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눈이 맛이 간 게 아니라, 사랑이었어

콩깍지

by 후우





사랑할 땐 귀여워 보이면 끝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키도 작고 빨빨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활기차게 하는 성격이라,

‘귀엽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연애할 땐 왠지,

‘귀엽게 보이게 만들 자신’ 같은 게 있었달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와, 쟤 너무 귀엽다.'


180cm가 훌쩍 넘는 큰 키에, 말도 적고 감정 기복도 거의 없는 곰 같은 성격.

겉보기엔 도무지 귀여울 구석이 없는데,

나는 네가 왜 그렇게 귀여웠는지 모르겠다.

그냥, 귀여웠다.

처음 너를 친구들에게 소개했을 때도

나는 너를 "배려심 있고, 착하고, 귀여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걔, 네 좋아하던 스타일이랑 너무 다른 거 알고 있었어?”

“진짜 사랑하나 보다 싶었다니까. 그니까 너 눈 돌아갔었다고.”

헤어지고 나서야 이 얘기를 들었다.

근데 뭐 어때. 진짜 귀여웠는걸.


그러게.

돌이켜 보면, 그때의 나는 그냥 눈이 맛이 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콩깍지가 그렇게 진하게 씌인 건, 내 인생에 처음이었다.


우리 둘 다 오랜 기간 연애하면서 살이 꽤 올랐었다.

넌 20kg가 넘게, 나는 10kg.

연애 초반부터 몸이 조금씩 안 좋아졌고, 어느 시기엔 약이 확 늘면서 살이 훅 찌기도 했다.

원래는 내가 한 입만 먹고 널 더 먹이느라 너만 쪘는데, 결국 나도 따라 불어났지.


그때도 우리는 서로를 보며 말했다.

“푹신푹신해서 좋아.”

“말랑해서 더 좋다.”

“아잇, 나는 거거익선이야.”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사실 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널 보고 놀랐는데,

나는 네가 살이 쪘다는 걸 여러 번 들을 때까지도 몰랐다.

나한텐 항상 똑같이 귀여웠으니까.

그리고 난 키 큰데 마른 것보다,

내 사랑 먹고 자라 동그래진 네가 더 좋았다.


단점마저도 예쁘게 보이던 시절이었다.

투덜거리는 너도, 엉뚱한 실수도,

심지어 다퉈서 울 때조차, 그 네가 너무 귀여워서 맥이 다 풀리곤 했다.

아마 조금 심술궂은 내가, 그런 모습에 더 약했는지도 모르겠다.

포켓몬 스티커에 꽂혀서 먹지도 않던 빵을 박스로 사서 며칠 지겹게 먹거나 몰래 버리던 너.

내 말투를 따라 하다가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오던, 뜻밖의 소녀 같은 말투.

귀여운 이모티콘을 잔뜩 섞어 보내던 메시지들.

바보 같을 만큼 단순하고 순수한 면들도 다 귀여웠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나를 먼저 찾던 네 눈빛도,

자다가 내가 잠깐 사라지면 금세 쫓아 나오던 버릇도.

어딜 가든 내 손을 꼭 붙잡고 다니던 그 습관도.

감정이 풍부해서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금방 훌쩍이던 모습도,

반대로 나는 잘만 보던 잔인한 장면들을 못 보겠다며 눈 돌리던 모습도.

입에 뭔가 넣어주면 으으~ 하면서도 결국 다 받아먹어 주던 너까지.

그냥… 그렇게 구석구석 너라는 사람 전체가, 사랑스러웠다.


남들이 보면 이상하게 보일 순간들까지.

내게 네가 왜 그렇게 귀여웠는지 설명할 순 없지만,

그때의 너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귀여웠다.

살이 찐 것도, 네 어떤 모습도, 뭐든 다 괜찮았다.

사소한 것들 마저 꼭 귀엽게 보려고 애쓴 게 아니라,

진짜 그렇게 ‘좋다’고, ‘귀엽다’고 느꼈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서로 그렇게 달라진 모습조차 사랑스러워했다.

어떻게 널 보면 볼수록, 피실 피실 웃음이 나는지

내 마음은 자꾸만 말랑해졌다.

그게 신기하고, 또 좋았다.


나는 쉽게 질리는 사람이다.

같은 음식 며칠 연속으로 못 먹고,

드라마도 지루하면 초반에 바로 포기한다.

그래서 결국 TV 자체를 안 보게 됐을 정도로.

그런 내가 한 사람을 그렇게 오래 귀엽다 귀엽다 하며 바라봤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마도 나한테 너라는 사람만큼은 매일매일이 달랐던 거다.

똑같은 말투도, 똑같은 표정도,

그 안에서 매번 다른 무언가를 찾아 하루하루를 다르게 느꼈을 거다.


사람들이 말하던 ‘콩깍지가 씌인 상태’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너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사람들은 콩깍지가 언젠간 벗겨진다고 말하지만,

나는 정말 콩깍지가 잘 안 벗겨지는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헤어질 때까지도,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안 벗겨졌던 것 같다.

나는 그럴 자신도 있었다.

평생 너를 귀엽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살 자신.

그래서 더 확신했다.

이건 진짜 사랑이구나.

너를 향한 내 마음엔, 단 한 점의 의심도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때의 나는 단순히 ‘너라서’ 좋았던 게 아니라

‘좋아해서’ 모든 게 좋았던 건지도 모른다.

뭐.. 콩깍지가 씌었다고 해도, 그 시간은 진짜였다.


눈이 맛이 간 나, 꽤 괜찮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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