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후 300평 쌀빵카페를 열다.

29살 대기업을 퇴사하고 낭만에 도전하다.

by 박승미


300평 카페를 연 어느 퇴사자의 기록



흥만소 여름사진.jpg

어릴 적부터 나는 가게를 여는 상상을 자주 했다.


그 공간은 화려하지 않아도 좋았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작고 따뜻한 장소이면 충분했다.


그 꿈이 조금 더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온 건,
대기업을 퇴사하고 나서였다.

나는 편의점 수퍼바이저 였고
하루에도 수십 개의 상품과 매출을 분석하며 살았다.


그런 시간을 몇 년이나 반복하다 보니,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이제는 내가 기획한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우리는 남편의 고향인 경기도 이천의 한 작은 골목,
300평짜리 낡은 건물을 임대하게 되었다.


그 공간을 ‘흥만소’라고 부르기로 했다.
‘흥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뜻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흥만소를 시작하면서 나는 두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첫째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
기존의 카페가 너무 조용하고, 너무 정적인 곳으로만 느껴졌기에
아이와 함께 와도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둘째는,
사라져가는 지역의 가치를 담아내는 방식으로 창업을 해보고 싶었다.
특히 이천쌀.
매년 소비량이 급감하고 있는 쌀을

빵이라는 형태로 되살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쌀로 빵을 만든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기술과 시간이 필요했다.


이천쌀을 갈아 크림을 만들기 시작했을 땐,
하루 네 시간 넘게 쌀죽을 저어야 했다.
처음 며칠은 손에 물집이 잡혔고,
얼굴도 몸도 기름기 없이 말라갔다.


심지어 첫 달 매출은 기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낮았다.
가끔은 ‘우리가 괜한 짓을 한 게 아닐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래도 묘하게 버틸 수 있었다.
내가 만든 공간으로 출근하고,
내 손으로 켠 조명이 그날 하루를 비출 때,
내가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일이 비록 몸은 힘들게 해도,
마음만큼은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그냥 밀가루 쓰면 안 되냐고.

하지만 그럴 거라면
애초에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쌀로 빵을 굽는다는 건 단지 '재료를 바꾼다'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지켜내고 싶은 가치를 담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매일 새벽,
쌀죽을 쑤고, 쌀빵을 굽고,
손님 한 명 한 명의 반응에 귀를 기울인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버티는 힘은 결국
내가 만든 ‘작은 확신’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쌀로 빵을 굽는다는 것,
그건 결국 내 꿈을 매일 반죽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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