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패스 #1 (약 스포)
#브런치 무비 패스로 영화를 감상한 후에 작성된 리뷰입니다.
Intro
이 영화는 때깔이 좋다.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는 편집과 촬영 사운드 그리고 잘 짜인 콘티를 가진 영화라는 말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꼽으라면 단연 연기 앙상블이다. 잠깐 나오는 배우들까지도 연기를 잘하기에 더욱더 현실감 있는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뒤에 언급할 문제점들이 아니라면, 웰-메이드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좋은 시작점에서 시작한 영화인 데다 영화도 만들 줄 아시는 분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뒷맛이 영 개운치 못한 영화라 안타깝다.
주요 인물 3인 , 그리고 마지막 총평으로 나눠 차근차근 리뷰를 시작해보겠다.
인물 하나 / 구명회(한석규)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남자
청렴한 도덕성으로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차기 도지사로 주목받고 있는 도의원 구명회(한석규), 어느 날 아들이 교통사고를 내고 이를 은폐한 사실을 알게 된다. 신망받는 자신의 정치 인생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그는 아들을 자수시킨다. /출처 영화 줄거리
한석규는 한석규다. 귀에 때려 박는 발성과 유려한 대사 구사력으로 초반에 관객을 확 몰입시킨다. 중국어 대사까지도 전혀 어색함 없이, 엘레강스하게 소화하는 그에게 도지사 출마를 앞둔 인기 정치인 구명회 역할을 의심의 여지없이 제옷 같아 보인다. 아마 감독이 이 영화를 구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배우가 한석규였을 것이다. 그럴 만큼 그는 참 이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다. 구명회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그러나, 중반부 이후 급격히 바뀌는 인물의 성격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물론 이 설득력 없음의 모든 탓이 배우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살인을 프로처럼 저지르는 그에게서 내가 느낀 건 거물 정치인이 짓고 있는
미소 속의 가면성이라기보다는 불친절한 감독의 두서없는 연출력이었다.
인간 구명회에게 설득력을 부여하는 장면이 편집 과정에서 빠졌는지 아니면 애초에 찍지를 않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 인물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하기를 감독이 포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만큼 영화 중반부 이후 , 관객들은 구명회라는 인물에 대해 분량이 잘못 분배되었거나 잘못 연출되었거나 잘못 기획된 인물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초중반부에는 설경구, 후반부에는 천우희에게 쏠려 있는 영화라 느꼈다. 그렇기에 반드시 지금보다는 더 큰 비중을 가져야 했을 구명회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리고 열연한 배우 한석규에 대해서 여러모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인물 둘 / 유중식(설경구)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오직 아들만이 세상의 전부인 유중식(설경구)은 지체 장애 아들 부남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인 아들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싸늘한 시체로 돌아오자 절망에 빠진다. 사고 당일 아들의 행적을 이해할 수 없고, 함께 있다 자취를 감춘 며느리 최련화(천우희)를 찾기 위해 경찰에 도움을 청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 아들의 죽음 너머에 드리운 비밀을 밝히기 위해 중식은 홀로 사고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나는 그동안 설경구라는 배우를 너무 과소평가해왔던 것 같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한 것은 그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다. 나이가 들고 주름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표현을 위한 도구가 더 많아지는 셈인 것 같다. 그는 조금 더 섬세해진 얼굴로, 조금 더 섬세하게 연기한다. 박하사탕이나 오아시스 혹은 해운대 속 모습만 기억하고 있던 내게(나는 그의 최근작은 거의 안 봤다) 영화 우상 속 설경구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극 중 지체장애를 앓던 아들을 잃은 가난한 아버지 중식을 연기한 설경구는 그렇게 수많은 영화 속에서 수많은 인물을 연기했음에도 또다시 중식을 새로운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구태의연한 표현이지만 천의 얼굴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는 또 다른 스펙트럼을 만들어 낼 것이다. 분장을 하지 않고도 노년 연기가 가능해질 만큼 나이가 들면, 한국 영화계는 얼마나 섬세한 노년의 연기자를 얻게 될까. 벌써 기대가 된다.
+찬양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행동이 자연스럽다.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표현할 줄 안다. 설경구는 원래도 훌륭한 배우였지만 어떻게 된 게 점점 연기를 더 잘한다. 개인적으로 작년 <암수 살인>에서 김윤석의 노련함에 놀란 이후로 또다시 찬양하고픈 연기를 만났다. 그렇기에 설경구에게 호감이 있다거나 한마디로 끝내주는 연기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볼만한 영화다. 그는 시나리오 상에서부터 문제였던 부분들을 다 뭉개버리는, 인물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며 극을 끌어가는 연기자다.
인물 셋/ 최련화(천우희)
사건 당일 비밀을 거머쥔 채 사라진 여자
한편 그날 밤 사고의 진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최련화, 부남과 함께 있다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그녀에게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알아서도 안 될 진실이 숨겨져 있는데…
련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너무나 좋은 연기, 그리고 너무나 안타까운 캐릭터다. 이 영화는 련화가 등장하면서 망해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시작하는 전개는 련화의 막무가내적인 성격이 드러나면서 시작된다. 아, 이 영화의 중반까지 나는 이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
그녀는 기존 한국영화들이 답습해 오던 잔인하고, 한국에 넘어오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어떤 일이든 돈만 벌면 장땡이라 가리지 않고 하는 이미지를 지닌 조선족 여성 캐릭터를 연기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애초에 매력이라곤 느낄 수 없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천우희는 그 매력 없고 오로지 세기만 한 캐릭터를 배우의 매력으로 색칠해버린다. 그래서 관객들은 련화가 아니라 눈썹이 다 빠지고도 사랑스러운 천우희의 이미지, 그녀의 매력을 보면서 '귀여워', '연기 잘해', '예뻐' 하면서 홀린 듯 보게 되는 것이다. (tmi: 개인적으로 최근에 보았던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속 엠마 스톤과 일정 부분 겹치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사족
그녀의 엄청난 캐릭터 소화력은 그렇다 치고, 영화에서 그녀가 하는 말의 40퍼센트 정도는 들리지 않는다. 조선족 사투리를 거세게 사용해서 그런 거 같기는 한데 해결책이 필요해 보인다. 차라리 자막이 있는 중국어 대사가 더 반가울 지경이니 말이다.
총평
왜 우상인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영화의 초반 인상은 좋았다.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라는 믿고 보는 배우들의 조합. 전작의 호평에서 오는 기대감 등등.... 내 스타일은 아닐지언정 재밌을 거라 생각했다.
기대 속에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상당히 단도직입적으로 시작된 영화는 중반부까지는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흘러갔다. 나는, 어쩌면 미리 찾아보고 온 평론가 평보다 훨씬 좋은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기 시작한다. 이게 다 연기 잘 한 설경구 탓이다...
너무 강한 스포가 될 것 같아 자세히 이야기는 하지 않겠으나, 마지막 장면이 상당히 우스꽝스럽다. 감독이 그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하려고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보면 알만하다. 그는 우상화된 어떤 존재에 대한, 그리고 '우상화 된 존재에 대해 우리가 갖는 맹목적 믿음과 우상의 만들어진 신화'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거기까진 알겠다.
그러나 우상이라는 제목과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리고 이 영화 전체가 갖고 있는 어떤 의미들이 얼마만큼 일직선상에 놓여있는가, 하는 문제에서 나는 강한 의심을 느낀다. 요컨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의미의 다양한 곁가지들이 우상이라는 제목 안에 포용될 수 있냐는 말이다. 제목이 왜 우상이었어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 감독이 하고픈 말의 장황함을 묶을 단 한 가지 단어가 과연 우상인가? 이순신 장군 동상의 목을 따는 중식의 극단적 행동은 어쩐지 억지로 삽입된 것에 가까워 보였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조금 더 고쳐져서 나왔어야 할 영화다. 웰메이드라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없지 않고 좋은 장면들도 있지만 전체적인 부분에서는 다소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길어도 너무 길다. 감독이 편집 과정에서 단호하게 쳐냈어도 무방할 장면들이 꽤 들어있다. 아마 굳이 감독판을 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연기에 대해서는 엄청 기대하고 가도 다 충족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