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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pogni Jan 19. 2021

벨기에, 오줌싸개 동상을 보고 나도 지려버렸다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벨기에, 브뤼셀 편 #3


연말을 맞아 북적이는 브뤼셀의 거리
이것이 바로 벨기에에서 가장 유명한, '오줌싸개 동상'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 고대 로마제국의 철학자, '세네카'



  지금 맛있게 빠에야를 먹고 7.5€를 팁으로 삥을 뜯기고 와서 상당히 심기가 불편하다. 그래도 여행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벨기에에서 맥주, 와플, 감자튀김 등 먹을 것 말고 가장 유명한 '오줌싸개 동상'으로 향한다. 가장 유명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지역의 '랜드마크'라는 것이다. 이 랜드마크를 보러 간다는데,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런던에는 빅벤이, 파리에는 에펠탑이 있듯이 브뤼셀에는 오줌싸개 동상이 있으니까. 오전 11시가 넘어가니까 그랑 플라스를 갔을 때보다 훨씬 많은 인파로 브뤼셀 거리는 들썩였다. 이곳의 거리는 런던의 거리보다 폭이 좁고, 꾸불꾸불해서 구글맵을 자칫 잘못 봤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게다가 어찌나 골목이 많은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자리에서 지렸다.



  '지렸다',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아, 물론 이것은 반어법으로 얘기한 것이다. 오줌싸개 동상이 분수 물을 지리듯 나도 그 자리에서 지려버렸다. 도대체 왜 이것이 벨기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됐을까? 지리고 있는 동상을 찍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가 머쓱해졌다. 유럽까지 와서 내가 뭘 보고 있는 것인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그래도 랜드마크 동상인데'라는 생각을 했던 내가 바보였다. 고대 로마제국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갔더라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너무나 큰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이때 얻은 교훈을 실천한 예로써 부산의 '부네치아'란 곳을 갔을 때에 SNS 사진빨이란 것을 예상하고 기대치를 바닥에 찍고 갔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기대치가 너무 낮으니 생각보다 너무 좋았던 것이 아닌가! 어디를 가더라도 너무 기대감을 갖지 말자. 높은 기대감으로 인해 얻는 득 보다 기대감보다 낮았을 경우의 실이 너무 크다. 유럽에서 오줌싸개 동상과 같이 너무 기대하면 안 되는 곳으로 대표적으로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동상'이 있다.



수많은 인파와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와플이 있는 '오줌싸개 와플 가게'



그래도 1€ 와플이 있음에



  그리고 동상 옆에는 1€ 부터 시작하는 와플 가게가 있었다. 일명 '오줌싸개 와플 가게'이다. 아래 문단의 사진과 같이 옆에는 오줌싸개 소년이 한 손으로는 지리고 있고, 반대 손으로는 와플을 들고 있다. 그리고 와플을 먹기 전까지는 몰랐다, 이것이 바로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와플이 됐을 것이라고 말이다. 물가 비싼 유럽에서 단돈 1€에 그 유명한 벨기에 와플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 설렜다. 마침 빠에야를 배불리 먹었다고 생각했지만, 금방 배가 꺼지던 찰나에 발견한 기회였다. Display 되어 있는 와플이 너무 맛있어 보인다. 본래 나는 크림이 들어간 음식은 그 느끼함이 싫어서 질식하는데, 이것은 달라 보였다. 적당히 달콤한 설탕과 크림 냄새, 그리고 상큼한 과일향이 줄을 서있는 멀리까지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곳은 추측컨데 한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 같았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1€씩 싹싹 돈을 긁어서 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6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도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는데, 돈맛을 아는 것인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일단 이곳이 맛집인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1€ 와플 하나씩 총 세 개를 주문했다. 겨울에 먹는 뜨끈뜨끈하고 달달한 와플이라니, 너무 기대된다.



아무런 토핑 없이 설탕만 뿌린 진짜 1€ 와플
양손으로 지리고 있는 와플 가게 앞의 오줌싸개 소년



  이제 1€ 와플을 한 입 물어본다. 태어나서 먹어보지 못한 천상의 와플 맛이었다. 내가 먹어본 와플이란 학교 통학하면서 노량진 노점상에서 먹은 1,000원짜리 애플잼이 발린 와플, 그리고 축제 때 동아리 소속으로 내가 만들어서 팔았던 와플뿐이었다. 한국 카페에서는 '벨기에 式 와플'이라면서 와플 하나에 7천 원 이상 팔았기에 절대 사 먹지 않는 메뉴였다. 정말 간혹 가다 노량진에서만 먹었을 뿐. 그마저도 불친절한 주인아주머니 때문에 얼마 되지 않아서 발걸음을 끊어버렸다. 역시 본고장에서 먹는 음식은 뭐가 달라도 많이 다른가보다. 딱히 어떤 부분이 한국에서 먹는 와플보다 낫다고 정확하게 짚어서 말할 수는 없다. 그냥 특별했다. 추워서 혹은 엄청 굶주려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냥 천상의 맛, 그 자체였다. 오줌싸개 동상을 보고 지려버린 가슴을 닦아주는 포근한 엄마품과 가은 맛이랄까? 이 맛을 보고 하나만 먹고 넘기기에 아쉬워서 이번엔 과일과 크림 토핑이 올라간 와플을 주문해본다.



Basic is The Best.



  나는 딸기 토핑이 올라간 와플을 주문했다. 1€ 와플은 오로지 기본 와플뿐이다. 토핑이 올라가면 가격은 2~3€ 사이로 껑충 뛰어버린다. 아마 이걸 노리고 1€라는 입간판과 오줌싸개 소년을 세웠겠지. 그리고 다시 와그작 와플을 베어 물어본다. 짧은 시간에 브뤼셀에서 두 가지 교훈을 얻어간다. 과도한 기대감 방지와 'Basic is The Best'라는 교훈. 맛이 기본 와플보다 너무 과했다. 단맛도 상큼함도 모두 오버가 돼버리니 맛이 기본보다 엉망진창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다. 같이 있던 종민이와 저주의 아이콘 K군도 마찬가지 평가를 했다. 라면도 기본 라면이 맛있다. 여기서 계란과 떡을 넣는 것까지는 기본 라면으로 간주하겠다. 가끔 남자들은 라면에 이것저것 다 넣어서 먹어보고 싶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만두, 떡, 청양고추, 계란, 배추김치, 갓김치, 대파, 콩나물 등 라면 하나를 전골로 만들어서 먹곤 한다. 그렇지만, 항상 느끼지만 결과는 기본 라면보다 못했다. 부재료가 이것저것 많이 섞이면 서로 짬뽕이 돼서 맛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무튼 짧은 시간 인생의 교훈을 두 가지나 얻었다. 여행은 이렇듯 경험을 통해 빠르게 교훈을 습득하는 재미도 있다.



눈이 내린 벨기에 왕궁 거리, 멀리 그랑 플라스의 시청사 첨탑이 보인다.



  그리고 가영이가 합류하기 전, 우리는 아직 호스텔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아서 '벨기에 왕궁'으로 넘어갔다. 상당한 고지대에 위치해 올라가는데 애를 먹었다. 벨기에의 공식 명칭은 공화국이 아닌 '왕국'이다. 즉, 일본이랑 영국처럼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베네룩스 3국, 벨기에 외에도 네덜란드, 룩셈부르크가 유사한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룩셈부르크는 '대공'이 다스리는 대공국이지만, 일단 유사한 것으로 간주한다. 작지만 강한 나라 베네룩스가 모두 비슷한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니, 뭔가 신기했다. 이들이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면서 서유럽에서 작지만 강한 국가로 발돋움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 있었을까? 문득 왕궁에서 보는 풍경보다 이러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브뤼셀 왕궁 지붕에 '국기'가 게양된 날은 실제로 '왕'이 집무를 보는 날이라고 한다. 다행인지 아닌지 내가 갔던 날의 지붕은 국기가 게양되어 있지 않았다. 브뤼셀에 가면 이곳에 가는 것을 정말 추천한다. 그랑 플라스에서부터 왕궁까지 올라오는 길은 만만치 않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브뤼셀 구도심의 전경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상 옆에서 시청사 첨탑을 바라보고 있으면 도로 폭이 넓지 않아 오히려 좌, 우 건물이 프레임 역할을 해줘 한 편의 액자를 실물로 보는듯한 착각이 들게끔 만든다. 런던에서처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행을 하고 있으니 너무 행복했다. 천천히 걷는 브뤼셀이 좋았고, 추운 날씨였지만 나는 따뜻했다. 이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이날 오후에 나는 평온한 벨기에 거리에서 유럽의 정취를 만끽했다. 이제 슬슬 가영이가 올 때가 됐는데? 체크인 겸 그녀를 마중하러 오후 3시 즈음 호스텔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잊지 못할 브뤼셀의 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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