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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핏 Mar 30. 2019

바이스, 조용한 이를 조심하라

브런치 무비 패스 #2 _약간의 스포일러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영화를 감상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바이스,  명목상 일인자 뒤에 숨은 최종 보스


극중 딕 체니 역의 크리스천 베일(좌), 실제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우)


  영화 <바이스(vice)>는 조지 W. 부시 시절의 부통령(vice presient), 딕 체니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부통령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니 대리자로서의 바이스의 뜻만 의미하는 줄 알았다. 다만 영어 단어 바이스(vice)에는 한 가지 뜻이 더 있다. 바로 '범죄, 악, 악행'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제목 'Vice'는 부통령의 줄임말이자, 악행이란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의적 제목은 딕 체니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적절해 보인다.


  딕 체니는 지금도 살아있다. 


 앞선 정권에서 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후, 석유 대기업의 CEO가 된 딕 체니는 W. 부시 대통령 밑에서 사실상 정부 내 최고 권력자가 된다. 그가 내놓은 이야기들은 전부 부시가 정책화시켜 사실상 체니의 말이 곧 법이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대통령인 아들 부시는 얼굴마담이고 진짜 최종 보스는 딕 체니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는 막강한 권력과 존재감을 자랑하는 '부'통령이었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w. 부시의 얼굴을 보며 욕하는 동안 뒤에서 더 대단한 막장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것은 이 분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조용한 자를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 딕 체니는 필요한 말만 하는 인물인 것처럼 그려진다....


정신없는 영화



 이 영화는 상당히 정신이 없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과거 회상, 제멋대로 삽입된 자료화면, 쉬지도 않고 흐르는 내레이션 등이 그렇다. 빅쇼트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정신없는 매력이 있을 줄이야. 아담 맥케이 감독은 분명 매력적이다. 


 바이스는 막 밀레니엄에 들어서던 시대 조지 w. 부시의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의 삶을 다룬 이야기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 모씨를 떠올리게 하는, 지금도 생존해 있는 역사적 악인을 다룬다. 미국 법이야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존 인물을 이렇게 다뤘다가는 분명히 명예 훼손으로 고소당할 것 같은 느낌이다.


중년의 체니 부부, 아카데미 분장상을 수상한 영화답게 , 분장을 참 잘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정말 본 적도 없는 셰익스피어의 극적 대사(미사여구와 상징적 표현으로 가득한) 따라 하는 장면은 너무 웃긴다. 뭣보다 어떤 개떡 같은 대사를 갖다 줘도 찰떡같이 소화할 검증된 배우들(크리스천 베일은 말할 것도 없고 에이미 아담스), 시시각각 변하는 나이 때에 따라 적절히 바뀌는 분장을 성공해낸 분장팀이 이 영화의 정신없음 속에서도 중심을 잡아주는 공신들이다.


매력적인 영화




 영화 중간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에는 정말이지 이 감독 질리는 스타일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2시간 12분짜리 영화에 5시간 동안 다큐에서 다룰 법한 내용을 욱여넣은 것부터 희대의 악인을 다룰 때마저도 잊지 않는 위트는,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높이 평가된다.


 그는 정말 시종일관 비꼬고 물고 늘어진다. 머리 아플 정도로 정보로 가득한 이 영화의 각본은 감독 아담 맥케이 본인이 직접 썼다. 얼마나 긴 취재 기간이 있었을지 짐작도 안 간다. 중간에 부득이하게 모자이크 처리한 두 부자 가문의 성을 검색해 보았는데 내가 몰랐던 엄청난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말하자면 대통령은 임기직이지만 이 가문은 태어난 이상 죽을 때까지 왕과 같은 권세를 누리니, 가히 대통령 그 이상의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약간의 비약을 섞자면, 미국은 이들의 것이다. 이러한 가문의 존재를 영화에서 발설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멋지다. 


 다만 아담 맥케이의 스타일은 매력이 과해서 호불호가 갈릴 스타일이다. 둥글둥글 잔잔한 사람이 오히려 더 두루 인기가 많지 않은가? 만인이 좋아하기에 이 감독은 너무 뾰족한 데가 있다. 우선 필자는 이 영화를 재밌게 보았다.


(북미에서 특히) 시의성 있는 영화


제작을 맡은 브래트 피트는 Plan-B 제작사를 통해서 자신이 배우로서 말할 수 없었던 의견을 표출하는 것 같다. 나는 배우들이 이렇게 사회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굉장히 좋게 생각한다. 어쨌든 누군가가 해야 할 말이라면 유명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지 않겠는가.



 이 영화가 지금 트럼프 시대에 나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영화 속에서는 어김없이 '잘못 선출된 리더'가 나오고, 국민들은 투표가 끝난 후에 달라진 삶으로부터 후회를 느끼지만 이미 늦었다. 조지 w 부시도, 오바마도, 트럼프도, 뽑히지 못했던 힐러리도 누구를 뽑든 똑같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뽑고 나면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브렉시트는 국민투표를 거친 것이지만 지금 엄청나게 삐끗거리고 있다. 나도 참정권을 가진 후 몇 차례 선거들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인데 선거에 당연한 결과란 없다. 자신이 믿는 것을 남이 믿는다고 섣불리 생각해서는 안된다. 정말로 믿는 것이 있다면 자신이 왜 믿는지에 대해서 타인에게 이야기를 하고 퍼뜨려야 한다. 그러지 않았다가 자신과 이견을 지닌 자가 집권한다 해도 이미 늦었으니까.


어쨌든 다수는 생각보다 자주 틀린다. 딕 체니는 그러한 다수의 어리석음이 낳은 괴물이다. 그는 변호사를 데리고 다니며 색다른 법 해석을 통해 법망을 피해 다녔다. 국민을 얼마나 호구로 보았길래 저런 짓거리까지 했나 싶을 만큼, 기밀의 범위 안에서 그는 제멋대로 날아다닌다. 법은 그에게 입맛에 맞게 조리하면 되는 음식과도 같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가는 당시의 미국 국민처럼 호도되기 십상이다. (이 영화의 결말과 쿠키 영상에서까지 말하고 있는 궁극적 메시지는 그것) 싱크탱크라고 불리는 머리 좋은 이들이 모여 군중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참 쉽다. 장악해 놓은 미디어 매체가 많을수록, 갖고 있는 돈이 많을수록 과정은 한결 수월해진다. 이 영화는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고 있어도 다리를 베어가는 지도자를 제대로 보자고. 아니 애초에 제대로 뽑자고 호소한다. 정치인들이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직격타를 맞는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서민들이니 말이다.


 그 밖의 것들


 1. 딕 체니 역을 맡은 크리스천 베일은 완벽한 분장을 하고 시종일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렇더라도 완벽한 분장과 함께, 크리스천 베일이 아닌 딕 체니로 보이기는 한다. 

  사실 딕 체니를 연기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존경받는 인물을 그린 국뽕 영화 같은 게 아니다. 사실상 재연 드라마인데, 미화를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일화들이며 묘사들도 중립적인 편이다. 근데 당시 딕 체니의 감정을 어떻게 알겠는가. 심지어 그때의 딕 체니의 감정을 알 수 없어서 아쉽다는 내레이션도 대놓고 나온다.


2.  이라크전은 아무런 명분도 없는 오로지 돈을 위한 살육전이었다. 딕 체니는 그 살육전이 벌어오는 돈의 직접 수혜자(그는 석유기업의 CEO였다)였다. 돈을 위해 희생된 수많은 이라크의 민간인들과 의미 없는 전쟁에 동원되어 지워지지 않는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은 미국의 장병들. 딕 체니는 뻔히 보이는 눈 앞의 피해자들을 무시하고 사과조차 않고 있다. 이러한 모습까지 우리나라의 누구와 비슷하다.


3.(스포) 극 후반에 딕 체니는 심장 문제로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간다. 그러나 그가 죽으려는 순간 (안타깝게도) 장기 기증 대기열에 있던 한 인물(이 영화 내레이션의 화자이자 이라크전 참전 용사) 이 죽으면서 이 영화의 내레이션은 끝이 난다. 

 인간성 여부를 떠나 영욕의 세월을 보낸 그가 죽으려고 할 때는 잠깐 슬펐는데 그가 타인의 심장으로 살아나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저 일화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4. 교훈: 지도자를 잘 뽑고, 영화만큼 정치에 관심을 더 갖자!


5. 어쨌든 이 영화는 재밌으나, 10점 만점에 7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정보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피곤할 때는 보러 가는 것을 삼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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