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즈베기(Kazbegi)
주타 마을에서 피프스시즌(Fifth Season) 산장까지 장 트러블이 생겨 더 힘들었던 전반부 일정이 끝났습니다. 잠시 피프스시즌 마당에 여행객 누구라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해먹에 눕고 의자에 앉아 재충전을 마치고 최종 목적지 차우키 호수(Chaukhi Lake)를 향해 여정을 이어갔습니다.
해외에서 트레킹 여행을 처음이었던 저에게 있어 조지아 주타 트레킹의 기억은 한 걸음씩 내딛는 매 순간이 하나의 동화였으며, 또 신화 속 어떤 마을을 걷고 있는 것과 같았던 꿈과 같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실제 기억을 되짚어보면, 목적지까지 오르고 또 내려오는 6시간의 트레킹 소요 시간 동안 현실은 역시 동화가 아니었죠. 과연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을까요?
조지아 여행은 곧 도시/산간 지역 가리지 않고 동물과 함께하는 여정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자유분방한 견공들', 산간 지역에서는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말'이.
즉, 인간과 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지혜롭게 살아가고 있었던 공간이 바로 조지아란 국가였습니다.
조지아 트레킹 코스를 걸으며 사람이 말 옆을 지나가도 아무런 동요가 없는 것이 신기했는데요. 그만큼 말도 인간을 신뢰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제가 카자흐스탄에서도 1년 정도 거주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말을 꽤 많이 봤지만, 이렇게 순한 말들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실상 트레킹 코스길은 그야말로 '말똥밭'이어서 마치 지뢰를 피하듯 말똥을 피해 다녔습니다. 좋은 것을 먹어서 그런가 냄새도 지독했고, 그 근처에는 벌레도 어찌나 많던지 정말 땅을 잘 보면서 걸었습니다.
피프스시즌에서 차우키 호수까지 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고비'가 있습니다. 바로 '맨발로 다리 없는 계곡물 건너기'인데요.
조지아 여행을 준비하며,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봤을 때는 "왜 이렇게 다들 호들갑이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차우키 호수까지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계곡물을 건너야 하느냐? 정답은 Yes입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인 것이죠. 코스는 두 갈래(지름길/돌아가는 길)로 나뉩니다.
전자는 한 번만 건너면 되는 대신 물살이 세고, 후자는 두 번을 건너는 대신 물살이 다소 약합니다. 저는 물이 차가우면 얼마나 차갑겠어란 마인드로 당연히 전자를 선택했습니다.
만년설이 녹은 계곡물,
얼마나 차가울까?
네, 미친 듯이 차가웠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차가운 계곡물이었는데요. 한여름이었던 7월 말이라 좀 차가울 정도라고 예상했는데, 실제 물의 온도는 말도 안 됐습니다.
게다가 얕아보였던 물의 깊이는 거의 허벅지까지 차올랐고 계곡 물살은 무척 강했죠. 이거 일행 없이 혼자 여행 중인데 자칫하다가 큰 일 나겠다 싶겠다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정말로 물에 젖은 발은 짜릿함 그 자체였습니다. 반대편에 도달하자마자 저도 모르게 큰소리를 치면서 욕이 나왔는데요. 욕은 만국 공통어인 거 아시죠? 이런 제 모습을 보고 못 넘어오는 외국인 여행객도 있었습니다.
계곡물을 건넌 이후에는 목적지까지 꽤 무난했습니다. 말도 거의 안 보여 말똥 숫자도 확연히 줄었고요.
정면에는 만년설이 쌓인 코카서스 산맥의 어느 봉우리, 한쪽에는 빙하물이 흘러내리를 폭포 그리고 나머지 삼면을 감싸고 있는 녹색 초원까지. 그제야 제대로 주타 트레킹 여행의 정취를 온몸으로 경험하며 걸었던 것이죠.
제대로 된 해외 트레킹 여행이 처음이었는데, 완전 초보자인 저도 생각했던 것만큼 많이 힘들지 않았을 정도의 난이도였습니다. 주타마을 ~ 피프스시즌 급경사와 계곡물 건너기만 잘하면 누구나 정복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라는 생각입니다.
마침내 목적지 차우키 호수에 도착했습니다. 만년설이 쌓인 해발 5,000m가 넘는 산봉우리가 눈앞에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고, 호수에 비추어 보이는 만년설산의 모습이 무척 비현실적이었습니다.
한편, 차우키 호수에서 꽤 많은 한국분들을 만났는데요. 아마 조지아 여행을 하면서 가장 자주 그리고 많이 한국인 여행객을 만났던 순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한국인들이 특징이 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피크닉 매트를 챙겨 오면 한국인이 분명하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의 모든 분들이 돗자리를 챙겨 왔습니다.
또한, 사진에 진심인 민족답게 차우키 호수에서 인생샷을 건지기 위한 열정이 엄청났는데요. 저 역시 그 도움을 받아 인생에서 가장 멋진 한 컷을 남기게 됐습니다.
What The....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고 돗자리를 펴고 자유롭게 가장 좋은 전망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통을 깨는 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뭔가 의상부터 심상치 않았는데요. 마치 산신령 혹은 도사 같았던 의상을 입고 트레킹을 하고 있었던 외국인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빙하물에 다이빙을 하는데 허허.. 홀라당 다 벗고 물속에 뛰어들더라고요.
얼음장 그 이상으로 차가운 물에 들어가는 것도 Crazy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다 벗고 들어가다니. 와, 여기 조지아에서 다 벗은 남의 Pepper를 관람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렇게 얼추 1시간 정도 자유롭게 돗자리에서 뒹굴뒹굴 동화 속의 한 장면과 같았던 곳에서 충분히 쉬었다가 다음 목적지인 조지아 제2의 도시 쿠타이시로 이동하기 위해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쉽더라고요. 그리고 이미 한 번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이기에 더 빠르게 내려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려가는 길에는 말을 탑승하고 올라오는 관광객도 있고, 트레일런을 하는 사람도 있어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저도 처음 조지아 여행을 준비하며 해외에서 트레킹을 해봤던 적이 없기에 과연 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러닝을 하면서 건강도 챙기며 몸을 만들기도 했었는데요.
결과론적으로 주타든 앞서 살펴봤던 트루소밸리든 등산 초보자라도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정복할 수 있는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겁먹지 마시고요. 트레킹이 싫어 조지아까지 왔는데, 이런 동화 같은 풍경을 못 보는 것은 너무 아쉽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