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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pogni Aug 24. 2020

Ah, 에르미타주 : 러시아 소매치기를 만나다!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상트페테르부르크 편 #6


전날에 이어 다시 찾은 에르미타주 미술관
(좌) 에르미타주 미술관 입장권  / (우) 입장하고 입구에서 찍은 인증샷


여행 가서 아프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특히 발이 부어올라서 걷기 힘들다는 것은 말이다.


  이윽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이 날은 다행히 해를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전날부터 아팠던 내 발은 더욱 부어올랐다. 자고 일어나면 낫기를 소망했지만, 더욱 심해진 것 같다. 3박 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MG 투어 2일 차 일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에르미타쥬 미술관 방문, 두 번째는 발레의 본고장 러시아에서 보는 발레 공연이다. 후자는 1860년에 세워진 마린스키 극장에서 봤는데, 에르미타쥬에 가기 전에 미리 극장에 가서 저녁 공연 티켓팅을 했다. 이에 대한 얘기는 다음 글에서 풀어보겠다. 아무튼 이대로 숙소에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아픈 건 아픈 것이고 일단 에르미타쥬 미술관으로 들어간다. 이 발을 부여잡고 일주일 동안 봐도 다 보기 힘들다는 이 미술관의 전시를 얼마나 볼 수 있을까? 혹자는 이곳을 루브르,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이라고 손꼽기도 했다. 그만큼 전시물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다. 혹세무민의 제정 러시아 말기 차르 일가가 서민들의 삶은 생각하지 않고, 세금으로 계속 구입한 결과물이다. 입장료는 400 루블이다. 현재는 800 루블이라고 한다. 불과 6년 만에 입장료가 두 배로 뛰었다. 아마도 루블화 폭락 때문에 화폐 가치가 하락한 만큼 입장료를 올린 것 같다.


첫 번째 소매치기를 만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다른 일행이 입장권 티켓팅이 분명히 끝났을 텐데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가서 놀랍게도 일행 중 한 명이 소매치기를 만난 것이다! 처음으로 만난 관광객 대상의 소매치기. 러시아가 빈부격차가 커서 여타 유럽 유명 도시와 마찬가지로 현지 소매치기가 성행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인지하고 있는 것과 실제로 겪은 것은 확실히 다른 일이었다. 명준이라는 내 룸메이트가 당할뻔했는데, 여자 러시아 소매치기였다. 대충 본인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는 러시아 여성 무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멍청한 소매치기의 특징은 계속해서 시선을 너무 티 나게 준다는 것. 나도 인도에서 소매치기를 만난 적이 있는데, 대놓고 빤히 내 핸드폰과 가방을 쳐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었다. 아마 그런 느낌이겠지. 그렇게 의식하고는 있었지만 순식간에 사태가 벌어졌다. 다행히 훔쳐가자마자 알게 돼서 그 자리에서 현행범으로 잡을 수 있었다. 러시아어로 자꾸 뭐라고 하는데, 미술관에 있던 현지 경찰에게 바로 넘기자 훔쳐갔던 지갑이 나왔다. 그런데 웃긴 것은 그 사이에 현금은 어찌 뺐는지 지갑에 현금이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다른 일행이 가지고 도망을 쳤으리라. 그나마 신분증과 카드가 있는 지갑은 찾아서 다행이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그렇다고 이것 때문에 전체 일정을 망칠 수는 없으니 다 같이 미술관 입장을 한다.



고대 이집트 관련 문화재 - 너는 왜 여기에 있니??
겨울궁전을 떠 받들고 있는 거대한 기둥



  제정 러시아 시절까지 황궁으로 쓰였던 장소답게 곳곳에는 겨울궁전이란 이름에 걸맞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특히 궁전들 떠 받들고 있는 거대한 기둥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상당한 고가의 나무로 제작된 것 같았다. 기둥만 있는 방과 통로를 지나고 있노라면 어두운 고동색 때문인지 몰라도 지옥의 입구가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었다. 무작정 밝고 화려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이 기둥 때문에 의외로 어두운 느낌의 방이 많았고, 흡사 우중충한 러시아 날씨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일행들과 별개로 움직였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발 때문에. 발이 찢어질 듯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관람을 지속했다. 사실 미술관의 전시품보다는 온 신경이 발에 쏠려 있었다. 여행 와서 아프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란 것을 처음 알았다. 특히 항상 움직여야 하는 여행에서 발이 아프다는 것은 최악이었다. 내가 왜 괜히 충격 흡수도 못해주는 스니커즈를 신어 가지고 이 사달이 나게끔 했을까. 이때부터 여행 갈 때는 멋보다는 편의를 생각했다. 신발은 무조건 러닝화를 신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러닝화도 조금 불편했는지 작년에 북유럽 여행을 가기 전에는 워킹화를 샀다. 확실히 가볍고 여행 가서 걷기에는 최적화된 신발이었다. 아파본 적 있는 사람만이 이 고통스러움을 알겠지?


  그래도 조금씩 전시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픔을 이겨내고 여행을 즐기겠다는 내 의지의 결과물이었을까? 특히 고대 이집트 유물이 눈에 띄었는데, 서구 열강들의 약탈했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했다.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에 다녀왔던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마냥 전시물이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느꼈었나요?'. 이후 갔었던 대영박물관에는 '한국관'이 별도로 있었다. 이 세계적인 박물관에서 '한국'이란 나라의 별도 전시관이 있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 전시됐던 유물은 온전히 대한민국의 소유가 맞는 것일까? 문득 병인양요 당시 문화재를 약탈해가고 여태껏 돌려주지 않고 있는 프랑스의 사례가 생각이 난다.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도 러시아의 것이 아니라 이집트의 유산이 아닌가?



천장 벽화를 그리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모됐을까?
더 올라가서 보고 싶은데, 발병이 심해져서 계단 오르기가 쉽지 않다.
주관적인 생각으로 겨울궁전은 다시 보니 '유럽 + 아랍' 느낌이 같이 나는 듯싶다



  문득 천장을 바라봤다. "!", 내 머리 위에 느낌표가 떴다. 이렇게 층고가 높은 궁전에 어떻게 그림을 그렸을까? 러시아의 역사는 항상 유럽을 좇는 역사이다. 그들은 유럽 사회에 속하고 싶어 했고, 늘 그들 사회를 동경했다. 또한, 항상 여타 유럽 국가보다 뒤처져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를 좇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은 제정 러시아 차르 일가에서 유럽 등지에서 유명한 미술가, 조각가를 불러 건축물을 만든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다음날 방문 예정인 예카테리나 황금 궁전은 그들의 사치와 향락의 끝판왕이다. 정말 이 천장 벽화를 그리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인력, 돈이 소모됐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때까지도 '농노'제도가 유지되고 있어 한 겨울에도 고통받고 있던 러시아 국민들의 후손들은 얼마나 기가 찰까?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모든 여행은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게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것도 작가가 다른 책을 인용한 구절이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돌이켜보며 글을 쓰고 있노라니 내가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것이 새롭게 각색되고 있다.


  아픈 발을 부여잡고 어느새 1층은 거의 다 돌아봤다. 2층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올라가는 계단이 힘들다. 한 칸씩 발을 올릴 때마다 온몸에 고통이 전달되고 있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나의 이런 경험이 아무리 아파도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정신을 부여잡고 일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통을 참고서 돌아다닌 2층은 1층보다 볼거리가 더 많았다. 고등학교 때 미술 교과서에서 봤던 그림들도 종종 보였다. 책에서 본 것과 실제로 본 것에 대한 느낌은 난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냥 나에겐 똑같은 미술품이었다. 그렇지만, 에르미타쥬의 건축 양식은 참 색달랐고 잠시 의자에 앉아 쉬면서 나를 사색에 잠기게끔 했다. 그중에서 어떤 복도 하나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유럽을 가본 적이 없어서 그냥 일반 유럽의 건축양식이겠거니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유럽과 아랍을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신혼여행으로 아랍에미레이츠에 다녀왔는데, 왠지 그곳에서 본듯한 양식이 섞여있는 것 같다. 물론 나의 매우 주관적인 생각이다. MG 투어는 이곳에서 최소 3시간 이상은 시간을 할애했다. 나는 아픈 것도 있고, 예술적인 것에는 꽝이어서 사실 예술품 자체에는 크게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마다 다른 것이 소매치기당할 뻔한 내 룸메는 3일 내내 이것만 보고 싶다는 생각도 말했다. 그래도 다들 별 일 없이 재밌게 즐긴 것 같아서 뿌듯했다. 그래도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혼자 사색했던 시간을 생각해보면 재미없다고 이 겨울궁전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에르미타쥬 앞에 있는 백마, 이 날 실제로 백마를 처음 봤다
이걸 먹고 있을 때까지 우린 몰랐다, 소매치기가 다녀간줄



  에르미타쥬 미술관을 나오니 백마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아마도 만만하고 돈 많은 중국인 관광객처럼 보였나 보다. 그 주인은 100 루블을 부르면서 마차를 타고 가라고 유혹한다. 그런데 여름이면 고민해보겠지만, 때는 11월 추운 겨울날. 누가 이 추운데 마차까지 타겠는가? 카자흐스탄에는 말이 참 많은데 그래도 백마는 실제로 처음 봐서 신기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르 보기 전까지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남았다. 겨울궁전과 백마는 뒤에 두고 일단 허기를 채우러 떠나본다!



두 번째 소매치기를 만나다,
너를 대도(大盜)라고 명하노라.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지 않는 낯선 여행지를 갈 때 가장 좋은 모바일 어플은 'Trip Advisor'이다. '14년까지만 해도 네이버 블로그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심지어 첫 번째 페이지에 2011년 글이 계속 있었을 정도이니까. 아무튼 이번 MG투어에서 트립어드바이저 도움을 많이 받았다. 덕분에 괜찮은 러시아식 현지 음식을 많이 먹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는 러시아식 돼지고기 튀김으로 유명한 식당으로 향했다. 양이 너무 작아서 2차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어야 할 정도였지만 맛은 아주 기가 막혔다. 그렇게 맛없다는 러시아 음식이 너무나 맛있다. 물론 맨날 카자흐스탄 음식을 먹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자리를 뜨려던 찰나.


  "응??????? 카메라가 어디갔지???????????"


  그렇다, 나 말고 같은 시립대에서 온 재진이의 DSLR 카메라가 사라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속담을 이럴 때 쓰라고 있는가 보다. 우리 모두 재진이가 카메라를 식당 안까지 들고 오는 것을 봤다. 밥을 먹을 때도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그래도 주변을 잘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라졌다. 심지어 오후 4시 즈음 애매한 시간이라서 사람도 많이 없었다. 우리 테이블 주변을 지나가던 현지인들은 몇몇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큰 카메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말도 안 됐다. 혹시 몰라서 식당 사장에게 CCTV를 볼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역시나 불가능하다. 재진이의 패착이라면 카메라를 안쪽 자리에 뒀어야 하는데 바깥쪽에 뒀다는 것이다. 물론 본인 오른손 바로 아래였지만. 하루에만 소매치기를 두 번이나 만났다. 첫 번째 소매치기는 어설펐지만, 두 번째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재진이도 나처럼 발병이 났는데, 카메라까지 잃어버렸으니 이중고다. 이를 교훈 삼기엔 너무 커다란 손실이었다. 만약 나였더라면........ 정말 끔찍한 경험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도시라도 소매치기의 위협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교훈을 남기며 쌓아도 안 될 경험치를 쌓았다. 그래도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가자, 일단 마린스키 극장으로!     - 끝 -



해 질 녘, 빼쪠르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성 이삭 대성당 뒤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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