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까스

엄마의 밍크코트

by 곰곰

지금이야 돈까스는 거의 한식의 반열에 있는 매우 대중적인 음식이지만 1991년 무렵의 돈까스는 뭔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소위 ‘칼질’하러 가서 먹는 음식이었다.


“아, 금방 준다잖어. 그걸 못 기다리고 계속 독촉하면 거래를 어떻게 하나 이 사람아.“ ”그 말이 대체 몇번째요? 벌써 두달이 넘어 가는데 OO사는 말만 하고 한푼도 안 주고 있잖아요!“


초파일 연등값 수금 문제로 아버지와 한판 거하게 다툰 날이었다. 사람 좋은 아버지 때문에 복장이 터지던 어머니는 알아서 밥 차려 먹으라고 딱 잘라 말하고 나와 동생을 당시 광주에서 이름난 경양식 레스토랑에 데려갔다. 무슨 경치 좋은 언덕 위에 있던 레스토랑이었는데 이름은 까먹었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문 앞에 있던 종업원은 우리들의 복장을 문제 삼아 출입을 막아섰다. 내 기억으로는 그냥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던 것 같은데, 종업원은 너무 차림새가 자유로워서 출입이 안 된단다. 좀 실랑이가 있다보니 나중에는 지배인까지 나와서 막아 서는데 어머니가 항의하자 급발진을 하면서 “거 아줌마, 애들 데리고 집에 가서 삼겹살이나 드셔!” 망발을 한다.


안그래도 빡이 쳐있던 모친께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칼질 한번 하는 거에 더럽게 유세 떠네!!! ㅅㅂ” 라고 하시며 지배인에게 법규를 날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바로 우리 둘에게 꼬마 도련님 양장을 입히고 당신께서는 밍크코트(나는 그런 옷이 우리집 옷장에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를 걸치셨다. 엄마한테 왕창 깨진 아빠는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드시고 있다가 눈이 휘둥그레… 심지어 아빠한테 설명도 안 해주고 우리 셋은 다시 집을 나섰다.


당황스러웠다. 옷만 바꿔 입고 왔는데 그냥 통과였다. 어머니는 사장을 불러서 지배인의 사과까지 받아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인 돈까스와 함박스테이크…

이제 돈까스는 그냥 한식이 아닐까?

사실 이미 서울에서 다양한 외식문화를 경험했고 심지어 양식당까지 경영했던 엄마한테 그 상황이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어머니는 한참 동안 이 한국 사회가 겉모습,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이야기하시다가 우리에게 나이프와 포크 쥐는 법을 알려주셨다.


"오른손에 나이프, 왼손에 포크. 엄지랑 중지로 쥐고 검지는 위에서 살짝 눌러주면 돼."


"나이프 밀 때 힘을 주고, 당길 때는 유연하게."


"같이 밥 먹는 사람하고 이야기하면서 속도를 맞추면서 먹고, 늬 아부지처럼 막 혼자 번개같이 먹고 일어서지 말고."


"식사 중에 자리를 뜨면 포크 나이프를 ㅅ자로 접시 위에 두고, 완전히 식사를 마쳤으면 접시 오른쪽으로 가지런하게 모아두도록 해."


수프와 돈까스를 먹는 법도 알려주셨다.


"수프는 수저로 뜰 때 앞에서 바깥 쪽으로 뜨고(다른 것은 다 그럭저럭 어렵지 않았는데 제일 어려운 게 이 수프 뜨는 법이었음), 돈까스나 스테이크는 미리 다 잘라두지 말고 왼쪽부터 먹을 만큼 잘라서 먹는 거야. 먹을 때 소리 내지 말고 바르게 앉고."


이것이 바로 나와 내 동생의 생애 첫 돈까스 만남이었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돈까스는 그 맛의 탁월성과 경제성으로 인해 엄청난 인기 음식이 되었다. 서민들의 살림이 조금씩 나아지고 기름, 밀가루, 고기 등 재료 공급망과 값 역시 안정화되면서 차츰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왕돈까스 전문점으로 일본식 돈까스점으로 그리고 분식점으로 판매의 장 역시 대중화되어 확산하였다.


그 결과 지금 세대 아이들에게 돈까스는 그냥 한식 같은 느낌의 만만하고 맛있는 간편식이 되었고, 그리하여 나는 엊그제도 돈까스를 먹게 된 것이다.


거의 30년이 훌쩍 넘은 일이지만 나는 이 돈까스를 먹을 때마다 수프를 안쪽에서 바깥으로 떠 먹어야 한다는 게 계속 생각이 난다. (역시 어릴 때의 교육이 중요한 것인가...) 그래서 일본식 돈까스의 된장국도 그렇게 먹게 될 때가 많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어김없이 그날의 무례했던 지배인에게 호쾌하게 쏘아 붙이던 엄마의 모습으로 이어지고. 이번에 내려가면 엄마랑 돈까스와 밍크코트 이야기를 나눠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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