.
사실 이전에도 제 본명으로 몇 번의 판권 계약을 맺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지인들과 축배를 들고 쏟아지는 축하를 받으며 그 기쁨을 온전히, 그리고 흠뻑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철저히 비밀로 해온 탓에 가족이나 친구, 그 누구에게도 이 벅찬 소식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습니다.
축하해 줄 사람 하나 없는 캄캄한 방 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던 기쁨은 전자 계약서 창을 닫는 순간 거짓말처럼 증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침대에 걸터앉아 스마트폰을 켜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다음 연재분의 반응을 걱정하거나 또 다른 목표를 홀린 듯 검색하고 있었죠.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대견해할 줄 모르는 그 텅 빈자리에는, 어느새 불안과 갈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음은 뭐지?’
‘여기서 안주하면 끝나는 거 아닐까?’
만족하는 법을 잊어버린 인간은 전원이 꺼지지 않는 러닝머신 위를 뛰는 것과 같습니다. 더 빠른 속도, 더 높은 경사를 견뎌내며 끊임없이 달리지만 사실 우리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제자리에서 숨만 가빠질 뿐이죠.
우리는 더 이상
“멈추어라, 지금 참 아름답구나!”
라고 감탄할 여유를 잃어버렸습니다.
성취는 그저 다음 성취를 위한 징검다리가 되었고, 현재는 언제나 미래를 위해 희생되는 불안한 찰나가 되어버렸으니까요.
파우스트 역시 악마의 도움으로 세상의 온갖 욕망을 경험합니다. 눈이 멀만큼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거대한 부를 얻고, 황제의 권력까지 손에 쥐어봅니다.
하지만 그 어떤 화려한 순간에도 그는 그 마법의 주문을 외치지 않습니다. 쾌락은 늘 일회성이었고, 잔이 채워질수록 갈증은 오히려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파우스트는 언제, 어떤 순간에 그 치명적인 대사를 내뱉었을까요.
이야기의 끝자락, 두 눈이 먼 백발의 노인이 된 파우스트는 뜻밖에도 거대한 쾌락이나 개인의 성공 앞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일하며 살아갈 평화로운 땅을 개척하는 미래를 상상하며 외칩니다.
나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나누는 세계를 떠올렸을 때.
끝없이 더 높은 곳을 향해 질주하던 시선을 거두고, 드디어 내 곁의 사람들과 두 발을 딛고 선 이 땅의 가치를 깨달았을 때.
비로소 그는 눈물을 흘리며 외칩니다.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가 처음으로 현재에 완벽하게 만족하며 내뱉은 이 한마디는 역설적으로 악마와의 계약을 완성시키지만, 동시에 그의 영혼을 구원합니다.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끝없는 갈증의 지옥에서 마침내 벗어나 스스로 삶의 의미를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괴테는 이 거대한 서사시를 통해 우리에게 위로처럼 말합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흔들리고, 남을 질투하고, 때로는 공허함에 무너지는 것은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방황의 끝에서 우리가 마침내 찾아야 할 것은 더 높은 자리, 새로운 타이틀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는 오늘 습관처럼 내일의 할 일 목록을 적던 수첩을 덮었습니다. 스마트폰도 뒤집어 두었습니다.
대신 창문을 열었습니다.
서늘한 저녁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왔고, 식어 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당장 내일 세상의 속도에서 조금 뒤처진다 해도 괜찮습니다.
지금 이 순간 손끝에 닿는 온기만큼은 완벽하게 나의 것이니까요.
내 안의 악마가 또다시 다음 목표를 향해 뛰라고 속삭일 때마다, 저는 이 작고 평범한 문장을 주문처럼 입안에서 굴려볼 생각입니다.
멈추어라.
지금, 참 아름답구나.
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