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만 1,975일째 #7 : 근묵자흑
아침부터 욕으로 무쌍 찍는 고참들
D-1951
"시x, 왜 아침부터 지x하고 난리야? 야, x발 x대리 이리 와봐라!"
시작됐다. 정식 근무 시작시간 오전 8시가 되자 영업팀 곳곳에서 욕설이 난무하기 시작한다. 중간관리자급 한 명이 고객님의 전화를 받고 짜증이 나기 시작하자 마치 군대처럼 내리 갈굼이 이어진다. 그리고 뒤에서 잠자코 있던 팀장은 중간관리자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팀장 역시 욕을 섞어가며 그 고참을 갈구기 시작한다. 아, 내가 상상했던 회사 생활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아침부터 공포 분위기가 조성이 됐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신입사원을 제외하고는 너무나도 당연한 모습인 마냥 아무렇지 않게 다들 앉아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업무를 하는데 왜 욕을 하는 것일까?
이는 날이 지나도록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홍반장에서 엄석대로 팀장이 바뀌고 나서 오히려 더 심해졌다. 엄석대는 전(前) 팀장은 양반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팀에 여직원이 있을 때는 혹시 찔릴까봐 눈치를 보는 듯했는데, 그마저도 모두 퇴사하고 팀에 남탕이 되자 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자기 딴에는 밑에 팀원들에 친한 척을 하며 '야 이 시x놈아!'라고 장난을 치는데, 솔직히 내가 보는 입장에서는 교양 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아침부터 엄석대에게 고객 Claim 전화가 들어오면 제대로 공포 분위기가 형성됐다. Claim으로 인한 본인의 짜증 나는 감정을 밑에 팀원이 보고서 결재를 올리면 괜한 트집을 잡아서 욕설을 내뱉으며 인격 모독을 하던가, 생활 태도 가령 복장이라든가 두발, 행실 가지고도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는 했다.
모든 원인은 갑질에서부터
AB산업은 B2C 기업이 아니라 업계 절대 갑(甲) 완성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B2B 제조기업이다. 어느 제조업계나 마찬가지겠지만, '절대 갑(甲) ∂'라는 회사에는 협력업체를 관리하는 '구매팀'이 있고, 그 팀에는 업체별 '담당자'가 있다. 실무에서 팀장까지는 주로 고객의 업체별 담당자와 업무를 진행하는데, 업무 스타일뿐만 아니라 그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갑질 (출처 : 위키백과)
: 계약 권리상 쌍방을 뜻하는 갑을(甲乙)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갑'에 특정 행동을 폄하해 일컫는 '~질'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부정적인 어감이 강조된 신조어로 2013년 이후 대한민국 인터넷에 등장한 신조어이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우월한 신분, 지위, 직급, 위치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에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행동을 말한다. 갑질의 범위에는 육체적, 정신적 폭력, 언어폭력, 괴롭히는 환경 조장 등이 해당된다.
온라인 기사를 보면 주로 백화점과 같은 B2C 업종의 종사자들이 일반 고객(Customer)으로부터 당하는 갑질 사례가 빈번하게 올라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에 못지않은 혹은 이보다 심한 것이 B2B 산업에서의 갑질이 아닐까 싶다. 업계 특성상 이것이 공론화되면 수주를 받지 못하게 하는 등의 보복으로 공급업체 회사 존립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그래서 B2C 산업 대비 공론화되지 않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어쨌든 그들의 갑질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가령 온갖 짜증을 협력사 영업팀 담당에게 푸는 구매 담당자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혹은 '업무'를 핑계로 영업팀 직원을 괴롭히는 사례도 다반사다. 예를 들어, 주말이나 밤늦은 시간(21시 이후, 간혹 아침 6시부터 전화하는 경우도 있다) 고객님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두 번의 Step으로 괴롭힘이 시작된다.
① 받을 때까지 지속적인 Call (보이스톡 포함, 본인은 주말 운전 중에 15번 이상 콜을 받은 적이 있음)
② 끝까지 안 받으면, 팀장이나 임원에게 바로 Direct Call
따지고 보면 이러하니 영업팀 직원이라면 '전화'에 신물이 나고, 화가 나고 욕이 나오는 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매일 출근시간부터 퇴근시간까지 욕이 끊이지 않다는 것은 분명 회사 분위기에 문제가 있다란 것은 맞는 사실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
: 먹을 가까이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뜻으로,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 말
그렇게 나도 모르게 물들어갔다. 한 번이 어렵지 1년 차 말부터 한 번 욕을 내뱉기 시작하니 그 누구보다 갑질을 당하면 찰지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욕을 시작하니 모든 말에 욕이 담겨있고, 퇴근하고 전화가 오면 가족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와버린다. 그렇게 나는 욕쟁이가 되어버렸다. 나도 그들처럼 출근하면 시x로 시작해서 퇴근할 때까지 시x이란 단어를 내뱉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스트레스를 너무 받으니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회사를 옮기고 '근묵자흑'이란 사자성어의 의미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전직장인 AB산업에서는 욕을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아무나 하다 보니 욕을 달고 살았고, 현직장인 CD산업에서는 아무도 욕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이직하고 1년 여가 흘렀지만 단 한 번도 입에 욕을 담지 않았다. 내가 시x이라고 외치는 매 순간 나는 퇴사를 꿈꿨던 것 같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 고객사에 사람 같지 않은 대우를 받으며 갑질을 당하며 살고 싶지 않았음이 자명하다. 혹시나 여러분도 이런 환경 속에 있다면, 그 회사는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린 사내 문화를 갖고 있는 곳으로 당장 뛰쳐나오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