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만 1,975일째 #6 : 회식 노래방에서 생긴 일
1차가 끝났다, 짬이 안 되면
일사불란하게 2차를 준비해야 한다.
처음부터 찍히지 않기 위해 팀장이 따라주는 술을 족족 마셨더니 상당히 알딸딸하다. 평소 주량보다도 1차에서 많이 마신듯한데, 혹시나 실수하면 큰 일날까 싶어서 정신력으로 정(正) 자세를 취한 채 앉아 있었다. 1차 자리에서부터 조금 말실수를 했던 팀원을 팀장은 그 자리에서 가루가 되도록 말로 갈궈버렸다. 어쨌든 그렇게 유야무야 1차 자리가 밤 9시 무렵 끝났다. 하지만 회식은 이제 정점으로 가는 중이다. 짬이 안 되면 1차가 끝날 무렵 미리 나와서 2차 장소에 가서 자리와 안주 세팅을 모두 마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그건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아마도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은 하면서도 그 다음주 월요일 회사에 출근하면 그걸 쌓아놨다가 아침 조회 시간부터 타깃을 정해 갈구기 시작하겠지.
2차 장소를 섭외함에 있어서도 Rule이 있다. 무조건 호프집으로 가야 한다. 치킨집이 근처에 있어도 호프집에 가서 치킨을 시켜야 한다. 이유는? 팀장인 홍반장은 팀원들과 소통하는 좋은 팀장이니까. 오픈된 분위기에서 허심탄회하게 회사 밖에서 소통을 하는 것이 좋으니까. 그런데, 선배 사원들의 조언을 빌리자면 정말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가는 최소 일주일 이상 시시때때로 정신교육을 받을 수가 있다고. 그리고 역시 자리 배치가 중요한데, 사원·대리들은 반드시 붙어 앉아있으면 안 된다. 그렇게 앉게 되면 '느그들 재밌게 하려고 이런 자리를 마련했냐'면서 핀잔을 준다.
금요일 밤이라 집에 들어가 쉬고 싶지만, 9시부터 시작한 2차는 끝이 보이질 않는다. 나름대로 소통한다면서 홍반장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좌석을 바꾸는데, 그가 앉자마자 그 테이블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마냥 급격하게 조용해진다. 이유는 계속 떠들고 있으면 팀장이 왔는데 격식도 없고 만만하냐는 식으로 쏘아붙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사람이다, 분명 오픈된 분위기에서 소통을 하자고 온 곳인데 소통이 아닌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 그는 뒤끝이 있기에 그렇게 회식 자리는 자연스레 업무의 연장 선상이 되었다. 이제 슬슬 자리가 파하려고 하나 보다라고 생각한 순간, 아직 11시밖에 되지 않았다면서 3차로 노래방을 가자고 한다. "응????? 이 시간에 노래방????"
나는 트로트, 너는 발라드
그렇게 긴급하게 짬이 안 되는 사원들은 다시 일사불란하게 3차 노래방 장소를 찾아봤다. 20명에 가까운 인원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룸이 이용 가능한 곳으로 알아봐야 하기 때문에 그런 곳을 찾는 것도 보통은 아니었다. 첫 회식에 3차 노래방 까지라니, 이거 보통 쉬운 일은 아니다. 왜 팀원들이 회식하자고 팀장이 얘기하면 혀를 내두르는지 알 수 있었다. 3차 장소 세팅이 너무 늦으면 안 된다. 모든 것은 Maximum 30분 이내로 끝마쳐야 한다. 다행히 제한시간 內 미션 완수를 하고 그를 기다렸다.
신입사원 환영회식이니까 당연히 첫 번째와 두 번째 곡은 나와 동기 여사원이 선택해야 한다. 생각보다 되게 긴장되는데? 상사의 비위를 맞춰준다는 것이 이렇게 긴장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일 줄이야. 이게 바로 사회생활인가 보다 생각을 하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트로트를 선곡했다. 그리고 동기는 장윤정의 어머나를 선곡하며 연속 트로트로 노래방 회식의 운을 띄웠다. 그런데, 노래를 마치고 홍반장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팀장 : 야, 다음번에는 선배 사원한테 배워서 다시 선곡해서 분위기 제대로 띄워봐.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다른 남자 선배 사원을 지목하며 본보기로 삼아서 배우라고 지시를 한다. 그 선배는 머리에 이상한 가발을 쓰고, 복장도 우스꽝스럽게 바꾸고 90년대 댄스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팀장에게 다가가 바로 앞에서 희한한 춤을 추면서 분위기를 띄우려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분위기가 싸해지지 않게 다른 팀원도 억지로 즐거운 마냥 모두가 스테이지로 나와서 다들 춤을 추고 있다.
'아.........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이런 게 사회생활....??'
그리고 모 과장이 노래방 리모컨으로 곡을 하나 예약한다. 아, 팀장은 자기 손으로 노래 예약을 하지 않는다. 팀원 중에 누군가가 자기 애창곡을 눌러줘야 한다. 그의 곡은 무엇이냐고? 임재범의 '너를 위해'였다. 트로트를 부른 나와 동기에게는 재미없다고 핀잔을 주면서 뭐 너를 위해........?? 드라마로만 회사생활을 봤던 내게 드라마 속의 꼰대 상사보다 더한 전설의 포켓몬이 등장한 순간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정말로 팀원들에게는 분위기 띄우라고 댄스와 트로트를 강요하면서 본인은 발라드를 부르는 사람이 있구나란 사실이 말이다. 그가 노래를 부를 때, 중요한 포인트는 같이 팔을 올려서 리듬에 맞춰 흔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발라드 부른다고 아니꼽냐면서 온갖 성질을 부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회식이 아니었다. 회식을 통해 홍반장 본인의 직위와 사내 권력을 확인하는 본인 만족의 장(場)이었다. 나이만 먹었지 아직 철들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사내에 이런 생각을 갖고 회식 자리를 가지는 팀장이 부지기수란 사실이 충격적이고 홍반장은 그래도 나름대로 젠틀한 축이었다는 얘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새벽 1시가 넘어가고 드디어 노래방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첫 회식이 끝나는 순간이다. 그러면서 그의 대리운전기사가 올 때까지 주차된 팀장의 차량 앞에서 팀원들은 도열을 하고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말을 남기면서 떠났다.
팀장 : 오늘 너무 일찍 끝났네? 다음번에는 더 재밌게 놀자~♬