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생각났던 네 글자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돌아보면 키르기즈스탄 여행 기간 중에 가장 날씨가 좋았고, 꿈을 꿧던 것 같은 마법 같은 하루였다. 리조트 산책로는 이미 단풍이 한창 들고 있다. 조식을 먹으러 가는 아침 산책길이 이보다 상쾌할 수 없다. 나무들이 하나같이 키가 크다. 비록 침엽수림은 아니었지만, 왠지 시베리아 벌판에 가면 이와 같은 나무로 이뤄진 숲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을 것 같았다. 아직은 조금 쌀쌀한 한기가 느껴지지만, 정오가 되면 이 패딩을 벗어도 될 것 같다. 리조트 아침 조식 시간엔 우리밖에 없었다. 숙박객이 우리뿐이었나? 키르기즈스탄 현지식 조식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서양식이 나왔다. 가볍게 아침 식사를 한다. 언제 아침밥을 먹었던가? 맨날 기숙사에서 늦게까지 술에 취해 자던가 혹은 같이 게임을 하다가 자서 겨우 수업시간에 맞춰 기상했다. 아침 식사를 할 틈이 있었겠나? 물론 아침을 먹는 게 습관이 들지 않아서 아침을 먹으면 속이 안 좋다는 이유도 있다. 아무튼 한국을 떠난 후 1.5개월 만에 처음으로 먹어보는 조식이었다. 소시지와 잼을 바른 빵을 먹으니 기분이 좋다. 이제 여행을 시작해볼까?
루크 오르도 박물관 인근, 이식쿨호를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에서
(좌) 그 언덕에서 만난 전통 모자를 쓴 현지 할아버지 / (우) 드디어 등장하신 기사 아저씨
어제 악천후 때문에 못 갔던 루크 오르도 박물관을 가기 전에 날씨가 너무 좋아 기사 아저씨가 이식쿨 호를 조망할 수 있는 어느 언덕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여행은 예상치 못한 재밌는 인연의 연속이다. 우리 Van이 정차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현지 노인 한 분이 우리 옆으로 온다. 백인과 동아시아인이 섞여 있는 13명의 무리가 신기했나보다. 기사 아저씨와 Ben 옆으로 가서 계속 말을 건다. 그리고 키르기즈스탄과 이식쿨 호수의 역사 강의가 시작됐다. Ben이 영어로 통역을 해줬지만, 자세한 내용은 기억에 안 남았다. 그냥 어렴풋이 이식쿨이란 단어가 키르기즈스탄어로 따뜻한 물이란 뜻이란 것만 생각이 난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서나 오랜 세월 살아온 노인분들과 얘기를 하면 시작되는 본인 자랑 순서. 자신이 제2차 세계대전 소련군 참전 용사로서 무사히 살아 돌아와 고향 마을을 지키는 것에 아주 큰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얘기가 길어지자 우리는 Ben과 기사님, 할어버지를 뒤에 두고 아름다운 이식쿨 호수를 바라본다.
말 그대로 눈부신 날의 눈부신 풍경이다. 군 생활을 청와대를 둘러싼 서울의 내사산 중 서쪽의 인왕산 지역에서 했었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어렸을 적 이 도시의 야경은 항상 뿌옇게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비가 그친 후 다음날 저녁 초소 근무를 하고 있을 때면 보이는 깨끗한 서울 야경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비가 대기 중에 더러운 먼지를 가라 앉혔기 때문에 이런 깨끗한 서울을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비가 내린 후 다음날 키르기즈스탄 어느 언덕에서 바라본 이식쿨 호수 풍경은 정말 깨끗했다. 아름다웠다. 저 넓은 수평선 옆에 보이는 인간의 건물은 한낱 먼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서서 이 그림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곳에 정말 여행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이와 함께 주변 풍경 하나하나가 자세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언덕 위에 드문 드문 있는 둥근 바위들을 보니 이곳은 그 옛날에는 호수 바닥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식쿨 호수의 수심이 낮아져 바위를 포함한 육지가 드러나고 그곳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여러 가지 사색을 할 수 있던 좋은 곳이었다. 바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감정이 들었다. 이제 어제 못 갔던 루크 오르도 박물관으로 이동해보자.
이곳엔 기독교, 카톨릭,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5대 종교의 미니 박물관 건물이 있다
(좌) 유대교관 / (우) 기독교관
한국 문화관광부와 조계종에서 보낸 '한국의 종'
루크 오르도 박물관에 입장했다. 이곳은 특이한 박물관이다. 세계 5대 종교라고 할 수 있는 유대교, 카톨릭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미니 박물관이 각 종교별로 있었다. 생각해보니 인도 힌두교는 없었다. 비록 키르기즈스탄은 이슬람 국가이지만, 이 박물관이 의미하는 바는 종교는 다르지만 '신은 하나다'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키르기즈스탄 전통을 볼 수 있는 것들과 함께 서양의 조각상 등 말 그대로 주제를 알 수 없는 모든 수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인상 깊었던 전시물 중의 하나는 '한국의 소리'란 종이 있었는데, 대한민국 문화관광부와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기부한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우리나라와 교류가 시작되어 이 종이 여기까지 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또한, 대한민국 사람이란 자부심도 왠지 모르게 갖게 되었다. 조금 더 걸어본다. 아름다운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Deck 근처까지 천천히 걸어간다.
아래 주황색 꽃은 아편의 주재료인 양귀비 꽃이다
(좌) 루크 오르도 야외 박물관 Main Deck 앞에서 / (우) 잔잔한 파도가 치고 있는 호수변
얼핏보면 바다 한 가운데 같은 이식쿨 호수
드디어 도착했다. 그렇게 이 여행의 목적이었던 이식쿨 호수 앞에 말이다. 호수 위로 비추는 햇살이 너무 눈부시다. 갈매기는 아니었겠지만, 유유히 날아가는 새들이 갈매기처럼 보이는 것은 그냥 기분 탓이겠지. 구름 역시 아름답다. Deck 앞에는 주황색 꽃밭이 있었다. 마약류 중의 하나인 아편을 만드는 데 주재료로 쓰이는 '양귀비 꽃'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식쿨 호수 주변은 양귀비를 재배하기 좋은 환경이라서 예전부터 현지인들이 많이 재배한다고 한다. 키르기즈스탄은 여전히 농촌 인구가 전체 70%를 차지한다. 그만큼 산업화가 덜 되었고, 경제적으로 빈국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인지 경제 통계에 잡히지 않는 밀수출을 통한 지하경제 규모가 상당하다고 한다. 구 소비에트 연방국으로써 대 러시아 무역량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지배에 대한 대러시아 경제제재 조치 이후 러시아 루블화 폭락 등 경제 위기에 대한 여파로 키르기즈스탄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그리스처럼 중앙아시아 지역의 경제 위기 화약고가 된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 때문에 양귀비를 활용한 지하경제의 규모도 더욱 팽창하지 않았을까? 경제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중국 신실크로드 정책의 수단 중 하나인 AIIB에 기대어 인프라를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파키스탄이나 스리랑카처럼 인프라 개발을 하려다가 중국은행에 잔뜩 국가 부채만 늘어난 사례를 보면 이는 빛 좋은 개살구임이 드러났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아름다운 자연광경과 상반된 심각한 경제 위기. 뭔가 아이러니하다.
저 넓은 호숫가에 파도가 친다. 우리나라 해안가에서 볼 수 있는 강한 파도가 아니라 잔잔한 파도이다. 혹시 정말 바다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호수 변으로 내려가서 물에 손을 담그고 맛을 한 번 봐본다. 짠맛은 나지 않는다. 진짜 호숫물이다. 만년설이 쌓인 천산산맥 계곡에서 그 원천인 것 같다. 나에게 가장 큰 호수는 일산 호수공원의 호수였다. 그렇다, 여기를 보면서 그동안 정말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처음 외국 생활을 망설임 없이 결정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면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 있었다. 그렇지만, 견문과 세상을 보는 시야가 점점 넓어지고 있고 매 순간이 배움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자 배움의 시간이다. 마치 내가 바로 걸어서 세계 속으로 프로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저 잔잔한 파도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앞으로 또 어떤 세계를 꿈꾸고 경험하고 싶은지 밑그림을 그려본다.
(좌) 키르기즈스탄 전통 유목민 천막 / (우) 실제 늑대를 잡아서 전시한 늑대 가죽
열심히 사진을 찍고 다른 박물관 건물 내부를 둘러본다. 키르기즈스탄 전통관이다. 여기서 나는 옛날 유목민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몽골의 전통 가옥인 '게르'와 유사한 모습이다. 아무래도 몽골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드넓은 초원 위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수 천 년의 시간 동안 자신들의 문화를 뿌리내리며 살아왔기 때문에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종교를 제외하고 의, 식, 주 문화가 상당히 유사하다. 이는 혹독한 겨울을 버티기는 것이 매한가지였기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어, 가죽으로 체온을 유지하고 마유주(말젖)로 몸에 다양한 영양분을 공급하며, 지방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 손님을 대접하는 최고의 음식이다. 이제 가옥 안으로 들어가 보자. 아무래도 모질고 긴 겨울을 버텨야 해서 그런지 내부가 상당히 따뜻하다. 또한, 진짜 늑대가죽이 걸려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깨끗하게 가죽은 벗겨졌지만, 마치 방금 잡힌 늑대가 지붕 위에 걸려있는 것 같았다. 저 늑대를 잡고 걸치는 남성은 부족 내에서 최고의 남성성을 지닌 사나이였겠지.
1~2시간 사이 정도를 촐폰아타의 루크 오르도 박물관에 있었다. 어제 좋지 않은 날씨에서 봤으면 이날 느꼈던 감동에 절반도 안 됐을 것 같다. 눈부신 날의 눈부신 호수와 각종 조형물,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의 추억 사진 찍기. 어제 일정을 오늘로 미뤘기 때문에 갈 길이 바쁘다고 한다. 다음 목적지는 이식쿨 호수의 동쪽 끝, '카라콜(Karakol)'이란 도시로 간다. 러시아의 유명한 탐함가인 '프셰발스키'란 사람이 이곳에서 죽었는데, 키르기즈스탄이 소비에트 연방으로 편입되고 이곳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프셰발스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글맵에 한글로 카라콜이라고 검색하면 한글로 프셰발스크라고 표기된 곳이 나타난다. 동일 이름이다. 웃긴 것은 러시아어로는 카라콜이라고 적혀있다는 것. 다시 우리의 Van 차량에 올라탄다. 얼마나 차를 타고 가야 다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키르기즈스탄 여행에서 하나 아쉬웠던 점은 관광지를 즐긴 시간보다 체감상 차 안에서 있었던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천산산맥 이름 모를 산 중턱 어딘가, 양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어먹고 있다
산 중턱에 올라오니 춥다, 침엽수의 크기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우리는 패딩을 꺼냈다
만년설이 녹아 세차게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바로 카라콜로 가는 줄 알았는데, 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비포장 산길 도로로 가더니 천산산맥 어딘가 모를 이곳으로 왔다. 내리니까 양 떼가 산 중턱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이와 어울리지 않게 계곡 물은 이 산을 집어삼킬 듯한 소리를 내면서 세차게 흐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끝이 없는 침엽수림은 이 모든 것을 지켜주는 장승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 중에서 코너 우드먼이란 영국 작가의 '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란 책이 있다. 저자는 어느날 퇴사를 하고 모은 돈으로 전 세계를 돌면서 전 세계 상인들을 상대로 싸게 사서 다른 국가에 비싸게 팔 궁리를 한다. 여기서 저자는 키르기즈스탄에서 말을 매매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책에서 묘사된 풍경과 지금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이 풍경이 너무 유사한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파트가 키르기즈스탄편인데, 아무래도 기억이 흐릿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무의식이 나에게 '나는 여기 갔다 왔어!'라고 외쳤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여기서도 1시간 정도 머물렀다. 산 중턱에 있으니 30분만 지나도 날씨가 온도가 금방 내려간다. 이제 카라콜로 다시 출발해볼까?
카라콜에는 비가 아닌 눈이 왔다. 이미 도로는 제설차가 한 번 휩쓸고 간 것 같다
숙소 2층에서 바라본 카라콜 어느 마을의 전경, 눈이 자아낸 풍경이 이국적이다
두 시간을 더 달려서 마침내 키르기즈스탄 세 번째 숙소에 도착했다. 주변은 갑자기 겨울 왕국이 되었다. 비슈케크와 촐폰아타에서는 비가 내렸는데 여기는 눈이 쌓였다. 차에서 내리니까 확실히 기온이 더 낮은 도시 같다. 그리고 진눈깨비가 아니라 눈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10월에 이렇게 많이 내린 눈을 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뭔가 설레면서 친구들과 짖궃게 장난을 치고 싶어진다. 숙소 2층에 방을 배정받았다. 약간 다락방 느낌도 나는 곳이었는데, 창문을 열어보니 저 먼 곳에는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보이고 눈앞에는 눈 쌓인 지붕들뿐이다. 누가 보면 유럽 시골마을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중에서 자연 아름다움의 깊이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어느새 해가 떨어져 가고 있다. 저녁을 먹어야지. 오늘은 키르기즈스탄 전통 유목민 감성을 많이 느꼈으니 나도 유목민이 즐기던 음식을 선택해야겠다! 당당하게 주문한다, "Mutton with Rice!". 지방이 듬뿍 있는 양갈비가 나왔다. 너무도 당당하게 먹었지만 금방 속이 느글느글해진다. 숙소에서 맥주와 와인으로 느끼한 속을 달래고 자야겠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찬란한 이식쿨 호수를 바라보며 행복했던 하루가 저물어간다.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다시 갈 수 있다면 이때보다 더 재밌게 즐길 수 있겠지만, 과연 내가 다시 이곳에 갈 수 있을까? 앞으로 우리나라와 교류가 활발해져 업무상 출장으로라도 갈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