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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pogni Feb 16. 2021

천혜의 요새 룩셈부르크 : 보크(Bock) 포대를 걷다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룩셈부르크 편 #1

룩셈부르크 역 (출처 : 위키피디아)



당신은 여행할 때, 무엇을 위주로 즐기시나요?



  12월 30일 새벽 4시, 브뤼셀에서 1£로 예약한 룩셈부르크 行 Megabus 좌석 위로 피곤한 몸을 뉘인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처럼 가격 때문에 예약했던 브뤼셀의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Room에서 자고 일어나니 확실히 몸이 무겁다. 그렇지만, 1인당 GDP가 $100,000이 넘는 작지만 강한 도시 국가 룩셈부르크에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척이나 설레는 새벽이다. 그리고 나는 여행할 때, 휴식이 아닌 몸을 혹사시키면서 그 나라의 아름다운 풍경을 느끼는 것을 즐긴다. 따라서 다른 새로운 환경을 보러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심장이 벌렁벌렁 뛰게 만든다. 그렇게 잠시 버스에 앉아 혼자만의 감상을 하고 꿈나라로 빠져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2층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온 세상이 하얗다. 벨기에가 눈이 녹은 우중충한 모습이었다면, 룩셈부르크로 가는 길은 새하얗다. 똑같은 눈인데 왜 유럽에서 보는 눈이 온 풍경은 이처럼 눈부시고 아름다운 것일까? 그리고 10월부터 카자흐스탄에서 지겹도록 눈을 봤는데, 이상하리만치 너무 기분 좋은 눈이다. 그렇게 버스는 설원을 뚫고, 도시 자체가 천혜의 요새인 룩셈부르크의 험준한 지형으로 접어든다. 그리고 룩셈부르크 여행의 시발점인 중앙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내일 TGV 고속열차를 타고 프랑스 파리로 향할 것이다.



숙소였던 룩셈부르크 유스호스텔 (출처 : Booking.com)
보크 포대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선택했던 숙소



친절 + 영어가 유창했던 바르셀로나
에서 왔다는 '터키'인 택시기사



  이번 숙소도 역시나 도미토리다. '룩셈부르크 유스호스텔'이란 곳인데, 국가 내 유일한 유스호스텔이다. 이곳은 중앙역과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서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가영이까지 총 4명, 택시비를 1/4로 분배하면 나쁘지 않은 금액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그리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친절하기까지 했던 터키인 택시기사를 만났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길을 잃었을 때, 터키인 택시기사에게 도움을 받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여행을 계기로 터키인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좋게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문득 '택시 기사'와 관련해서 지나간 여행을 돌아보면, 유쾌하고 친절한 기사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이고 여행을 윤택하게 하는지 알 수 있게끔 하는 요소란 것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 터키 기사 덕분에 아주 놀라운 착각이 하나 생기게 됐다. 이민자들을 포함한 모든 룩셈부르크 사람들은 모두 영어가 유창할 것이란 착각. 영어 때문에 저녁에 이동하는 데 있어서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는데, 이는 추후 이야기를 통해서 풀어봐야겠다. 아무튼 나는 '보는 즐거움' 때문에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보크(Bock)' 포대와 가까운 룩셈부르크 유스호스텔에 예약을 했고, 새벽에 브뤼셀에서 방황했던 것과 달리 아주 별일 없이 무탈하게 숙소에 도착했다. 역시나 아침 이른 시간이라 얼리 체크인은 불가능했고, 짐만 리셉션에 맡기고서 동행들과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곳이 바로 '천혜의 요새'
보크(Bock) 포대



  인구 약 60만 명의 소국 룩셈부르크는 지리적으로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프랑스에 둘러 쌓여 있어서 역사적으로 보면 이들 국가 중의 속국이 됐어야 했다. 그렇지만, 워낙 험준한 지형 탓에 지금까지 독립국가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는 책에서 여행하기 전에 봤던 내용인데, 보크(Bock) 포대를 실제로 보면 그 의문이 명백하게 풀리게 된다. 과연 그 누가 이렇게 험준한 지형에 둘러싸여 있는 곳에 감히 침범할 수 있겠는가? 지형으로 인해 '일당백'이 가능해 보였다. 알프스로 둘러 쌓인 이점을 활용해서 영구 중립국이 된 스위스처럼 과거 험준한 지형은 그들에게 불운이었지만, 근대에는 천운이 되어 그들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끔 도와준 격이었다.


  그리고 온 세상은 하얗게 변해서 포대 주변의 운치가 더 뛰어나 보였다. 어마 무시하게 큰 다리가 없으면 시내로 이동하는 것도 버거워 보이는 곳.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큰 다리를 산과 산을 잇게끔 만들었을까? 우리나라도 요즘 고속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상당히 높은 다리를 이은 도로가 많지만, 그렇다고 Amazing 한 느낌은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 바라본 도심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눈이 치워져있지 않은 험한 계단을 하염없이 올라왔는데, 내려갈 때에 너무 위험해 보였다. 어떻게 내려갈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해서 놀다가 돌아올 것이라 그때 가서 생각해보는 걸로 한다.





여행지를 이해하는 첫 조건은 그곳의 냄새를 맡는 것이다.
- 러디어드 키플링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나는 지금 부자 국가라고 불리는 룩셈부르크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마음속으로 과거 이들의 삶이 어땠을지 상상해본다. 정글북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명언처럼 여행지 본연의 냄새를 맡으며 이곳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여기서 아직 정비되지 않은 거친 과거의 모습을 봤다면, 이제는 현대로 넘어가 볼 차례다. 룩셈부르크 중심가까지는 도저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현금을 지불하고 버스를 탔다. 버스 내부는 상당히 조용하고 깨끗했다. 나도 덩달아서 조용히 자리에 앉아 이곳의 풍경을 차창 너머로 즐겼는데, 마치 유럽 시골 마을의 평범한 로컬 현지인처럼 동화된 듯했다. 룩셈부르크의 랜드마크는 '아돌프 다리'라는 곳인데, 거기는 어떨까? 그리고 젊은 마음에 시청 앞에서 '심슨' 댄스를 추고 유튜브의 올리기로 한 우리의 계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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