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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pogni Jan 29. 2021

브뤼셀의 마지막 밤은 토끼고기와 함께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벨기에, 브뤼셀 편 #5

환상적인 브뤼셀의 그랑 플라스의 야경



  경희대 평화의 전당처럼 생긴 브뤼셀에서 가장 큰 성당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그랑 플라스(Grand Place) 광장으로 내려왔다. 유럽은 낮과 밤 모두 아름답기 때문에 이번 여행을 하면서 같은 장소를 두 번 방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기 말고 대표적으로 부다페스트의 어부의 요새도 마찬가지 루트를 거쳤다. 12월 29일 저녁이었는데, 거리엔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로 인해 축제 같은 연말 분위기가 났다. '20년 연말은 코로나 19의 여파로 전혀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아서 섭섭한 감이 있었는데, 하루빨리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유럽 지역은 대개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크리스마스 휴가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도시 어느 거리를 돌아다니더라도 연말 분위기를 만끽하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왜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는가?
인생은 욕망이지, 의미가 아니다.
- 찰리 채플린



  우리는 가끔씩 스스로에게 어떤 행위에 대한 의미를 찾기 위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가 베스트셀러가 됐던 것이 아닐까? 나도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이날 벨기에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처럼 굳이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행위가 필요 없이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이다. 처음 비행기 티켓팅을 했을 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예약하진 않았다. 나는 그냥 유럽에 가보지 않았고, 그냥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것일 뿐이다. 길을 잃고 비행기를 놓칠 뻔하고 등등 이런 일련의 험난한 에피소드 덕분에 약간 '현자 타임'이 왔던 것 같은데, Meaning을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고 Needs 그리고 Instinction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것이 여행과 인생의 본질인 것 같다. 겨울바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랑 플라스에서 야경을 보면서 즐거웠고, 그걸로 충분한 낙(樂)이었다. 그리고 나의 동물적인 본능은 배가 고프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브뤼셀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러 가볼까?



주문한 피자와 토끼고기, 벨기에 음식이라 더 기대가 됐다.



  오전에 있었던 7.5€ 팁 지불 사건이 있었던 그랑 플라스 뒤편 먹자골목으로 다시 돌아왔다. 밤이 되니까 해산물 말고도 다양한 요리를 파는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었다. 물론 PUB과 CAFE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많았다. 어떤 곳을 골라야 할까? 우리는 이번 저녁 식사 때에는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호객행위에 넘어가지 않고 잘 버텼다. 그리고 해외여행 시에 유용한 'Trip Advisor' 어플을 이용해서 괜찮은 맛집을 하나 찾았다. 특이했던 것은 토끼고기를 팔았는데,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고기라 어떤 식감과 맛이 날지 특히 궁금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토끼고기를 잘 먹지는 않지만 서양에서는 정력보강 식품으로 알려져 애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주문은 한국식으로 가운데 다 같이 먹을 피자 한 판을 세팅하고, 각자 먹을 요리를 주문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토끼고기를 주문했는데, 검색하다가 '스테미너'에 좋다는 말에 이끌려 더욱 마음이 혹했다. 특히 서양에서 많이 먹는 고기라고 한다. 그런데, 토끼가 죽을 때 사람에 좋지 않은 연한 독을 내뿜는다는 얘기도 있어서 이걸 즐기는 사람들은 일찍 사망한다는 설도 있다. 뭐 나는 여기서 먹고 인생에서 몇 번이나 더 먹을까 싶어서 개의치 않고 주문했다.


  일단 얘네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뛰어다녀서 그런지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소스'였다. 사진으로만 보면 별로 특이사항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어떤 식재료를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고기를 썰어서 입안으로 넣는 순간 입이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고수가 엄청 들어간 맛이랄까?? 혹시 고기의 문제인가 싶어서 고기만 먹어봤지만, 고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살면서 평생 먹어보지 못할 그런 충격적인 소스의 맛. 그런데 갑자기 일행 중에 종민이의 주머니 속에서 휴대용 고추장 하나가 튀어나왔다. 스스로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고 자부하지만, 역시 나도 한국인이란 것인가, 고추장을 보고 미친 듯이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추장의 맛은 강해서 입이 마비될 것만 같은 맛을 잠재워줬다. 토끼고기는 너무 만족스러웠다. 솔직히 한국에도 조금은 대중화가 됐으면 한다는 마음이랄까? 다만, 잔뼈가 많아서 먹기엔 쉽지 않았다. 잔뼈가 너무 얇아서 잘못 먹으면 그냥 뼈를 삼켜버려서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정도였다. 토끼고기를 먹는다면 뼈만 잘 발라서 먹는다면 문제는 전혀 없다. 유럽에 가면 꼭 먹어보길 추천하는 음식이다.



체리 맥주인 Mystic과 현지 생맥주



  점심에 먹었던 식당과 마찬가지로 식당 가운데에는 난로가 있었다. 은은하게 공기를 데워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이 너무 좋았다. 겨울철 유럽에 가야지만 경험할 수 있는 분위기다. 차갑디 차가운 카자흐스탄에서만 있다가 우리는 이곳 분위기에 취해버렸다. 여기에 주류가 빠질 수 없지. 호가든과 스텔라 아르뚜아, 레페 맥주의 원산지로 유명한 벨기에란 본고장에서 생맥주를 주문한다. 영국에서 마셨던 칼스버그 맥주보다 맛이 좋을까? 정답은 Yes다. 왜 진정으로 여기가 맥주로 유명한 나라인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한 모금씩 맥주 액체가 내 목을 타고 내려갈 때마다 일로 다 말할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그리고 체리맛 맥주도 처음 마셔보는데 맛이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 마신 맥주 양이 아쉬워서 가는 길에 호가든 맥주 상점에 들러 복분자 맛 병맥주, 그리고 감자튀김을 사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이렇게 쉽지 않았던 하루짜리 벨기에 브뤼셀 여행이 막을 내렸다. 식당 분위기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잠이 들기 전까지 계속 낄낄되면서 떠들었다. 다음날 룩셈부르크에 가는 새벽 5시 출발 버스를 타야 하지만 말이다. 그냥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젖어 웃을 수 있다는 것. 잠시 복잡한 삶을 잊게 해주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그래서 힘들어도 즐겁고, 현지에서 사기를 당해도 마냥 웃을 수 있는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더 있고 싶지만, Megabus에서 브뤼셀 → 룩셈부르크로 가는 티켓을 단 돈 1£에 예매했기 때문에 아쉽지만 잠을 청해 본다. 유럽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많은 곳이자, 크라잉넛 '룩셈부르크' 노래로 더 유명해진 나라. 그곳에서 우리는 일종의 Show를 펼칠 것을 계획하면서 떠나본다. 과연 그곳에선 어떤 에피소드가 내 앞에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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