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조림

할머니의 갈치조림은 불평등했다

by 곰곰

“아유 언제 자리가 나는겨?”

혼자 온 할머니가 역정을 내신다.


“할머니 1인석이 나야 들어가실 수 있어요, 좀 기다리셔.”

사장님이 할머니를 달랜다.


좁은 골목에 손님들과 냄비를 끓여대는 화구의 열기가 꽉 찼다. 남대문 갈치조림 골목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줄을 선다. 회의를 하나 마치고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나서 근처 남대문 시장으로 향했다. 원래는 후추 뿌려주는 고기튀김으로 유명한 북경원에 가려고 했는데, 줄이 너무 길어 망연자실한 차에 갑자기 갈치조림이 퍼뜩 생각났다!


“한 15분은 기다려야 돼요.”

사장님은 땀을 뻘뻘흘리면서 생선을 굽는 동시에 계산과 가게입장 줄까지 커버하고 있었다. 나는 갈치조림 하나요 하려다가 갑자기 갈치를 왕장창 많이 먹고 싶어 두 개를 주문했다.

남대문 갈치골목의 풍경, 늘 바쁘고 후끈후끈하다.

“아유 배고파 죽겄네…덥구“

혼자 오신 할머니가 연신 부채질이다.

잠시 고민하던 사장님이 내게 묻는다.

”그… 혹시 할머니랑 합석해서 드실래요?“

”오! 전 괜찮아요~(앗싸!)


테이블에 앉아 잠시 폰을 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수저를 두벌 꺼내 자리에 놓아주신다. 황급히 물을 따라서 드리고 머뭇거리다가 한 마디 여쭈었다.


“할머니 얼마나 기다리셨어요?”

“한 30분 됐지”

“네…”

“청년은 갈치를 좋아하나봐, 두 마리?”

“아, 넵 제가 갈치를 원체 좋아해서요 ㅎㅎㅎ”

“우리 손주도 갈치를 좋아해서 그거 없으면 밥도 안 먹고 그랬어.“

“저두 어릴 적에 그랬는데~헤헷”


7살인가부터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나는 가게 옆에 딸린 단칸방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이혼을 하고 난 후 우리 두 형제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밖으로만 돌았다. 할머니는 원래 나주 노안에 살고 계셨는데 우리를 돌보기 위해 광주로 나오셨다.


그 무렵의 나는 천식을 앓고 있었고, 몸이 허약해서 집에 가만히 누워있는 날이 많았다. 비실비실한 큰 손주가 얼마나 속상하고 애틋했을까. 할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좋다는 보약을 지어 먹이고, 끼니마다 맛난 반찬을 해서 밥상에 올려주셨다.


사실 나는 성격이 꽤나 모가 나 안 좋은 편이다. 어릴 때는 반인반수의 상태로 싸가지가 싹바가지여서 그 성향이 훨씬 심했다. 좋아하는 반찬이 밥상에 올라오지 않으면 밥을 안 먹고 버티기 일쑤였고, 심지어 구슬픈 전략적 울음을 터뜨려서 할머니를 곤혹스럽게 했다 (그리고 배고픈 동생을 짜증 나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가 안절부절하면서 나를 달래는 모습을 보며 안도감이랄까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어느날 갑자기 싸늘한 얼굴로 떠난 엄마의 모습에 대한 반작용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도 심술궂게 밥 투정을 심하게 하던 나를 한방에 입 다물게 하는 할머니의 비장의 요리가 있었으니, 바로 갈치 조림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매우 좁아서 할머니, 나, 동생, 아빠까지 나란히 누우면 방이 꽉 찼다. 작은 부엌에 가스레인지가 들어온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 전까지는 음식을 곤로에다가 해서 먹었다.

할머니와 살던 동안에는 거의 모든 음식을 석유 곤로에 해서 먹었던 것 같다.


따뜻한 곤로 위, 양은 냄비 속 가득 찬 갈치와 아래에 깔린 무우, 얌전히 채 썰어진 양파, 호쾌하고 넓직한 대파, 보드랍게 부서지는 감자, 그 위에 잔뜩 뿌려진 빨간 고춧가루까지. 할머니의 갈치조림은 보글보글 끓고 있는 상태로 먹는 라이브 요리였다.


할머니는 나에게는 두툼한 가운데 토막을 주셨다. 뼈도 잘 발라서 밥숟갈 위에 살만 잔뜩 쌓아주셨다. 동생은 늘 그것보다는 작은 부분을 먹어야만 했다. 할머니의 갈치 조림은 불평등했다. 그 불평등이 나에게 주던 안온함.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동생이 옛 기억 속에서 찾아낸 섭섭함을 이야기했을 때, 나의 안도가 동생에게는 갈증이 되었음을 생각하니 슬프고 또 그리웠다.


허겁지겁 갈치조림에 밥 공기를 비우는 내 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손주의 숟가락질 한번에 한번씩, 마치 신령님께 기도하듯이 말하셨다.


“아이구~어찌끄나, 우리 강아지. 건강만 혀라, 할미는 우리 승훈이가(내 원래 이름은 승훈이었다) 몸만 튼튼하면 그만이어야. 잘 먹고 토실토실하니 좌우지간 건강혀야 쓴다.”


두 손으로 합장한 할머니의 쭈글쭈글하던 손등, 털실 옷의 온기와 카랑카랑하던 말의 진동, 담배와 나프탈렌 냄새. 보고 싶은 할머니.


“여기, 이쪽에 갈치조림 2인분 맞죠? 설마 할머니가 2인분을 다 드셔?”

“아녀, 이거는 요 청년 꺼여, 나는 한 개구. 허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부글부글 끓는 갈치조림 뚝배기를 받아들고선 바느질을 하듯 뼈를 발라내 수저 위에 한 가득 하얀 갈치 살을 얹는다.


‘할머니, 큰 손주 밥 잘 먹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어요!


눈물이 날 것 같다. 우앙 한입 크게 벌려 한 숟갈 먹는다.

밥위에 갈치살만 발라 얹어서 한입 크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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