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유라시아 여행기 : 키르기즈스탄 편 #1

Pogni, 유라시아 여행 - 선을 넘는 녀석들

by 포그니pogni


# 선을 넘는 녀석들



드디어 시작이다. 우리 13명을 태울 Van 차량이 KIMEP대학교 앞에 정차되어 있다.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 알마티를 벗어나서 남쪽 국경으로 가는 길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을까? 여기서 잠깐 설명 충이 되어보자. 알마티는 남쪽으로 천산산맥을 끼고 있는 해발고도 700m 이상에 있는 고지대 도시이다. 또한, 분지 형태를 띠고 있다. 겨울철에는 대부분 석탄을 사용하여 난방하는데, 분지 형태이기 때문에 지붕으로 방출되는 석탄 연기가 대기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래서 겨울철이 되면 항상 뿌옇고, 고지대에 있는 집값이 매우 비싸다. KIMEP대학교도 고지대에 있다. 나도 이 넓은 알마티 도시에서 행동 반경이 자연스레 고지대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시내 풍경이 색달랐고, 도심을 빠져나갈 때까지 차 안에서 눈 감을 수 없었다. 알마티 시민들의 평범한 삶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키맵대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카자흐스탄 고위층 혹은 부자들의 자녀다. 1년 등록금이 경영대임에도 불구하고 천 만원에 육박하니 알만하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친구에겐 순수함을 볼 수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평범한 시민들의 순수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도심을 조금씩 조금씩 차량은 유유히 벗어나고 있었다.




도심을 벗어나니 건설 현장이 많이 보인다. 인구는 2천만 명이 채 안 되는데, 국토는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나라다보니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곳이 많다. 뜻밖에 우리나라 건설 기업도 많이 진출했다는데, '14년 말 러시아 루블화 폭락 사태 이후로 경기가 회복되고 있지 않아 많이 위축됐을 것 같다. 그리고서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나타났다. 진짜 끝이 없다. 비가 내릴 것 같은 흐린 날씨와 바깥에 보이는 초원이 왠지 모르게 을씨년스럽다. 한국에서 비 오는 날의 을씨년스러움과 다른 느낌이다. 여기가 좀 더 쓸쓸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차량이 출발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알마티 시내를 빠져나오는 시간이 꽤 걸려서 잠시 휴게소에 정차해본다.



<내가 이용했던 다인승 VAN, 중앙아시아 여행 시 대부분 이런 차량을 타고 투어를 갈 것이다>
<소들이 초원 위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다, 양도 많이 돌아다닌다.>



자연스레 휴게소 화장실로 갔다. 챠른 캐년 갔을 때와 다르게 나름대로 구색이 갖춰진 화장실이었다. 하지만 10탱게란 돈을 내야 했다. 당시 한국처럼 무료로 화장실을 이용하는 걸 바랐던 것이 사치였었다. 살짝 배가 고팠으나, 괜히 챠른 캐년에서 먹었던 말젖 과자의 진한 맛이 생각이 나서 일단 참기로 했다. 미리 사둔 간식을 먹을 생각이다. 그리고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온종일 차 안에서 있을 것 같아 잠시 드넓은 초원을 돌아본다. 소가 풀을 뜯고 있다. 너무 평화로워 보인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 추후 글에서 언급하겠지만, 나는 인도에 주기적으로 출장을 간다. 인도는 힌두교 국가라 소를 신성시하기 때문에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소를 쉽게 볼 수 있다. 처음 인도로 출장 갔을 때가 생각난다. 카자흐스탄 초원에서도 돌아다니는 소와 양을 많이 봤기 때문에 당황스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인도의 소들은 초원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세상 도처에 깔려있다. 고속도로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안 비켜주기도 한다.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첫 만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와 보자.



<키르기즈스탄 국경과 연결된 카자흐스탄의 국도>
<국경에 다가가면 검문소 외에 이렇게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출발하기 전날까진 해가 쨍쨍했는데 말이다. 비가올 것 같기도 하다. 카자흐스탄 현지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여기는 10월부터 눈이 오기 시작해서 이듬해 4월까지 눈이 온다고. 기온은 영상 10~15도 사이였는데, 갑자기 눈이 올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키르기즈스탄에서 돌아온 후, 한낮에 15도였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면서 영하 10도가 됐던 것이 기억난다. 아무튼 돌이켜 보면 여행 갈 때 날씨 운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닌 것 같다. 도로 위에는 관광객을 태운 것으로 추정되는 벤과 버스, 물류 차량만이 지나다니고 있다.




Ben에게 도대체 얼마나 남았는지 칭얼되려고 할 때 즈음 기사 아저씨로부터 국경에 거의 다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휴대폰 App 등 기계를 다루는 것에 능숙하지 않은 나다. 구글맵을 켜고 위치를 확인해 보면 되는 걸 그때까지 몰랐다. 키르기즈스탄 이후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을 가게 됐는데, 그제야 구글맵을 사용하는 것에 조금 능숙해졌다. 한없이 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던 땅 위에 인파가 보이기 시작한다. 선을 넘으려는 자, 선을 지키는 자, 선 주위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자. 사람이 있는 곳엔 거래가 이뤄지고, 돈이 흐르고, 사람이 모인다. 국경이란 무게가 무겁긴 했지만,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하니 왠지 안심되는 기분도 든다. 이제 차량에서 내려보자!



<벤에서 내리고, 차량과 운전사는 별도 검문을 받는다>
<관광객은 차량에서 본인의 짐을 가지고 내려서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막상 내리니까 왠지 무섭다. 나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멀리서 군인 or 경찰이 총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까 더 그런 것 같았다. 국경 분위기는 살벌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 위해 잠시 담배 연기를 내뿜어본다. 돌이켜보면 정말 별일 없었다. 그냥 비행기에 내리고 입국 심사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양국 사이에 밀수가 많아서 개인 짐은 꽤나 철저하게 검사했던 것 같다. 특히 키르기즈스탄 물가가 저렴해 카자흐스탄에서 밀수하는 물품의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한편, 구색을 갖춘다고 면세점까지 있었는데 벤이 별거는 없다고 해서 그냥 Pass하고 넘어갔다. 면세점보다 키르기즈스탄 시내에서 사는 술, 담배 가격이 더 저렴하다고 한다. 마침내 검문소를 지나 선을 넘어 꽤 긴 거리를 걸었다. 13명 모두 입국심사를 하는데 30분 정도 소요됐었다. 다들 처음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입국심사를 마치다 다들 안심하는 눈빛이었다. 선을 넘으니 왠지 날씨가 더 쌀쌀해진 것 같다. 게다가 10월로 접어들자 해도 더 짧아져 오후 3~4시 정도밖에 안 됐지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것 같았다. 첫날은 이식쿨 호수로 바로 넘어가지 않고, 비슈케크에 있는 한 호스텔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다. 도착하면 5~6시 사이가 되어 해가 저물 것 같았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음에도 해가 지고 나서야 도착을 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최초로 육로에 있는 선을 넘으면서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나에게 선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2019년 상반기에 MBC 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을 즐겨봤다. 이 프로를 시청하면서 느낀 바와 선을 넘으면서 느낀 바는 동일하다. 선은 넘어가기 전에는 두려운 존재지만, 넘는 순간 별거 아니란 것이다. 이날 경험 덕분에 나는 또 하나 배우고 성장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부딪혀 보자, 생각보다 별 거 없고 어떻게든 삶은 흘러가니까. 비슈케크에 있는 호스텔까지 무사히 도착한 우리 일행은 Ben을 따라 비슈케크 시내로 걸어갔다. 진정한 키르기즈스탄과의 첫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첫 만남에선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 끝 -



<키르기즈스탄 지역 국경의 모습>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유라시아 여행기 : 카자흐스탄 편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