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귀염둥이 근본주의자

by 곰곰

2004~5년인가. 남북관계가 지금보다는 괜찮아서 민간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절에 나는 추첨에 당첨되어 인천에서 진행된 남북 청년학생 상봉모임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무용대 학생과 의대 학생 두 분하고 냉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던 용천 열차 사고와 북측 청년들의 구조 활동, 남측에서의 구호 지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어쩌다 냉면 이야기가 나왔다.


“남쪽에서는 정통 평양냉면이라고 하면 면도 가위로 안 자르고 뭘 더 첨가하지도 않고 슴슴하게 먹는 것으로 압니다. 메밀 함량도 높고요.”


했더니만 단아한데 센캐 스타일의 무용대 학생이 고개를 갸웃하다 하는 말


“냉면을 왜 그렇게 고지식하게 먹습니까? 우리는 그냥 식성에 맞게 먹고픈 대로 먹습니다, 창조적으로.”


“여름에 냉면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름엔 메밀이 안 나서 전분을 많이 섞어서 만듭니다.“


나이가 좀 있어보이는 의대 학생 형님(나중에 들으니 북한은 군대 갔다와서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아 나이가 서른이 넘었다고 했다)은 너털 웃음을 지으며


”식초는 국물에 넣지 말고 면에다 쳐서 먹어야디.“


“……”

의대생 형님과 무용대 여학생의 인상은 대강 이런 느낌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평양냉면 근본주의자들의 고집? 소신? 이런 걸 듣고 있으면 그 때 생각이 난다. 냉면 이야기를 하다가 상황과 요구에 맞게 변화해나가려고 하는 능동성이 중요하다고 열을 올리던 무용대 학생의 상기된 얼굴도 떠오르고. 지금쯤이면 무용 선생님이 되어 있으려나. 황정민 느낌이 나던 얼굴이 붉으죽죽했던 의대 형님은 환갑 줄이 다 되었겠네.


내 주위에는 메탈 근본주의자, 펑크 근본주의자, 유교 근본주의자, 분재 근본주의자, 후라이드치킨 근본주의자, 나전칠기 근본주의자 등등 다양한 귀염둥이 근본주의자들이 있는데 평양냉면 근본주의자들은 그 중에서도 고집쟁이 상위 랭크에 속한다. 이 자들은 순둥순둥해보이는 주제에 타협이 없다, 타협이. 아오.


근데… 오랜만에 만난 내 친구 녀석도 설마 평냉함냉 근본주의자였을 줄이야.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이북 사람 만나서 직접 들은 이야길 해줘도 막무가내다. 아, 님아 나는 걍 겨자랑 식초 넣어서 먹겠다고요. 다대기도 넣을 거라고요. 왜 이래 진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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