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 입양기] Mongol rally 2017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나아가는 데 있어 가장 힘든 점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데에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몽골랠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중고차 한 대가 필요하다.
역시나 당연하게,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영국은커녕 한국에서조차 자동차를 구입해 본 적이 없었다.
평범한 25살 배기 대학생인 우리에게 자동차를 가진다는 것은 '돈이 많은' '어른'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4개월간의 몸고생 마음고생으로 '돈이 많다'는 조건은 성립시켰으나, '어른'처럼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영국에서 시작해 몽골에서 끝이 나는 여행을 소화해 내기 위해서 자동차에게는 '영국 국적'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구입한 자동차를 출발지인 영국으로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유럽에서의 보험 문제와 관세 문제, 그리고 여행이 끝난 후 자동차의 처리 문제를 생각했을 때, 자동차는 영국에서 구입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인 한 명 없는 영국에서 한국인이 자동차를 구입하고 등록해 보험을 들어야 했고, 몽골에 가져가서 폐차를 해야하는 상황이었으니... 이런 이상한 짓을 할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을리가 없었고, 도움을 요청할 곳 조차 없었다.
뭐,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이 여행의 참된 묘미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이라는데에 있다. 길이 없다면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수밖에.
우선, '일반적으로' 영국 사람들이 영국에서 자동차를 구입하고 등록하는 과정을 알아보기로 했다.
영국에서 자동차를 구입하고, 등록하는 과정은 의외로 매우 간단했다.
1. 조건에 맞는 매물을 찾는다.
2. 판매자에게 연락해 비용을 지불한다.
3. 영국의 자동차 등록 서류인 V5C에 판매자와 구매자의 정보를 기입해, 영국 자동차 등록국에 송부한다.
4. 소유주가 변경된 새로운 V5C 서류를 우편을 통해 받는다.
(자세한 절차는 영국 정부 인터넷 페이지 https://www.gov.uk/vehicle-registration 에 안내되어 있다.)
다행히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자동차 구매에 있어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물론,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 라는 말처럼, 보이는 것 만큼 쉬운것은 한가지도 없었다.
자, 이제 하나씩 해결해보자
조건은 비교적 간단하다.
1) 1.2리터 미만의 배기량
2) 10만 Km 이상의 주행거리
3) 무조건 짐이 많이 들어갈 것
4) 잔고장이 적을 것
5) 저렴할 것
기본적으로 중고차를 찾는 방법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바가 없다. 모든 대학생의 친구 '구글'에게 'UK used car' 를 찾아달라고 물으니, 다양한 중고차 거래 사이트들을 알려주었다.
Auto Trader UK, Motors.co.uk, Gumtree, ebay 등등 다양한 곳에서 중고차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편리하게도 Diesel과 Petrol(가솔린을 영국에서는 Petrol 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컬쳐쇼크였다.), 주행거리, 가격대 별로 분류해 적당한 차량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기능이 있었다.
폭스바겐의 Polo, 스즈키 Wagon R+, 현대 Getz 등등 흔히 경차 혹은 박스카라고 불리는 몇몇 모델이 눈에 띄었다.
영국의 중고차 매매 가격이 저렴한 편이었고(직접 거래 시 600~800파운드 선) 매물도 모델당 열 건 내외로 생각보다 매물을 찾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이제 판매자에게 연락하고 비용을 지불하면 되겠다.
Ah..... 여기에서 더 이상 해결해 나갈 방법이 없었다.
우선,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통해 배운 영어로는 영국의 현란한 발음을 따라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현지인과 의사소통 자체가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이메일을 통해 중고차 딜러에게 구입 문의를 해 보았으나, 읽어보지도 않았다.
행여나 연락이 된다 하더라도 차량에 대한 대금을 지불하고 직접 차량을 인수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었다.
영국 특유의 느린 행정처리로 인해, 차량 등록에 3~4주가량이 소모된다. 차량을 인수한 후, 3~4주가량을 차량을 보관해야 하는데, 보관할 장소가 없을뿐더러 한 달가량의 긴 기간 동안 영국에 체류하며 의미 없는 비용을 소모할 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차량을 구입하지 못하면 대회 참여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사이, SB이가 엄청난 아이디어를 냈다.
SB : "영국 한인회 사이트에라도 물어볼까?"
SI : "오!"
다행히도 영국 한인회 홈페이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한인회 홈페이지의 홍보란에 자동차 업계에 종사하시는 한인 분들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그중 HANKOOK MOTORS라는 상호의 연락처에 국제전화를 걸었다.
한국모터스 : Hello?
SB : 여.. 여보세요..?
한국모터스 : 아 안녕하세요? 한국 분이세요?
(앞선 몇번의 통화에서 자신감을 잃은터라, 갑작스레 등장한 한국어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SB : 아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희는 한국에 사는 대학생들인데요~
다행히, 정말로 다행히 한국 교포분이 운영하시는 자동차 정비소였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며 중고차 한 대를 구입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흔쾌히 알아봐 주시겠다고 하셨다.
역시 끈끈한 한국인의 정에 감탄했고, 자동차 구입에 대한 전권을 사장님께 맡겨드렸다.
사실, 처음에는 이 분들을 믿어야 할 지 말아야할지 엄청난 고민을 했다.
차량 구매에 1300파운드 가량을 미리 보내야 했고, 직접 차 상태를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그런 걱정이 죄송할정도로, 사장님께서는 우리의 여행 조건에 맞는 차량을 하나하나 추천해주셨고, 한 달이 넘는 긴 기간 동안 차고에서 차를 보관해 주시는 등 너무나 많은 친절을 베풀어주셨다. 현지에 도착한 후에도 보험 가입 등 많은 부분에서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아주셨다.
사장님은 매물도 많고, 잔고장이 적은 일본 경차인 SUZUKI Wagon R+ 모델을 추천 해 주셨다.
시꺼먼 남자 세 명이 타기에도 내부공간이 충분히 넓었고, 짐칸이 넓어서 두 달 간 짐을 보관하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두 달간 우리의 발이 되어준 '고고'
사장님의 도움 덕에 차량 구입에 대한 문제는 어찌어찌 해결했으니, 차량을 등록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큰 문제가 숨어있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외국에서 차량을 구입하고 등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당연한' 정보가 필요하다.
소유자의 성명과 차량 정보, 그리고 '거주지' 등 현지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었다.
다행히 외국인의 등록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고, 다른 조건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겨우 두 달 동안만 차를 소유할 계획이었고, 거주지 주소가 있을 리가 없었다.
두 달 남짓의 여행 기간 동안 영국에 있는 기간은 겨우 1주일가량이었으니.....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영국에 유학가 있는 동아리 선배에게 연락을 해보기도 하고 친구의 지인이나 유럽에 거주하는 친척에게까지 연락을 해 보았다.
그러나 선뜻 주소지를 빌려주겠다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주소지를 빌려준다는 간단한 문제인 것 같지만, 소유 차량 대수가 많아지게되면 보험료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벌금 문제 등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인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몽골랠리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를 통해 다른 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 남미지역, 오세아니아 등 먼 지역에서 참가하는 다른 팀들 역시 비슷한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 참가하는 영국 팀 하나가 이들 모두의 구세주가 되어주었다.
몽골랠리의 취지는 '환경보호' 이기 때문에, 참가하는 모든 팀들은 일정 금액의 환경 보호 기부금을 내야 한다.
그 영국 팀들은 다른 팀들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들의 주소를 빌려주는 대가로 환경 보호 기부금을 모금한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기똥찬 아이디어였다.
우리는 바로 페이스북 메시지를 날렸고, '주소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곧바로 한국모터스 사장님께 연락드려 자동차 등록을 부탁드렸고, 약 4주 후 주소지를 제공한 팀에게 V5C 서류 도착을 확인했다.
이렇게 우리의 애마 "고고"는 힘겹게 우리의 품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차를 가지고 있는것과 차를 탈 수 있는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걸 이때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