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왜 머무르지 못할까?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사유가 사라진 자리에 대하여

by 토브

요즘 우리는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머무를 틈을 허락하지 않는 하루를 살고 있을 뿐이다.


하루는 촘촘하게 채워져 있다.
해야 할 일과 도착하는 메시지,
다음 일정과 다음 판단이 쉼 없이 이어진다.

그 사이사이에 잠깐의 여백은 있다.
문제는 그 여백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무언가로 곧바로 채워버린다는 점이다.


생각은 본래 느리다.
어떤 감정이 왜 생겼는지 알아차리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한 문장이 마음에 걸리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몇 번의 되돌아봄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생각이 모양을 갖추기도 전에
판단이라는 이름의 결론을 먼저 내려놓는다.


그래서 생각은 자라지 못한다.
잠깐 스쳤다가,
다음 자극에 밀려 사라진다.


독서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책은 읽고 있지만, 문장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줄거리는 이해했지만,
그 문장이 나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는 남아 있지 않다.
읽었다는 사실만 남고,
읽으며 멈췄던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머무름’을 비효율로 배웠다.
한 문장 앞에서 오래 서 있는 일,
답 없는 질문을 붙잡고 있는 일은
쓸모없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생각이 깊어질 것 같은 순간마다
스스로 다음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생각은
붙잡지 않으면 머물지 않는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사유를 ‘당연한 것을 낯설게 보는 능력’이라 말했다.
그 낯섦은 속도 속에서 생기지 않는다.
익숙한 판단을 잠시 미루고,
왜 이 장면이 마음에 걸렸는지,
왜 이 말이 불편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그 짧은 정지 속에서 생겨난다.


우리가 질문을 잃어버렸다는 말은
생각할 능력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생각이 머무를 자리를
계속해서 밀어내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머물지 못한 생각들은
흔적을 남기지 못한 채 하루 속으로 흩어진다.


글쓰기는 그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한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흘러가 버릴 생각을 붙잡아 두기 위해 쓴다.
한 문장을 쓰는 동안
우리는 판단을 늦추고,
결론을 보류하고,
생각이 스스로 말을 걸 때까지 기다린다.


그 기다림 속에서
생각은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는다.


인문학은 거창한 학문이 아니다.
빠르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선택,
쉽게 정리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생각이 머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는 일이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이 질문 하나쯤은 남겨볼 수 있지 싶다.


오늘, 나는 어떤 생각을
머물 기회도 주지 않은 채 흘려보냈는가?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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