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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pogni Jun 17. 2021

룩셈부르크에도 노트르담 성당이 있다?!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룩셈부르크 편 #2




금강산도 식후경,
유럽에선 역시 햄버거가 진리



  새벽 버스를 타고 브뤼셀에서 달려와 역시나 얼리 체크인도 못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한 룩셈부르크. 그렇게 허기진 배로 보크 포대를 돌아다니다가 버스를 타고 도시 중심지로 왔다. 전 세계에서 1인당 국민소득(GDP)이 가장 높은 국가답게 10분 정도 타는 버스비도 2€나 됐다. 그렇게 목적지 정류장에 내리니 배가 고파오는 것은 매우 필연적인 결과임이 틀림없다. 12월 30일은 화요일이었다. 평일 오후답게 11시 즈음 버스에서 내리니 온 동네가 한적하기 그지없다. 마치 모두가 예배하러 성당으로 떠난 일요일 오전과 같은 풍경이랄까, 과연 오픈한 레스토랑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나는 햄버거를 평소에도 그렇게 즐겨 먹는 편이 아니다. 비록 배는 많이 나왔지만, 굳이 평소엔 당기지 않는 음식이다. 그런데, 왜 외국에만 나오면 햄버거가 자꾸 먹고 싶은 것일까? 진짜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다니면 맥도널드나 버거킹은 무조건 한 번씩은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는 나는 맥도널드를 중심가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맥도널드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가장 찾기 쉬운 프랜차이즈 매장인 것 같다. 중심가에 없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발견. 그렇지만, 내 눈에는 그 옆에 현지 프랜차이즈 햄버거 식당처럼 보이는 곳이 눈에 띄었다. 이름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현지 스타일 햄버거는 어떨지 궁금해서 이곳에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내가 주문한 것은 더블패티 치즈버거 세트, 유럽인들 체형 대비해서 햄버거 사이즈는 소박했다. 그리고 한입을 물었는데, 고기에 배어 있는 육즙이 마치 수제버거 패티를 먹는 느낌이었다. 가격은 도시 자체가 물가가 높은 편이라 거의 한화로 1만 원 가까이 지불했지만,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감자튀김이 맛있는 유럽답게 겉바속촉 감자튀김은 덤.



룩셈부르크 대공 궁전과 이곳을 지키는 근위대



룩셈부르크는 대공국입니다.



  대공국, 정말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다. 대공이란 무엇일까? 


1.  유럽에서 왕가의 황태자나 여왕의 부군(夫君)을 이르는 말.
2. 유럽에서 소국(小國)의 군주를 이르는 말.      


  사전적으로 두 가지 정의가 있다. 룩셈부르크는 도시 국가인 '소국'이기 때문에 아마도 두 번째를 의미하지 않나 싶다. 민주주의가 가장 먼저 도입되었고, 가장 빠르게 퍼진 대륙이 유럽이다. 그렇지만, 자세히 찾아보면 아직까지 왕이 존재하고 정식 명칭이 '왕국(Kingdom)'인 나라도 많다. 예를 들어서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가 있다. 비록 왕의 역할은 극히 제안되어 실질적으로 수상이나 총리가 국가를 운영하고 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왕국이라니 아이러니하다.


  룩셈부르크는 대공국이지만, 실질적으론 왕국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도시 중심부에는 '대공 궁전'이 있고, 이를 지키는 근위대도 있다. 우연찮게 근위병 교대식을 봤는데, 규모는 작지만 교대식 절차는 여느 왕국에서의 그것과 동일했다. 그리고 궁전이라고 부르기에는 소박하고 주변 건물과 비슷한 양식 건축물이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주변 건물에 둘러싸여 있어서 궁전을 전체적으로 촬영할 수 없다는 것도 조금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내부도 궁금했지만, 실제 대공이 거주하고 있어서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아쉬운 점. 이제 룩셈부르크를 대표하는 '노트르담 성당'으로 가본다.



프랑스 파리의 그것과 이름이 동일한 '노트르담 성당' 외부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 파리에만 있는 게 아니야!



  얼마 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나서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숭례문 화재 때에도 그랬지만, 소중한 문화유산이 불타서 잿더미가 된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파리에 가서 한눈에 담을 수 없는 대성당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이를 복구하려면 한참이 걸린다니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아무튼 여기는 파리가 아니고 룩셈부르크다. 이곳을 대표하는 성당 이름도 '노트르담 성당'이다. 룩셈부르크의 공용어가 프랑스어인데, 이것이 영향을 미쳐 노트르담 성당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베트남 호찌민에도 프랑스 식민지 시절 영향으로 동명의 노트르담 성당이 전 세계적으로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참고로 '노트르담 (Notre Dame)'은 우리들의 귀부인이란 말로써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이런 것을 알고 갔으면 더욱 여행에서의 배움과 즐거움이 풍족했을 텐데, 그땐 너무 어렸다.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까지 영국과 벨기에에서 큰 가톨릭 성당을 봐서 그런가 혹은 룩셈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이라길래 기대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더 아담해서 살짝 실망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본다. 12월 30일 한겨울 룩셈부르크의 추위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잠시 몸을 녹일 필요가 있다.



룩셈부르크 '노트르담 성당'의 내부


운명이라는 것이 겨울철 과일나무 같아 보일 때가 있다. 그 나뭇가지에 또다시 푸른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마음속으로 소망하고, 또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당시 우리들의 나이 평균 25.5세. 청춘 그리고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쉽지 않은 카자흐스탄 行 결정을 하고, 유럽여행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이번 여행이 끝나면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 글로벌 인턴쉽을 수행할 것이고, 나머지 친구들은 한국에서 취업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던 미래가 막막했던 평균 연령 25.5세, 청춘 4명. 여행을 하고 있어도 마음 놓고 그저 편하게만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잘될 거야, 잘될 거야"라는 굳은 믿음. 우리 중에서 아무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노트르담 성당에 들어가니 자연스레 기도하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해본다, 우린 모두 잘 될 거라고. 이렇게 종교를 믿지 않는 우리들도 기도를 하게 만들었던 곳, 그렇게 만드는 아우라(Aura)가 있었던 장소가 룩셈부르크의 노트르담 성당이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나는 아무리 어려운 일을 겪어도 잘 해쳐 나갈 것이라면서 스스로를 다잡아봤다. 우리들 대부분은 여행 가서 성당에 들어가면 그냥 대충 건물 양식만 보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코로나가 끝나고 다음에 성당에 가면 잠시 앉아서 기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화두를 던지고 나는 이제 가장 기대가 됐던 룩셈부르크의 랜드마크 '아돌프 다리'를 보기 위해서 도보로 이동해본다. 이렇게 기도하고 잘될 거라고 열심히 다짐하고 갔는데 안 좋은 쪽으로 이벤트는 생기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나의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란 것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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