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그니pogni Jan 25. 2021

겨울밤, 브뤼셀 거리에서 길을 잃고 나는 노래하네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벨기에, 브뤼셀 편 #4

뉴페이스 가영양이 MG 투어에 합류했다!
이름도 긴 브뤼셀의 '성 미카엘과 성녀 구둘라 대성당'을 찾아 나섰다.



여행은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지만, 그 자체로 보상이다.
- 스티브 잡스 (Steve Jobs)


  브뤼셀의 중심 그랑 플라스 광장부터 오줌싸개 동상, 벨기에 왕궁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오전 및 오후 일정을 마치고 게스트하우스 체크인 시간에 맞춰서 돌아왔다. 런던에서 새벽 버스를 타고 땀에 절어있는 채로 브뤼셀을 돌아다녔다. 여행도 휴식이 있어야 지속 가능하다. 우리 일정에 맞춰 이곳으로 오기로 약속했던 같은 카자흐스탄 KIMEP 교환학생 가영이를 기다릴 겸 씻고 잠시 침대에 누워본다. 가영이 마중은 가위, 바위, 보에서 진 K군이 나갔다. 그런데, 분명 오후 4시 즈음 메가버스를 타고 프랑스에서 온다고 했는데 5시가 넘었는데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지 연락조차 없는 그. 걱정돼서 나가려고 하는 순간 다행히 가영이와 함께 돌아왔다. 늦은 이유는 게스트하우스 근처 골목에서 길이 헷갈려서 빙빙 돌았다고. 모든 소설에는 복선이 있는데, 아마도 이 사건이 그것이었던 것 같다. 잠시 도미토리룸에서 그동안 서로 유럽에서 있었던 이야기꽃을 피워본다. 아직 서로 여독이 풀리지 않았지만, 바로 다음날 새벽에 룩셈부르크로 이동을 해야 하기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브뤼셀 거리로 나선다.


  저녁 여행의 목적지는 이름도 긴 '성 미카엘과 성녀 구둘라 대성당' (앞으로 줄여서 미카엘 성당으로 부르겠다.)이다. 한 마디로 그냥 브뤼셀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성당이다. 런던에서 제대로 된 유럽식 대성당을 보지 못해서 기대가 많이 됐던 곳이다. 인터넷은 분명 런던에서 유럽연합 국가 모두에서 사용 가능하다는 유심을 샀는데, 벨기에 국경을 넘자 터지지 않았다. 그래서 와이파이 잡히는 숙소에서 미리 루트를 스크린샷으로 찍고, 오프라인 GPS 위치와 시시각각 비교하면서 관광지를 이동했다. 브뤼셀의 길은 너무 구불구불해서 구글맵이 터져도 찾기 힘들었을 텐데, 상당히 고난도의 도전이었다. 물론 이곳에서 있었던 길 찾기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보도록 하겠다. 



여행은 우연의 연속, 생각지도 못한 멋진 브뤼셀 어느 전망대
마치 그리스 신전에 들어온 것 같은 브뤼셀 대법원, '팔레 드 쥐스티스'



첫 번째로 길을 잃다



  브뤼셀 왕궁까지는 길을 한 번 왔었기에 무난하게 갔고, 낮에 보지 못했던 대법원 방향으로 간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왕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왼쪽으로 갔어야 했는데, 파워 당당하게 내가 일행들을 오른쪽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당연하게 저기 보이는 대법원을 지나 왼쪽으로 꺾으면 미카엘 대성당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실을 몰랐을 때로 돌아가자면, 법원으로 가는 길에 브뤼셀 시내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하나를 우연히 발견했다. 여행 책자 혹은 당시 인터넷 검색으로도 나오지 않았던 이름 모를 전망대. 그렇지만, 거기서 바라보는 시내 풍경은 평범하지 않았다. 왜 사람들이 여기를 모르지? 아, 심지어 법원 역시나 갔던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행하는 동행 중에 가장 피곤한 스타일은 오로지 '계획대로'만 해야 하는 스타일이다. 계획대로만 모든 인생이 풀리고 진행된다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이런 사람들은 '계획'이란 올가미에 스스로 목을 매어버려서 일정이 꼬여버리면 나라를 잃은 것처럼 '멘붕'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이런 멘붕 때문에 여행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사람을 종종 봤다. 다행히 우리 일행 중에는 그런 사람은 없었다. 나는 여행은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자 그 과정 자체가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살짝 당황스러움은 있겠지만, 그 자체를 즐기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내 성격이기도 하지만, 파워 당당하게 길을 잃은 나에 대한 변명이라고 할까? 프랑스어로 '팔레 드 쥐스티스(Palais de justice)'라고 불리는 법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카르페디엠(Carpediem)

우리말로는 '현재를 잡아라(영어로는 Seize the day 또는 Pluck the day)'로 번역되는 라틴어(語)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자주 이 말을 외치면서 더욱 유명해진 용어로, 영화에서는 전통과 규율에 도전하는 청소년들의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말로 쓰였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에서]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건물이 너무 멋있는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법원이 이렇게 관광객에게 오픈되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던가? 살면서 법원에 갈 일도 없을 것 같아서 일단 들어가 본다. 현재를 즐기라는 'Carpediem' 이란 격언처럼 이 순간을 즐겨보기로 마음을 먹어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Oh, My God!!!"이라는 문장이 절로 나와버렸다. 마치 교과서에서만 봤던 과거 속 그리스 신전이 현존하는 것만 같았다.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미쳤다, 그 황홀한 실내 인테리어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들어가 봤던 서양식 건물 중에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과 함께 내 인생에서 쌍벽을 이루는 화려한 실내 건물이었다. 만약 브뤼셀에 갈 일이 있다면 왕궁과 함께 엮어서 꼭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감탄은 끝났고, 다시 본래 목적지로 돌아가 볼까?



분명 구글맵을 따라왔는데, 예상치 못한 명품 거리가 나왔다
브뤼셀의 '성 미카엘과 성녀 구둘라 대성당'은 경희대 '평화의 전당'의 모습 같았다.



두 번째로 길을 잃다



  반대편으로 돌아가는 동안 일단 일행들에게 욕을 한 바가지 먹고 다신 길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반대편으로 향한다. 정말 눈이 빠지도록 지도를 다시 봤고, 머릿속에 입력시켰다. 그런데,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브뤼셀 길은 정말 어렵다. 곳곳에 좁은 골목이 이어져 있어서 길을 잘못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이상한 곳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겨울밤 브뤼셀 거리에서 나는 두 번째로 길을 잃었다. 내리막 골목으로 내려갔어야 했는데, 큰길을 쫓아가다 보니 계속해서 오르고 또 올라갔다. 분명히 이쯤이면 나와야 하는데, 역시나 어디서도 여행 준비하면서도 나와있지 않던 '명품거리'가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프라인 구글맵 GPS도 말썽이라 자꾸만 우리의 위치가 왔다 갔다 했다. 살면서 이렇게 길을 잃었던 적이 없었는데, 새벽에는 잘못된 숙소 주소를 찾아가고 밤에는 두 번이나 길을 잃었다. 이제부터 어디 가서 내가 길을 잘 찾는다고 얘기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하지만 성격이 급한 나는 그럴 성격이 못되어서 종국에는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목적지 주변을 한 시간 정도 더 배회하다가 겨우 목적지 미카엘 대성당에 도달했다. 문득 TVN 프로 꽃보다 누나에서 김희애, 김자옥 등 주인공들이 처음 이스탄불에서 유명한 건물을 봤을 때에 눈시울이 고였던 모습이 떠오른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제외하고 처음 이렇게 큰 가톨릭 대성당을 마주한다. 눈이 부셨고, 환상적이었다. 오늘 하루 동안에 브뤼셀에서 고생했던 모든 피로가 사르르 녹아들었다. 이때부터 나는 제대로 '여행의 맛'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프로 여행러의 걸음마를 시작했다. 이 성당과 관련해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작은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너무 감격스러웠던 당시 순간을 자랑하고 싶어서 경희대 다니는 지인에게 보여줬다. 그런데 지인 曰 "경희대 평화의 전당인데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 기억 속에는 최초로 봤던 서양식, 가톨릭 대성당이자 최고의 성당 중에 하나였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본인이 프로 여행러라면서 남들의 여행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것은 정말 아닌 것 같다. 여러 가지 감정과 경험이 교차하는 그날의 기억을 감히 어떻게 등급을 매겨서 평가한다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 벨기에의 밤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 다시 그랑 플라스로 가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벨기에, 오줌싸개 동상을 보고 나도 지려버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