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참치여야 한다
"밥물은 손등에 찰랑찰랑할 정도로만 해야 해. 물 젖은 손으로 코드 만지지 말고, 알았지? 응?"
엄마는 국민학교 들어가면서 아궁이에 불 때고 밥 짓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유달산 공장들에서 나오는 냉각수를 길어다 팔아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와 늘 한 두릅으로 묶여서 나오는 레퍼토리였는데, 아부지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당신도 “내가 9살 때 말이야, 홀홀단신으로 기차타고 서울에 올라갔어~!” 말을 꼭 한번씩 보태곤 했다. (누가누가 더 힘들게 자랐나대회로 번지기 전에 나는 말을 돌리곤 했다…)
점점 늦어지는 가게 퇴근 시간을 어찌하기는 어려웠고, 통닭을 배달시키거나 라면만 끓여먹으라고 하기에는 우리들의 건강이 염려되었으므로, 엄마는 1992년 K장남인 나(당시 나이 10세)에게 전기밥솥으로 밥 짓는 법을 가르쳤다.
나는 요리에 센스가 있어서 진밥과 꼬들밥을 한번씩 생산한 후 이내 찰지면서도 적당히 고슬고슬한 밥을 지을 수 있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스스로 밥을 했다는 성취감에 취해 김과 밥을 싸서 간장에만 찍어 먹어도 감탄했으나 금방 뭔가 더 간편하면서도 지글지글 맛있는 일품요리를 원하게 되었다.
아, 그렇지! 김치볶음밥에 참치를 넣어보자!!
생각해보면 신기한 게, 친구네 집에 가서 얻어먹은 적도 밖에서 사먹은 적도, TV등에서 본 적도 없는데 그냥 맨밥에 참치 캔을 먹다가 문득 김치볶음밥에 넣으면 맛있겠다 생각이 떠오른 거다.
당시 캔 참치는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야채참치, 고추참치, 짜장참치까지 캔 참치는 도시락 반찬계의 지각변동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리할 필요도 없는데다 캔으로 되어 있어 국물 같은 것이 넘칠 일도 없고 설거지도 간단했기 때문에 가족들의 식사와 도시락을 준비하던 엄마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부스스한 얼굴로 새벽에 도시락을 싸던 엄마를 생각하면 참… 무상급식이 없을 때, 학교를 다녀 죄송…
암튼 참김볶밥은 내가 최초로 요리답게 한 요리이자 동생이랑 허기를 달랠 때 가장 많이 해먹던 간편식이었다. 내 참김볶밥의 초기 버젼은 김치랑 참치를 섞고 그 국물에 밥을 말아서 팬에 볶는 식이었다. 맛이 없었지만 김치 타는 냄새와 소리만으로도 뭔가 뿌듯했다. 동생은 햄이나 스팸을 넣은 김볶밥을 좋아했으나 나는 그 개운치 않은 잡내 같은 것이 싫어 지금도 햄 들어간 김볶밥은 어지간해서는 잘 먹지 않는다. 오직 참치, 오직 참김볶밥.
자취를 하며 만들어먹던 참김볶밥은 혼술 안주로 참 많이 먹었던 것 같다. 특히 늘 뭔가 사람들과 같이 지내야 했던 삶 속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때는 자주 참김볶밥을 먹었다. 북적거리는 시간 속에서 느끼는 쓸쓸함 같은 것을 달래주던 참김볶밥.
오늘은 한동안 애쓰고 씨름하던 사업을 잘 마치구 집에 돌아와서 ‘뭘먹지’ 하다 참김볶밥을 볶는다. 졸리고 배고프고 고단하고 바빴다가 가라앉은 이런 날엔 역시 참김볶밥이지.
맨 첨에 해야하는 일은 계란 후라이를 굽는 것이다. 이거슨 절대적이다. 계란은 데코레이션이 아니며 필수성분이다. 참김볶밥을 다 볶은 후의 팬에서는 후라이가 번거롭다. 가능하면 기름에 튀기듯 구워야 바삭하니 맛있다.
잘 익은 김치를 잘게 다져 참치 기름과 간장을 두른 팬에 볶는다. 이 꼬리한 냄새가 묘하게 마음을 진정시킨다. 뜨겁게 달궈진 팬에 양파와 마늘 으깬 것을 넣어 좀 태우듯 볶다가 버터를 넣는다. 오늘은 짜게 먹고 싶으니깐 굴소스도 넣자. 마지막으로 밥을 넣어 센 불로 달달달 볶은 뒤, 계란 후라이를 얹고 김가루랑 쪽파까지 올리면 완성.
번잡할 필요 없이 접시와 숟가락 하나만 가지고 앉아 먹는다. 역시 참김볶밥은 최고다. 맛있다. 피로와 스트레스를 순식간에 풀어준다. 금새 뚝딱이다. 아씨 트리플 곱배기로 볶았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