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상트페테르부르크 편 #5
이곳은 러시아인가?? 동유럽인가??
이 세상에는 정말로 많은 야경 명소가 있다. 대표적으로 동유럽의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체코 프라하 야경이 있다. 나는 부다페스트에도 가봤지만, 내 인생에서 최고로 야경이 멋지다고 기억에 남는 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오후 4시, 러시아의 흑야가 시작된 시간. 카페를 박차고 나와 이 아름다운 도심을 거닐어 본다. 온 도시 건물에 은은한 유럽 특유의 주황색 조명이 달려있는 곳, 그리고 도심 풍경을 보존하기 위해 중심부 건물 높이를 제한한 곳. 그곳이 여기 빼쩨르다.
'여러분들의 베스트 야경 명소는 어디인가요?'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홍콩 피크 트램, 파리 에펠탑을 포함한 도시 전경 등등 많겠지만, 나처럼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손에 꼽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비록 코로나 19가 터지기 전에 방송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 등 러시아 여행지 소개가 많이 됐지만 말이다. 카메라 성능 때문에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담진 못했지만, 단언컨대 당신의 야경 위시 리스트에 꼭 추가해 보기를 바란다.
피의 구원 사원에서 만난 브라질 여행자
다시 피의 구원 사원으로 돌아왔다. 빼쪠르 여행 1일 차의 마지막은「피의 구원 사원 - 겨울 궁전」 주변을 돌아 야경 투어를 하고, 러시아식 저녁을 먹은 후에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돌아가면서 현지 마트에 들러서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보드카와 발찌까 맥주를 구매해서 방에서 한 잔 하고 푹 자는 것이 마지막이다. 운하와 바람과 겨울의 도시답게 상트페테르부르크 11월 밤의 추위는 매우 매섭다. 당시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란 팀에 아프리카 출신 선수가 몇몇 있었는데, 그들에겐 더욱 혹독했을 상트의 겨울이었을 것이다. 이윽고 다시 도착한 피의 구원 사원.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아름답고 약간 몽환적인 것도 같은 자태에 넋이 나갔다. 사원 주위를 배회하면서 몇 번이고 끊임없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상트는 이런 곳이다. 어느 거리를 가더라도 자연스레 감탄사가 나오는 곳. 그리고 우리의 추억을 담기 위해 한 여행자에게 말을 건넸다.
남미 대륙은 너무나 먼 곳이다. 미국이나 멕시코를 거쳐 12시간을 더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곳. 그리고 좋지 않기로 소문난 치안 때문에 솔직히 가볼 엄두가 나지 않는 곳. 그래서 나는 중남이 여행을 하고 온 사람들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건축 양식의 꽃 '피의 구원 사원' 앞에서 브라질 출신의 새로운 여행자와 인연을 맺게 됐다. 역시 여행의 묘미는 예상치 못한 인연을 만나는 것이다. 카페에서 만난 벨라루스 친구도 그렇고 돌이켜보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 그것이 여행에서 만난 인연이다. 내가 아는 브라질리언은 TV로 보던 네이마르 같은 축구 선수뿐이었는데, 신기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얻은 정보 때문에 생긴 편견이 있다. 브라질은 마약, 범죄가 만연하기 때문에 남자들은 특히나 거칠 것이란 편견. 그렇지만, 굉장히 친절한 신사 그 자체였다. 사진을 찍는 것을 부탁하고, 찍은 후에 말을 건넸다.
"어떻게 브라질에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오게 됐어요?"
"유럽 여행으로 왔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부터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유럽 대륙을 횡단할 계획이에요. 그런데, 저는 러시아가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동유럽과 가까운 상트였죠. 미디어에서는 러시아에 대해 솔직히 좋게 말하지 않잖아요? 막상 여기 와 보니까 너무 좋아서 상트에서만 이틀 일정을 계획보다 더 있기로 했죠."
그리고 좋은 여행이 되길 바라며, 잘 가라는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인스타그램 맞팔로우를 했다. 역시 편견은 편견일 뿐. 이곳에 오고나서부터 계속해서 미리 편견을 갖고 무언가를 판단해선 안 되겠단 생각을 했다. 이 또한 여행 경험에서 얻은 또 하나의 인생 교훈이었으리라. 이제 발걸음을 다시 겨울 궁전으로 향해본다.
제정 러시아의 영화가 느껴졌던, 겨울 궁전의 밤
제정 러시아의 영화가 시작된 곳이자 마지막 몰락의 순간 중심의 있었던 겨울 궁전. 궁전 앞 광장의 밤은 화려했다. 에르미타주에서 쏘는 황금빛 조명은 우리가 제정 러시아에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게끔 했으며, 과거 복장을 하고 관광객 대상으로 사진을 같이 찍어주는 현지인들을 보니 마치 20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어쩌다 제국이 몰락하고 공산주의가 자리 잡게 됐을까? 비록 이미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인해 차르(황제)에 대한 믿음은 깨졌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역사책과 같이 극적으로 몰락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공산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 즈음과 같이 전 세계에 만연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기념사진을 찍고 광장을 배회하면서 혼자 사색에 잠겨본다. 가령 '만약에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과 같이 역사에 'IF'란 없지만, 'IF'란 단어를 자꾸 곱씹어 보게 됐던 겨울 궁전 앞의 밤거리였다.
자, 밤은 더욱 짙어져 밤 10시는 넘은 것 같지만 러시아의 겨울밤은 길다. 저녁 6시가 넘어가니 배가 고파온다. 오늘 저녁 메뉴는 '트립 어드바이저' 사이트 평점이 높은 러시아 현지식 푸드코트. 카자흐스탄에선 복불복이었는데, 과연 어떤 메뉴가 기다리고 있을지 서둘러 가보자. 아참, 사실 푸드코트라기 보단 뷔페 같은 Canteen (구내식당)이란 이미지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여러 종류의 음식을 먹고 싶은 만큼 집고 그만큼 돈을 내면 되니까 말이다.
러시아 현지식 푸드코트 방문기,
그리고 문가(MG)투어 1일 차 마무리
이곳은 정녕 빼쪠르의 진정한 로컬 맛집인가? 엄청 넓은 지하 식당이었는데, 사람들로 빽빽하다. 그중에서 동양인은 우리뿐. 나는 이제 편견을 갖지 않는 사람이니 남은 러시아 여행 일정 동안엔 '인종차별'이란 단어를 잠시 접어두도록 하겠다. 그래도 온통 주변엔 '효도르' 덩치의 러시아 백곰들이 사방팔방에 있어서 살짝 쫄리기는 한다.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긴 줄에 나도 동참해본다. 그리고 음식에 가까워지니 러시아 식당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내 코 끝을 찔렀다. 바로 솔잎같이 생긴 향신료 '딜(Dill)'이란 음식이다. 나는 고수, 산초와 같이 향이 너무 강한 향신료는 잘 먹지 못한다. 딜도 그중에 하나이다. 입 안에 이 딜을 음식과 함께 넣으면 톡 쏘는 특유의 향이 있는데, 내가 느끼기엔 약간 미각이 마비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미 카자흐스탄 '카가낫'이란 현지 뷔페식 푸드코트에서 많이 당해봤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의 딜 사랑은 카작의 사랑과는 차원이 달랐다. 모든 음식에 하나도 빠짐없이 다 뿌려져 있었다. 답이 없었지만, 그나마 맛있어 보였던 우즈베크 전통 요리 뿔롭과 비슷한 러시아식 볶음밥과 꼬치 요리를 집었다. 가격은 이렇게 300 루블 정도 나왔는데, 나름대로 가성비는 괜찮았다.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 카자흐스탄의 딜과 다르게 러시아 본토의 딜은 좀 덜 톡 쏘는 향이어서 부담 없이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샤슬릭 말고도 러시아 로컬 음식은 생각보다 괜찮으니 푸드코트에서 한 번 도전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난 러시아 모스크바에 혼자 여행 가서도 혼자 당당히 현지 푸드코트에 들어가서 끼니를 해결했다.
2014년 11월 2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문가투어 1일 차 밤이 저물어간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보드카와 맥주를 사고 신났다. 그런데, 발이 추운 날씨와 계속된 강행군 때문이었는지 계속 부어오르기 시작한다. 남자들 사이에서 동정 따윈 없다. 그냥 따라가거나 낙오당하거나. 나는 발병 때문에 낙오될 수 없단 생각으로 한쪽 다리를 부여잡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부기가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젠장, 그런 기적은 없었다. 발병으로 인한 고난의 행군의 시발점일 뿐이었다. 그래도 숙소로 들어오니 좋다. 내일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들어가서 볼 미술품과 밤이 되면 마린스키 극장에서 러시아 발레를 직접 볼 생각에 다들 들떠있다. 눈 뜨고 코 베일뻔한 사건 하나와 코를 베인 사건 하나가 터질 것은 모른 채.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