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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의 뿌리

유대인의 질문 문화

by 토브


한 민족이 세계사의 수많은 폭풍을 견디며, 나라 없이도 천 년을 넘게 살아남았다는 건 단순한 생존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대인에게 있어 생존은 곧 정체성의 문제였고, 정체성은 질문하는 문화 안에서 보존되었다.

그들이 끊임없이 질문했던 이유는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질문은 기억의 방식이었고, 저항의 언어였으며, 신앙의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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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끝나지 않는 질문’의 책

유대 문화를 말할 때 탈무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방대한 책은,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이 질문과 논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리된 결론은 찾기 어렵다. 랍비들은 수백 년 동안 질문하고, 의견을 나누고, 다시 의문을 던진다.

이 구조는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속에 유대인의 사유방식이 담겨 있다.
진리는 묻고 또 물을 때 선명해진다.
유대인은 이 끝나지 않는 질문의 반복 속에서 진리를 붙들었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전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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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유대인의 정체성이다

유대인은 질문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켰다.
나라를 빼앗기고, 언어를 빼앗기고, 흩어져 살아야 했던 그들은 '왜?'라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왜 흩어졌는가?”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율법은 지금도 유효한가?”
“이 고난 속에서도 우리는 누구인가?”

그 질문들은 단순히 신학적 논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민족 전체가 존재의 위기 속에서 던졌던 생존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유대인들을 하나로 엮는 보이지 않는 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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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 질문하는 인간을 세우는 교육

하브루타는 이 문화의 핵심이다.
한 명이 질문하고, 다른 한 명이 대답한다.
그러나 그 대답은 다시 질문으로 이어진다.
정답을 말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답 속에 또 다른 질문이 피어난다.

하브루타는 단지 지식의 전달이 아닌, 사유하는 인간, 책임 있는 존재로 성장시키는 방식이다.
질문을 통해 자신이 모르는 것을 직면하고, 상대의 생각을 경청하며, 삶과 신앙을 스스로의 언어로 통합하게 한다.

이는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깊이’가 사라지고 있는 우리 교육에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식은 검색할 수 있지만, 지혜는 묻고 나누며 길어 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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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하브루타는 살아 있는가

우리는 자녀에게 얼마나 질문을 허용하고 있는가?
학생들에게, 신앙 공동체 안에서, 일터에서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어떻게 느끼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사람들은 말하기는 쉬워하지만, 질문하기는 어려워한다.
왜냐하면 질문은 상대를 인정하는 태도이며,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겸손이며,
관계를 향한 초대이기 때문이다.

하브루타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요구하는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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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질문을 남기고 있는가

하브루타는 질문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좋은 질문은 세대를 뛰어넘어 전해진다.

“너는 왜 공부하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하나님은 너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니?”

이런 질문들은 오래 기억되고, 삶의 깊은 층위에 뿌리를 내린다.
질문을 남긴다는 것은 가르침을 넘어서, 존재를 건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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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던져볼 질문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질문에 진지하게 응답해 보았는가?

내 안에는 지금 어떤 질문이 잠들어 있는가?

우리 공동체는 질문이 살아 있는 문화인가, 대답만이 중요한 구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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