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멜로디는 남고, 우리는 사라졌다

컬러링과 플레이리스트

by 후우






“너를 위한 컬러링은 이번에 이거야!”


전화를 좋아하던 너는, 연락을 귀찮아하던 나를 어느샌가 너 한정으로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는 사람으로 바꿔버렸다.

우리는 자주 전화를 주고받았고, 네가 전화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자 나는 서운함에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쯤이었나.

내가 몇 번 더 투정 부리다

결국 먼저 전화를 거는 걸 멈출까 봐,

혹은 내가 심심할까 봐,

너는 갑자기 나만을 위한 컬러링을 설정해 두었다.

잘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은근히 내 취향을 저격하는 사랑 노래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너는 멋쩍게 웃으며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네가 좋아하는 노래로,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아서 골랐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컬러링으로 해뒀다며,

너만 다른 노래라고 괜스레 머리를 긁적이던 너의 모습도 기억난다.


그 짧은 멜로디 몇 초가, 내가 네 세상 안에 ‘있다’는 걸 매번 상기시켜 줬다.

그래서였을까. 전화를 걸 때마다 나는 너에게 ‘환영’ 받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나만의 ‘특별함’을 확인받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이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런 사소한 배려에 괜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마 그때, 나는 정말 최고로 좋은 남자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전화 걸 때, 몇 번이고 듣다 보니 그 노래를 듣는 순간마다 너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짧은 멜로디 하나로 내가 널 떠올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금세 질려하던 나도, 네가 골라준 그 노래만큼은 매일 몇 번을 들어도 1년이 넘게 질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많이 들으면 질리는 내 성격 때문에, 내가 한 노래에 질릴 즈음 바꿔달라고 하면 너는 신중하게 고민하며 컬러링을 바꿔주었다.


몇 번의 노래가 바뀌고 바뀌던 컬러링처럼, 우리의 연애도 조금씩 다른 색을 입어갔다.


네가 컬러링을 해준 것처럼 나는 네게 종종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과 내 마음의 메시지를 담아서.

하나하나 곡을 고르며 너를 떠올렸고,

내가 고른 노래를 들으며, 내가 컬러링을 들으며 널 떠올린 것처럼 나를 떠올려주길 바랐다.


어떤 날은 네가 너무 지쳐 보여서,

힘내라는 의미로 ‘수고했어 오늘도’를 첫 곡으로 넣은 힘내는 주제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고,

어떤 날은 네가 사랑스러워 보이는 걸 감출 수 없어,

사랑에 관한 좋아하던 노래들을 가득 담기도 했다.

비슷한 취향일 것 같은 곡들로도 리스트를 따로 만들곤 했다.

그런 날이면 네게 말했다.

"이거 듣다가 네 생각났어."라고.


우리는 생각보다 음악 취향이 잘 맞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너도 좋아했고, 네가 좋아하는 노래는 나에게도 좋았다.

완벽하게 겹치진 않았지만, 겹치는 부분이 꽤 넓었고,

서로 아는 노래를 동시에 알고 있으면 우리는 괜히 또 통했다며 기뻐하곤 했다.



어느샌가 너는 컬러링을 내가 바꿔 달라고 해도 바쁘니까 나중에 해준다며 더 이상 바꾸지 않았다.

나도 유튜브 뮤직의 자동 추천이 익숙해졌고, 어느새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일을 멈췄다.



헤어지기 몇 달 전쯤,

나는 정말 오랜만에 하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헤어짐을 염두에 두기 전이었다.

그냥 근래 네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예전처럼 조금이라도 기운을 주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든 그 플레이리스트는 네 노래 목록 끝자락에, 응원 메시지를 담은 짧은 코멘트를 달아 조용히 넣어두었다.

아무런 말 없이.

뭔가 오래간만이라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전하고 싶은 마음을 네가 스스로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 노래들에는 그냥,

네가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이 세상에 너 혼자가 아니라 내가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네가 어느 날 우연히 그걸 발견하고, 조용히 미소 지으며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그런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결국 너는 끝까지 그걸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혹은, 알면서도 그냥 넘겼던 걸까.


사실 말로도 몇 번은 전했었지.

힘내라고, 내가 여기 있다고.

그땐 그 말들이 닿았을 거라 믿었고,

네가 “고마워”라고 웃었던 순간들이 진심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게 꼭 진심이었는지 가끔은 헷갈리기도 한다.


내 마음은 분명했는데,

그때의 네 마음은 어쩐지 멀리, 다른 곳을 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게 참 오래 남는다.


지금은 네게 전화를 걸어 컬러링을 들을 일도 없지만,

그 노래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면 아직도 나는 멈칫하게 된다.


내가 담아뒀던 노래들이 들리면, 너도 그럴까?


마치 내 안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는,

그때의 우리가 조용히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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